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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Aug 06. 2021

맹꽁이를 살려 주세요

지구가 아파요.

 선풍기의 세기를 강풍으로 한다. 벌써 얼음물도 두 잔이나 들이켰지만, 등으로 흐르는 땀 줄기가 오선을 긋는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대로 방안의 뜨거운 바람이 출렁거린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조금만 돌리자던 에어컨 바람이  방안 구석구석을 서늘하게 만든다. 간사한 육체가 선풍기를 거부한 채 소리 없이 흐르는 찬 공기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눈 덮인 알프스 꿈을 꾸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그녀의 집은 녹색 식물들로 가득하다. 얼마나 정성스레 가꾸었는지 이파리마다 애정 어린 건강함을 뿜어내고 있다. 직접 기른 싱싱한 채소들이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얼음을 띄운 빨간 오미자차는 몸 밖으로 나오려던 땀을 잠재워준다. 이것도 직접 담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오미자처럼 붉고 해맑아 보인다.

  그녀를 만난 것은 사 년 전, 필리핀 바기오의 한국인 학생 기숙사에서였다.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딸과 영어 어학연수에 함께 왔다. 엄마들도 한 그룹을 만들어 하루 네 시간씩 영어 공부를 했다. 그녀는 오전 공부를 마치면 오후 수업이 남아있는 딸과 함께 바기오 시내를 돌아보겠다며 기숙사를 떠난다. 딸아이가 단어 시험에 통과를 못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영어 공부에 대한 도전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라 했다.

 바기오에서 가장 높은 산토 토마스 산에 올라갔을 때 그곳에서만 자라는 식물들을 찾아 환호하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희귀 식물을 보았다며 휴대폰에 담아 온 사진을 보여 주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았다.

 


 

 차를 마시며 그녀가 건네 준 초록빛 명함에는 에코이스트연구소 소장 환경공학박사 ○○○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한 길을 걸어온 지 십 년 만에 연구소를 차려 환경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은 이 여름 더위보다 뜨겁다.

 그녀가 최근에 이루어 낸 업적은 맹꽁이 살리기 프로젝트였다. 수원 광교 근처에 도서관 및 생활 쉼터 공사가 진행되려는 때 맹꽁이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를 놓칠 리 없는 그녀는 뜨거운 뙤약볕에도 날마다 달려가 맹꽁이의 서식지를 찾았다.

  맹꽁이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지만 빠른 도시화와 그에 따른 수질오염으로 인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에 분류되어 있다. 공사가 진행될 경우 맹꽁이의 서식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킬로미터 내에 비슷한 환경을 찾아 맹꽁이의 터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설계도를 변경하는 것이다.

  그녀는 공사 관계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맹꽁이 몇 마리 때문에 설계도를 변경해야 한다느니 맹꽁이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지역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사이니 변경을 할 경우 주민들이 반대를 할 것이라며 배짱을 부렸다. 이에 질 그녀가 아니다. 책을 읽으러 오는 아이들이 자연의 소리를 듣고, 보며 행복해할 것을 생각하면 이를 반대할 부모들은 없을 것이라며 설득했다.  

  맹꽁이를 살리려는 그녀의 노력은 공사 현장 소장을 감동시켰다. 결국 맹꽁이 서식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자연생태공원으로 조성하여 맹꽁이도 살리고, 사람들도 이롭게 하도록 건축 설계도를 변경하기로 했다. 평소 조용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흥분된 듯 상황을 설명하고 있을 때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전화벨 소리였다.

  맹꽁이 서식지 설계도 변경에 관해 의논할 것이 있 만나자는 소장의 전화란다. 그녀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좀 전에 울렸던 자신의 전화벨 소리를 들려주었다. 가늘고 청아한 청개구리 울음소리였다. 소리 주인공의 이름은 ‘수원청개구리’란다.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고유종 양서류인데 1980년 일본의 학자 구라모토 미스루가 수원에서 발견하여 수원청개구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경기도와 충청도 그 밖의 지역에서도 발견되었지만 최초 발견지가 수원이기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이 개구리 또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되었다며 환경 살리기에 앞장서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녀는 총총 사라졌다.

  거북의 코에서 빨대를 빼내는 모습, 플라스틱 쓰레기를 뜯어먹는 새끼 북극곰들의 영상은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한다. 플라스틱은 물속에서 반짝이기 때문에 동물들은 그것을 물고기의 비늘로 착각하고 먹는다고 한다. 세계는 지금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 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커피숍에서는 일회용 컵에 긴 빨대를 꽂아주는 곳이 많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편리한 생활이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

  룩셈부르크에 갔을 때 재활용품 수거하는 장소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곳은 플라스틱만 분류하는 곳인데 종류별로 여덟 곳이나 되었다. 플라스틱 종류에 따라 익숙하게 분류하들을 보며 병 속의 내용물들을 비우고 깨끗이 닦아야 함을 불평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딸은 강의실에 에어컨이 없어 땀 흘리며 공부를 해야 하고, 찜통 같은 버스에서 땀이 흘러 옷이 젖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독일인들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깨끗한 대기와 녹음이 우거진 거리는 결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한국은 아열대의 더위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정말 덥다.

하지만 대기를 오염시키고 냉방비로 주머니를 탈탈 털어가 에어컨을 끈다.  더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 안으로 들어와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물에 적신 쿨 수건을 두르니 선풍기 바람만으로도 시원하다. 얼음 띄운 빨간 오미자차는 갈증을 덜어주고 피로도 날려버린다. 죽부인을 끌어안고 대자리에 누우니 신선이 따로 없다.

그녀의 휴대폰 사진에서 본 맹꽁이가 한마디 한다.

  

“맹꽁아, 이제 정신 차렸니? 우리를 살리는 길이 너희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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