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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Sep 01. 2022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무려 300일이 지났어요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얼마나 오랜만일까.

핸드폰에 감춰진 어플들을 정리하다가 무심코 브런치에 접속하게 되었다. 브런치의 문을 여니 왼쪽 상단에 있는 삼색선에 파란 점이 떠 있었다. 이건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구독하기 또는 좋아요를 눌렀다는 얘기인데...

설레고 벅찬 가슴을 안고 슬그머니 삼선을 눌렀다. 내 눈에 확연히 들어온 글.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300일이 지났어요ㅠ_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주시겠어요?~.~"


헉!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 날이 일 년이 지났나.

일 년 전이면 작년 8월 즈음.

실은 그전부터 글을 못썼다.

브런치로부터 멀어진 것은 아마 작년 6월 말부터였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암 선고. 그것도 급작스레 사망할 수 있다는 급성 백혈병.

암병동에서 10년이 넘도록 근무했던 막내 시누이는 환자의 남은 기간을 2~3개월 남았을 거라 말했다. 길어야 4~5개월이라고...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했던 4년의 시간을 접고 요양보호사 일을 하기 시작한 지 두 달.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 몸에 익어 여유롭게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르신 집에 도착하면 입구에 있는 출근 앱을 찍고 들어가 손부터 씻고 어르신과 인사를 나눈다.

간 밤에 잘 주무셨는지, 오늘 아침 기분은 어떠신지, 그리고 과일을 드실지 여부를 여쭙고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청소를 시작한다.

밤새 뒤척이셨는지 이부자리가 흐트러져 있다. 베개 옆에는 밤새 뜯어 놓은 머릿속 딱지가 수북하다.

오늘 머리를 감겨 드리고 약을 발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할 즈음 막내 시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통 이 시간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데 무슨 일일까 싶어 전화를 받았다.

"언니, 어떻게 해요. 오빠가, 오빠 가요..."


오늘 남편은 막내 시누이가 근무하는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한 달 전부터 기침을 해서 약만 사다 먹다가 동네 병원에 가서도 기침약만 처방받아 왔다.

감기는 낫지 않고 기침은 점점 거칠어졌다. 보건소에서도 결핵 검사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참다못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다고 갔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럴까?

"오빠가 왜요? 오늘 아가씨네 병원에 검사받는다고 갔는데요.?

"네, 검사받았죠. 그런데 오빠 입원했어요. 정밀검사받아야 해요."

시누이의 목소리는 매우 상기되어 있고 흐느낌마저 느껴졌다.

"언니,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해요..."

"네? 저 지금 일하고 있어서 통화 오래 못해요. 이따가 다시 하면 안 될까요?"

"언니, 지금 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저도 너무 놀라 일이 손에 안 잡혀서 조퇴하고 집으로 가는 중이에요"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얼마나 다급한 일이기에 그럴까? 답답함을 넘어 짜증이 나려고 한다.


"언니, 오빠 급성 림프암인 거 같아요. 암 덩어리가 15센티미터나 돼요. 이 정도면 6개월, 아니 3개월도 못 갈지 몰라요. 언니 어떻게 해요.."

일단 전화를 끊었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웃으며 침구 정리를 하던 나의 입술이 묵직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손에 익숙한 일이기에 습관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불을 털어 다시 반듯하게 침대 위에 펴 놓고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를 마친 후엔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어르신 곁에 앉아 인지 활동을 했다.

"어르신, 오늘은 단오에 대해 생각해 볼 거예요. 어르신은 예전에 단오  무얼 하셨어요?"

"단오 때는 씨름 구경도 하고, 그네도 탔지. 창포로 머리도 감고..."

어느새 어르신은 그네에 몸을 싣고 푸른 창공을 가르며 그네를 타고 계셨다.

"이거 색칠하라고? 한복 입은 모습이 곱기도 하 "

신윤복의 단오 풍경 그림을 건네니 꼼꼼하게 색을 입히며 단번에 완성을 하셨다.

오늘 어르신은 기분이 매우 좋으시다. 내친김에 머리만 감을 것이 아니라 목욕도 하고 싶다고 하셨다.

뜨끈한 물에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으신 어르신의 기분은 매우 흡족하셨다.

"어르신 머리에 약 발라드렸으니까 오늘 밤에는 딱지 떼지 마세요. 내일 검사할 거예요."

검사한다는 말에 살짝 눈을 흘기시며 늦은 퇴근을 재촉하셨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다리가 풀렸다.

6개월? 3개월?

난 뭘 해야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내일 병원에 가기 위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단다.

콧속으로 들어가는 면봉 때문에 재채기가 연신 나왔다. 눈물도 나왔다.

30분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갔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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