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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Dec 08.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감각과 지각(6)

[7주차 인문사회팀] 6. 칸트의 비판철학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지금까지 우리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하여 흄에 도달하기까지 인식론의 긴 여정을 거쳐왔습니다. 확실한 지식을 알고자 했던 인식론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라는 커다란 벽에 다다르고 말았습니다. 회의주의에 따르면 우리의 감각/지각의 확실성은 보장할 수 없으며, 우리는 사물의 본성, 참된 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황에 빠져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인식론과 철학은 결국 우리에게 어떠한 확실성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런 회의주의적 사조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1804)입니다.   

        

[그림 1] 임마누엘 칸트 [1]

 

 칸트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그는 독일 쾨니히스베르크 출생의 철학자로 인식론뿐만 아니라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등의 저작을 통해 윤리학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근대철학의 커다란 두 갈래인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을 종합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종교철학과 정치학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칸트가 어떻게 회의주의의 늪에 빠진 철학을 구해냈는지 그 과정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칸트의 관념론

 칸트의 관념론의 가장 큰 특징은 탐구의 초점을 '대상' 그 자체에서 우리의 '인식의 형식'으로 옮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칸트는 인식론을 회의주의에서 극복시키고 확실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림 2] 빨간 사과 [2]

 

 이를 좀 더 쉽게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사과가 왜 빨갛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칸트 이전의 인식론에서는 사과 자체가 빨갛기 때문에, 혹은 사과가 가지는 어떤 성격이 우리에게 빨갛다는 관념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사과가 빨간 이유를 사과라는 대상 자체에서 찾으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칸트는 사과가 빨간 것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 인식 체계가 그것을 빨갛다고 인지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대상,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선험적인 인식 형식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인식의 형식을 칸트는 선험적 인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선험적 (transcendental)이란 ‘경험과 독립한’이라는 의미로서 우리의 경험 이전, 즉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있는 인식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초월적', '선천적'이라는 단어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칸트의 표현에 의하면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대상 인식의 방법에 관한 인식, 직관(直觀), 혹은 개념이 선천적으로만 가능한 것이 바로 선험적 인식인 것입니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3]  바다에 사는 모든 물고기들의 크기를 알고 싶은 과학자가 있습니다. [3]


 바다에 사는 모든 물고기들의 크기를 알고 싶은 과학자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바다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잡은 물고기의 크기를 종합한 결과로 과학자는 바다의 모든 물고기의 크기가 2cm 이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과학자의 주장을 우리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과학자의 조사 결과만 믿고 모든 바닷속 물고기들의 크기가 2cm 이상이라고 100% 확신할 수 있을까요?

 과학자가 2cm 이상의 물고기를 잡은 것은 실제 바닷속 모든 물고기의 크기가 2cm 이상이어서가 아니라, 과학자가 사용한 물고기 그물코의 크기가 2cm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과학자가 이미 바다에 나가기 전 2cm 그물코의 그물을 준비했기 때문에 2cm 이상의 물고기만 잡게 된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과학자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것’ 은 우리가 실제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과학자가 이미 가지고 있던 ‘2cm의 그물코’가 바로 경험하기 이전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인식틀’을 의미합니다. 칸트는 우리가 아무리 그물로 물고기를 많이 잡는다고 해도 바닷속의 물고기가 모두 2cm 이상이라고 섣불리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바닷속의 물고기가 아니라 우리의 주관적인 인식의 형식틀(그물코)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탐구를 통해 우리의 그물코가 모두 2cm 이상이라는 것이 밝혀질 경우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특성이므로 일반적인 차원에서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가지는 지식은 확실성을 가질 수 있고, 이를 토대로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쌓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식은 우리의 인식을 거치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 세상에 대한 지식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흄이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지식을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지식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험적 인식틀을 통해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칸트는 흄을 반박하였고 회의주의에서 인식론을 구원해낸 것입니다. 


물자체와 현상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떤 선험적 인식틀을 가지고 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세상을 인식하는 것인지에 대한 칸트의 주장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칸트는 물자체와 현상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그림 4] 물자체 [4]


물자체 : 사물 그 자체 (thing-in-itself)로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물자체는 초경험적인 것으로 우리의 인식의 한계 바깥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물자체 그대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이에 대해 사고하는 것만 가능합니다.                        


[그림 5] 현상 [5]




현상 : 경험적 대상들의 세계로서, 우리의 선험적인 인식 조건에 의해 구성된 세계입니다. 현상이 물자체와 정말 동일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물자체에서 감각정보에 대한 재료를 제공받으며, 우리의 선험적 인식틀이 이러한 재료를 새로이 구성하여 세계를 인식하는데 그것이 바로 현상입니다. 그 구체적인 인식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식의 과정

1) 감성을 통한 인식 

 감성이란 인간이 가지는 최초의 인식 능력으로서,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세계의 감각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때 감각 정보들은 무작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형식으로서 규칙에 따라 배열되어 받아들여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규칙성이 바로 ‘시간’과 ‘공간’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이 감성 차원에서 가진 선험적인 직관형식으로서 우리의 의식에 들어오는 감각들과 표상들은 먼저 공간과 시간의 형식에 의해 가공되고 변형됩니다. 이런 시공간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선험적인 틀로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틀에서 감각정보를 한번 분류하고 배열하며 받아들입니다.     

                  

2) 지성(오성)을 통한 인식

 지성(혹은 오성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이란 인식한 사물을 범주화하고 이해하게 하는 선천적 인식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감성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틀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은 아직도 엄청난 다양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 번째 단계에서 '오성'을 사용해 이런 정보들을 가공하고 변형하며 받아들입니다. 칸트는 우리의 오성의 작용으로 12가지 범주를 나누어 인식한다고 보았습니다. 칸트가 제안한 12가지 범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림 6] 칸트의 인식틀의 12가지 범주 [6]


3) 이성

 우리의 인식의 마지막 단계는 이성입니다. 이성은 고차원의 사고방식으로서 우리가 지닌 오성을 통해 분류한 지식을 종합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칸트는 위와 같은 단계를 거쳐 우리가 세계를 인식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의 주관적 인식에 의해 구성된 세계는 현상이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아닙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란 물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감성, 지성의 형식을 통해 우리가 구성한 현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험적 인식틀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토대로 지식을 쌓을 수 있고 세계는 보편성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코싸인 인문사회팀의 감각/지각 파트는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식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부터 시작하여 회의주의를 거쳐 칸트의 비판철학에까지 도달하였습니다. 물론 칸트의 비판철학도 완전한 것은 아니며 이후의 현대 인식론은 또 새로운 도전과 물음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들은 절대 가벼이 넘겨볼 이야기들은 아니며 현대사회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만약 회의주의의 주장대로 우리가 모든 것을 확신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요? 칸트가 말한 선천적 인식틀은 과학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근대 철학자들이 가졌던 인식론에 대한 이런 질문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지과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는 가벼이 넘겨버릴 수 없는 질문들이며, 각자의 해답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그 해답을 내리는 데에 조금이라도 이 글이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코싸인 인문사회팀]


참고문헌

[1]https://ko.wikipedia.org/wiki/이마누엘_칸트

[2]https://ko.depositphotos.com/18689193/stock-photo-red-apple-with-leaf.html

[3]제임스 다이슨 제단

[4]http://www.kia.com/kr/vehicles/new-k5/features.html

[5]http://www.pound.lt/046336-Filosofija--Philosophy

[6]http://www.mmca.go.kr/study/study06/study06-55.html 

[7]황설중, 『인식론』, 2009., 민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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