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싸인 May 28. 2018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기억(3)

광유전학

지금까지 우리는 망각, 인출 실패, 왜곡 등 기억의 불완전한 면모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면, 기억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물음에 대해 ‘광유전학’이라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두 연구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2]

이 연구들의 주인공은 모두 쥐입니다.



[3] [4]


쥐는 공포를 느낄 때 얼어붙는(freezing) 반응을 보이죠. 포식자로부터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 오랜 시간 사용해온 전략입니다. 만약 평소와 유의미하게 다른 수준의 freezing 반응이 일어난다면, 그 순간 쥐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죠. Freezing level 측정치를 활용하여, 첫 번째 연구에서는 쥐의 공포 기억 활성화를 on/off로 조작하는데 도전하였습니다.  


본격적인 실험 절차를 이야기해보기에 앞서 연구에 쓰인 세 가지 주요 개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5]

1. 광유전학과 채널로돕신 


광유전학이란 광학과 유전학을 결합한 기술로,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광단백질)을 특정 뉴런에서 발현시켜 외부자극(빛)을 통해 그 뉴런의 활동을 조절하는 기술이 대표적입니다. 아직까진 광단백질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를 뇌 영역에 직접 주입하는 침습적인 방법이 사용되고 있으나, 원하는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input과 output을 명확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활용성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연구는 해조류로부터 추출한 ‘채널로돕신-2’이라는 광단백질을 쥐의 해마에 있는 특정 신경세포에 발현시켜 빛 자극의 on/off를 통해 그 활성화를 조절하였습니다.  



[6] [7]


2. 해마와 기억흔적 


해마는 기억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뇌 영역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일부 세포에 소위 ‘기억 흔적(engram)'이 남는데, 이들의 활성화는 기억 발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기억의 흔적을 간직하는 것이죠. 특히 해마에서 치아상회(치열의 모양을 닮아 치아 상회라고 불립니다.)라고 불리는 영역의 일부 세포집단은 주어진 특정 맥락에서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쥐의 치아상회에 광유전학을 적용해 ’공포 맥락에서‘ 활성화된 일부 세포집단만이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갖추게끔 유도하였습니다. 이 상태에서 빛 자극이 주어지면, 공포기억 흔적을 가진 세포집단만이 반응해 공포기억이 활성화되겠죠. 즉 빛을 끄고 켜는 조작이, 결국 쥐의 해마가 가진 공포 기억을 끄고 켜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3. 광단백질 발현 자물쇠  


두 연구 모두 엄밀한 실험적 통제를 위해, Doxycycline이라는 ‘자물쇠’를 사용했습니다. 자물쇠가 걸린 상황에서는 신경세포가 광단백질을 갖출 수 없게끔 그 발현이 막힙니다. 이러한 발현 자물쇠 시스템을 통해 오직 특정 맥락에서 활성화된 신경세포가 광단백질을 갖추게끔 실험적 통제가 가능해진 거죠.  


다시 돌아와서, 첫 번째 연구의 주 실험절차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8]


여기서 Doxycycline은 자물쇠가 걸린 상황, No Doxycycline은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은 상황(신경세포가 광단백질을 갖출 수 있는 상황)을 뜻합니다.  


바이러스 주입을 통해 치아상회 세포에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갖게 된 쥐는, 우선 habituation 단계에서 일정 기간 A 상자에 놓입니다. 여기서 여러번 빛을 on/off 해보며 평상시의 freezing level, 즉 baseline을 측정하게 됩니다. 물론 자물쇠가 걸려 있기에 광단백질이 발현되는 신경세포는 아직 없습니다. 따라서 빛을 on/off 하는 것이 쥐의 freezing level에 어떤 영향을 주진 못하죠.  


두 번째 단계로, 쥐는 전혀 새로운 환경인 B 상자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특정 소리와 전기 충격을 활용한 공포 조건화(FC; Fear Conditioning)를 거칩니다. 자물쇠가 풀린 상태이니, 이 공포 맥락에서 활성화되는 치아상회의 신경세포들은 광단백질을 갖추어 빛에 반응하게 되는 거죠.

