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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Dec 07.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감각과 지각 (4)  

[7주차 인문사회팀] 4. 관념론, 흄의 회의주의, 그리고 자연주의

 지난 시간에는 로크의 실재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로크는 대상이 실재한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의 지식은 감각과 지성을 활용하여 얻어진 대상에 대한 관념을 결합하여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은 로크의 실재론을 반박하며 관념론을 주장한 버클리와, 앞서 진행되었던 논의들이 지닌 한계성을 지적하는 회의주의를 주장한 흄의 철학에 대해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조지 버클리와 실재론 비판

  조지 버클리는 아일랜드 출신의 성공회 주교이며 철학자였습니다. 버클리의 철학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로크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두 철학자의 관계는 경험론이라는 철학적 사조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경험론자들은 인간의 지식이 경험, 즉 감각에 의한 지각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로크는 경험론자로 대표되는 인물이었는데, 버클리는 그 부분을 지적하며 로크를 비판하게 됩니다.

[그림 1] George Berkeley(1685~1753) [1]

 

 우리는 이제 로크가 말하는 대상의 성질이 제1성질과 제2성질로 구분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제1성질은 대상 그 자체에 귀속되어있으며, 인간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1성질은 경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험에 대해 초월적입니다. 또한, 크기, 모양 등과 같은 제1성질은 관찰자의 상태와 관찰 방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지각될 수 있습니다. 버클리는 로크보다 순수한 경험론적 입장에서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구분이 모순임을 지적하고, 대신 모든 대상이 제2성질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은 로크 이론에 대한 비판과 극복의 결과물입니다. 주관적 관념론에는 제1명제와 제2명제가 있습니다. 제1명제에 따르면 지각된 것들은 관념으로 실재합니다. 그리고 제2명제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들은 지각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라는 대상을 지각할 때면 사과에 대한 무수한 관념들이 생성됩니다. 이때 생성된 관념들은 실재하는 것이고, 사과라는 대상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며 단지 관념들의 종합일 뿐입니다. 결국 사과라는 대상은 인간의 지각을 통해 생성된 관념의 구성물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버클리가 말하는 철학에서의 존재성이란 대상이 지각되는 만큼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림 2] 사과. 대상에 대한 관념만이 존재한다. [2]


내가 지각하고 있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가?

  대상에 대한 지각에는 대상 이외의 것이 전제됩니다. 사과라는 대상을 지각하려면 사과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지각의 주체인 ‘나 자신’이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을 전개하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의 정신만이 객관적 실체로 남아서 모든 것을 인식하고 존재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관적 관념론은 너무 유아론적 사상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유아론의 결론은 인식 주체가 ‘나’ 하나뿐이라는 것이며, 결국 내가 지각하고 있지 않은 상태의 대상이 존재하는지 대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 발견되지 않고 심해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온 물고기가 있다면,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버클리는 주관적 관념론이 유아론에 빠지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객관적 관념론을 제시하게 됩니다.


버클리의 객관적 관념론

  객관적 관념론에 따르면, ‘신’이라는 무한 정신이 전제되어 모든 대상의 존재를 보증합니다. 신이 항상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클리에 따르면, 인간은 유한 정신만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걸 지각할 수 없기 때문에 신에게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신은 모든 유한 정신과 관념을 창조해두고 계속해서 지켜봄으로써 존재를 보증하고, 감각 세계를 존속시키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흄

  여기까지 철학자들에게 인식론적 논의란 대상(물질)과 의식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진정으로 대상을 인식하고 지식을 쌓아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로크를 비판한 버클리마저도 관념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신에게로 도피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지겹게 이어진 인식론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흄입니다. 흄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경제학자이며 역사가였습니다. 흄의 철학 역시 로크와 버클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경험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림 3] David Hume(1711~1776) [1]

 흄은 자신의 철학을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설명 가능하다.”라는 전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경험은 인상과 관념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로크와 버클리가 말했던 관념의 개념을 둘로 나눈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상은 외적 대상을 감각하거나 나의 내면을 반성하는 순간 받아들여지는 원초적 지각입니다. 관념은 이러한 인상을 수용하여 회상하거나 상상해서 만들어낸 지각입니다. 모든 관념은 인상으로부터 유래한 복사물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의 모든 인식은 이 두 가지, 인상과 관념에 근거합니다.


인간은 형이상학적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

  흄은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개념들을 해체시키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자아’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인식은 인상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자아를 설명하려면 자아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아에 대한 명확한 인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상의 부재는 논리적으로 곧 대상의 부재를 의미하기 때문에,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관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자아 개념은 우리의 내면 속 인상과 관념의 다발들이 뒤엉켜 일어난 착각과도 같은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흄은 경험론적 입장에서 인상이 존재하지 않는 모든 형이상학적 개념들에 대한 탐구 가능성을 부정했습니다.


흄의 회의주의 - 인과적 필연성의 거부

  사실 인간에게 신이나 자아의 존재를 증명할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그리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신봉해온 객관적 지식으로써의 과학이 부정된다면 그 여파는 클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연과학을 통해 얻어진 지식은 흄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가 나무에 불을 피운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불을 피우면 연기가 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입니다. 불을 보는 동안 불에 대한 인상을 얻을 수 있으며, 동시에 피어오르는 연기에 대한 인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흄은 여기서 “불을 피우면 연기가 난다.”라는 과학적 지식을 도출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림 4] 과연 연기는 불에서 피어올랐을까? [2]


  보통 자연과학에서는 모든 자연현상은 인과적 필연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흄은 인상으로서의 자연세계에서 필연적 연결의 인상은 우리에게 지각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불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연결 자체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흄은 우리가 아는 인과적 자연현상은 단지 두 관념의 시공간적 동일성에 따라 연접한 인상 들일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과적 필연성을 믿으며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흄은 인과적 필연성의 환상이 생겨난 원인을 습관의 신념화에서 찾았습니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과거 경험에 의존하여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여러 번 관찰해서 얻어낸 귀납적 결론을 따릅니다. 인간은 습관을 바탕으로 관념을 연결 지어 판단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주관적 경향성에서 오류가 비롯되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귀납적 추론의 한계는 인과성이 확률 이상의 가능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흄은 이런 방식으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아무것도 지식으로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회의주의적 결론에 도달하는 듯합니다.


자연주의로의 전환

  그렇다고 흄의 철학이 극단적인 회의주의로 끝났던 것은 아닙니다. 흄은 회의주의적 결론을 내리는 대신 자연주의적 태도를 취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인과적 필연성의 환상은 경험적 근거에 대한 인간의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인과적 필연성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인간의 신념에 불과할지라도, 사실 이것은 인간이 본성으로 가진 자연적 경향성입니다. 흄은 사건에서 인과적 법칙을 추론해내는 능력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보았고, 자연주의를 주장하며 인간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 수는 없지만, 과학은 여전히 인간에게 기여하는 바가 많은 쓸모 있는 학문인 것이지요. [코싸인 인문사회팀]


참고문헌

김명석(2014). 버클리 인식론에서 사물과 타자의 공간. 철학논총, 78, 205-228.

황설중(2009),  『인식론-우리가 정말로 세계를 알 수 있을까?』, 민음사

네이버 지식백과 - 흄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 (해제)

  - http://terms.naver.com/list.nhn?cid=41908&categoryId=41976&so=st4.asc

[1] 위키피디아

[2]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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