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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Dec 08.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감각과 지각(5)

[7주차 인문사회팀] 5. 아그리파와 회의주의 

아그리파의 논변형식

 아그리파는 고대의 피론주의자입니다. 그는 다섯 가지의 회의적 논변 형식들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트로펜(tropen)입니다. 이 아그리파의 논변형식은 철학적 회의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데요, 왜냐하면 단순히 철학적 인식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지식의 성립 가능성 자체에 의문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트로펜은 특수한 경험 대상들에서 논박의 근거를 찾지 않고 추상적인 개념들의 연관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어떠한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독단주의의 가능성을 무너뜨립니다. 따라서 “이미 진리를 발견하였다”라는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의심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아그리파의 논변형식들 중 첫 번째 것을 살펴볼까요? 바로 철학적 의견이나 믿음들의 상이성의 논변형입니다. 세상에는 서로 다르거나, 심지어 완전히 반대되는 수많은 철학적 견해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철학의 단일한 정체성이 확립될 수 없다’, 즉 유일한 진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우리는 서로 다른 믿음이 있을 때 그 둘 모두에 동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어떤 믿음을 선택할 지 고르고는 합니다. 이처럼 의견의 채택을 위한 기준이나, 상이성을 상이성으로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 지 고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기준이 없다면 어떤 의견에 대한 판단을 보류해야 할 것이고, 기준이 있다면 그것이 증명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겠죠?

 

 두 번째는 독단적인 전제 설정의 논변형식입니다. 만약 앞서 말한 기준이 증명되지 않았거나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의견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어떤 것이 옳다고 단언하는 사람은 ‘무조건’ 어떤 것을 부정하는 사람과 똑같이 신뢰 받기 어렵습니다.


[그림 1] '무조건'이라고만 하면 되는 것인가요? [1]


 세 번째는 무한 소급의 논변형식입니다. 만약 기준이 증명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증명의 기준이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변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또 다시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 증명은 다시 어떤 기준에 의해 증명되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반복해서 이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제시된 근거에 대해서도 역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이 논변형식은 철학자들이 논증의 최후의 지점과 최초의 출발점 모두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짚어줍니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사태의 본성과 관련한 판단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네 번째는 순환의 논변형식입니다. 우리는 증명과 증명 기준 중에 어떤 것이 인식적 우선권을 가지는지 결정할 수 있을까요? 독단주의자는 자기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다시 이 근거에 대한 근거로 이전의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증명과 증명 기준, 근거와 근거 된 것 간의 반복되는 순환일 뿐입니다. 사태에 대한 진정한 해명이 아닌 것이죠. 기준의 증명과 증명 기준 가운데 어느 것이 인식적 우선권을 가지는지를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 판단은 중지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상대성의 논변형식입니다. 앞서 살펴봤던 논변형식들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상대성의 논변형식으로 귀착됩니다. 모든 것들은 이미 다른 것들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대상을 독립적으로 분리해서 고찰하게 된다면 독단적인 견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함께 파악되는 관계항들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설명하려 한다면 일면적이고 유한하다는 비판에 부딪힐 것입니다.


 아그리파의 논변형식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우리가 어떠한 인식론적 주장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현대의 비판적 합리론자인 알베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항상 오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인식의 최후의 근거를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는 자신의 오류 가능주의를 논증하기 위해 ‘뮌히하우젠 트릴레마’를 가져옵니다. 앞서 살펴봤던 무한 소급의 논변형식과 독단적인 전제 설정의 논변형식, 순환의 논변형식의 세 가지 논변형식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모든 독단주의적 주장을 해체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어떤 진술을 근거지을 수 있다는 주장에 반대 논증을 하는 것이죠. 때문에 아그리파의 회의주의의 철학적 핵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귀납적 논증과 연역적 논증을 살펴봅시다. 귀납적 논증은 여러 개의 특수한 사실을 종합해서 일반적인 원리를 찾아내는 논증을 말하고, 연역적 논증은 일반적인 원리에서 특수한 원리를 끌어내는 논증을 말합니다.

   

[그림 2] 귀납적 논증과 연역적 논증


  귀납적 논증을 통해 결론을 내리기 위해 사용되는 근거들은 모두 특수한 사례들입니다. 그런데 특수한 사례들은 무한하고 비규정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필연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따라서 귀납적 논증을 통해서 정당화 하려면 무한 소급의 논변형식에 빠지거나, 아니면 어느 지점에서 임의로 논의를 중단하고 결론적으로 논리적 비약을 감행하는 독단적인 전제 설정의 논변형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연역적 논증을 통해 결론을 내리기 위해 사용되는 명제들은 증명되어야 할 것을 이미 대전제 속에 포함시켜놓고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전제는 결론에 의해 지지되고, 결론은 대전제에 의해 도출되는 전형적인 순환의 논변형식을 범하고 있는 것이죠.

 아그리파의 논변형식들은 전통적인 근거 제시 방식들의 한계를 반성하지 않고서는 철학적 회의주의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줍니다.우리는 과연 철학적 지식을 정립할 수 있을까요? [코싸인 인문사회팀]


참고문헌

[1] https://www.flaticon.com

[2] 황설중, 『인식론』, 민음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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