[9]

마지막 단계로, 쥐는 다시 A상자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때 자물쇠는 잠기고, 자연스레 빛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은 공포맥락에 관련된 것들로만 한정됩니다. 쥐는 A 상자에서 공포학습을 한 적이 없으니 어떠한 자극도 주지 않는 상태(빛 off)에서는 평상시와 같은 freezing level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쥐의 해마에 직접 연결된 광섬유를 통해 빛 자극을 준 순간에 한해서, 쥐의 freezing level은 유의미하게 올라갔습니다. 즉 빛 자극이 없을 때는 평상시와 다름없다가, 빛 자극이 주어질 때는 공포 기억을 떠올린 것입니다.  

출처 : Optogenetic sitmulation 논문 


인과관계를 엄밀히 밝히기 위한 다른 여러 변형 실험들도 시행되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실험 절차만을 들여다보자면 위와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첫 번째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외부자극(빛)의 조작을 이용하여 원하는 때에 쥐의 공포 기억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어 진행된 두 번째 연구에서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쥐의 해마에 거짓 기억(false memory)을 만드는데 도전합니다. 첫 번째 연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포 기억’과 ‘공포 학습을 받지 않은 맥락’을 연합했다는 것입니다. 즉 실제론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맥락에서도 공포를 느끼게끔 ‘거짓 기억’을 만들어 본 것이죠. 광단백질 활용, 바이러스 주입, 빛 자극을 주기 위한 광섬유 삽입, 자물쇠 시스템 활용과 같은 단계는 첫 번째 연구와 거의 유사하기에, 바로 주 실험 절차로 넘어가겠습니다.


[10]

첫 번째 단계로, A 상자에 일정 기간 놓인 쥐는 자연스레 A 맥락에 대한 기억을 형성할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때 자물쇠가 풀려있으니(off Dox), 활성화된 신경세포들은 A에 대한 기억과 함께 광단백질을 갖추게 됩니다. 이들은 다음 단계에서 빛 자극을 받을 때 이에 반응하여 활성화되고, 자연스레 A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로 쥐는 전혀 새로운 B 상자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자물쇠는 잠기고(on Dox), 쥐는 빛 자극을 받음과 ‘동시에’ 공포 학습을 겪습니다. 즉 A에 대한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B 맥락 안에서 공포기억을 형성하는 것이죠. ‘실제로 아무런 공포 학습을 받지 않은 A 맥락’과 '공포 기억‘이 연합되는 순간입니다. 만약 성공적으로 연합되었다면, 다시 쥐가 A 상자로 돌아갔을 때 가만히 놓아두어도 freezing level이 유의미하게 증가하겠죠. 



마지막 단계로 쥐는 다시 A 상자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기엔 어떠한 추가 자극도 주지 않은 채 가만히 놓아둡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실제로 쥐는 매우 유의미하게 증가한 freezing level을 보였습니다. 즉 아무런 공포 학습을 하지 않은 A에서 공포를 느끼는 ‘거짓 기억’을 가지게 된 것이죠.  



[11]


이로서 우리는 거짓 기억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서의 ‘거짓 기억’이란 무에서 유를, 즉 전혀 새로운 기억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억들을 연합한 것에 불과하죠. 아울러 두 연구 모두 광유전학을 접목시켰다는 것 외엔 의외로 평범한 발상이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하며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은,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있어 우리에게 충분히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는 기억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된 연구는 꼭 나쁜 것일까요? 우리는 기억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점에서 신중해야 하며, 어떤 점을 좋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참고문헌 

Liu, X., Ramirez, S., Pang, P. T., Puryear, C. B., Govindarajan, A., Deisseroth, K., & Tonegawa, S. (2012). Optogenetic stimulation of a hippocampal engram activates fear memory recall. Nature, 484(7394), 381.  

Ramirez, S., Liu, X., Lin, P. A., Suh, J., Pignatelli, M., Redondo, R. L., ... & Tonegawa, S. (2013). Creating a false memory in the hippocampus. Science, 341(6144), 387-391.


출처

[3] http://hds-net.tistory.com/tag/%EC%84%B8%EA%B3%84%EA%B2%BD%EC%A0%9C%ED%8F%AC%EB%9F%BC 

[4] https://cosmosmagazine.com/biology/why-mice-freeze-or-flee-in-the-face-of-fear 

[6] https://molecularbrain.biomedcentral.com/articles/10.1186/1756-6606-5-32 

[7] [8] [9] Optogenetic sitmulation 논문

[10] http://edition.cnn.com/2013/07/25/health/mouse-brain-memory/index.html

[11] Creating a false memory 논문

작가의 이전글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기억(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