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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Mar 19. 2019

새 신을 신고

내가 필리핀으로 떠나는 이유

  인터넷으로 주문한 구두가 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검정 구두 한 켤레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새 구두를 신고 방안을 걸어 본다. 처음 신은 느낌이 편하다. 오늘 외출에 이 구두를 신기로 결정했다. 신에 맞춰 옷을 입고 삼십 분 거리의 출근길을 걷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새 구두가 발걸음을 즐겁게 해 준다.

  십분 쯤 걸었을까. 발이 점점 아파오기 시작한다. 꽉 조이는 느낌이 들면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삼분의 일을 걸어왔는데 되돌아갈까 망설이다가 그냥 천천히 걷기로 했다. 반쯤 갔을 때 너무 아파 신을 벗어 보니 발뒤꿈치와 옆 부분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여러 명의 사용자 후기에 처음 신어도 아프지 않고 편하다더니 새 신은 내 발에 익숙지 않아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사 년 전. 필리핀에서 국제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있을 때였다.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숙사인데 공동체의 삶은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5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스쿨버스를 타기까지 기숙사는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머리에 롤을 만 채 달려 나오는 아이는 귀엽게 봐줄 만하다. 미처 다 말리지 못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두르고 뛰어나오는 아이, 넥타이를 찾다가 체육복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뛰는 아이, 출발하는 차를 세우려 운동화를 들고 차 앞으로 달려가는 아이들까지 모두 타고 언덕을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텅 빈 기숙사 벤치에 앉아 심호흡을 한다. 이제야 자기들도 정신을 차렸다는 듯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와 아침 인사를 한다.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기숙사 1호 방문을 연다.

  남학생 방에서는 가장 먼저 환기를 해야 한다. 닫힌 창문을 열면 시원한 솔향기가 십 대 남학생들의 텁텁한 냄새를 날려 버린다. 기숙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의 방은 침대와 옷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뜨린 옷들로 정신없다. 여학생 방 또한 옷장을 모두 쏟아낸 듯 흩어져 있는 옷들이 서로 뒤섞여 숨바꼭질을 한다. 화장실에 나뒹구는 세면도구들, 기다란 머리카락들이 지렁이처럼 욕실 바닥에 기어 다닌다. 고학년 방에 들어가면 정돈된 침구들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소위 아이들이 말하는 기숙사 짬밥 몇 연차에 따라서 방의 깨끗함 정도가 다르다.

  필리핀의 바기오는 유일하게 소나무가 자라는 이색 도시이다. 년 중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 같아서 누구든 이곳에 오면 은퇴 후 살고 싶은 도시로 꼽는다.

  학생들을 보내고 소나무 숲길을 걷는 것은 하루 일과 중 행복한 시간이다.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로를 걷다 보면 웃는 얼굴로 밝게 인사하는 필리핀 현지인들을 종종 만난다. 처음엔 그들의 친절함이 어색했지만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나도 어눌한 영어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어 준다.

  오후 세시가 되면 잠자고 있던 기숙사는 아이들의 싱싱한 웃음소리로 깨어난다. 그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것이다. 교복을 벗고 삼삼오오 짝지어 외출하는 아이들, 소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아이들, 노트북, 스마트 폰을 들고 와이파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아이들로 기숙사는 젊음의 기운으로 활기차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고 나면 취침 시간은 대략 열한 시. 대학생 때 기숙사 생활 이후 십 대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들이 새 신을 신은 듯 불편하고 낯설었는데 그곳에서 2년을 지내고 나니 오래 신은 신발처럼 익숙하고 편해진다.  

  샛별을 보고 일어나 하늘 가득 총총히 박힌 별을 보며 늦게 잠들던 습관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장 한복판 같이 시끌벅적했던 일상들이 고요하고 적막해졌다는 것, 소나무 숲 맑은 공기 대신 미세먼지를 마셔야 하고, 영롱한 별빛 대신 뿌연 하늘을 올려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국에 살면서 그리워했던 고국은 오히려 새 신을 신은 듯 불편하고 힘겹게 다가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이년의 시간은 빠르고 편리한 삶에 안주하게 만들었고 고요함과 편안함에 적응하게 했다.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나고 전부터 해오던 일을 다시 하며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이주일 전. 이제 기숙사라면 낯설게 느껴지는 그곳에서 연락이 왔다. 나의 아들과 딸이 이미 졸업하고 떠난 그곳에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로, 사감으로 와 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다.

  고민에 빠졌다. 이미 이곳 생활에 푹 젖어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는데 오십여 명의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듯 생활하는 그곳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친구들과 편하게  수 없는 필리핀의 작은 기숙사에서 젊은이들과 밤을 지새울 수 있을까. 비록 내 젊은 시절엔 청소년 선교가 꿈이었지만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라는 생각이 앞서면서 새신을 신는 불편함을 거부하고 있다.

  이젠 다시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필리핀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의 학부모이다. 큰 꿈을 향해 가족의 품을 떠나려고 마음먹었지만 두려움이 앞서는 아이. 아이가 원하는 대로 보내주려 결심했지만 막상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운 부모의 심정이 전화선을 타고 불안하게 들려온다. 아이를 먼저 키운 선배로서, 두 아이를 필리핀에서 유학시키고 이제 독일로 유학을 보낸 엄마로서, 전에 사감으로 있었던 경험으로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동안 가슴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오지 여행 작가로 유명한 한비야는 마흔둘에 국제 NGO 월드비전에 들어가 세계 곳곳 재난 현장에서 일했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가슴 떨리는 삶을 살기 위해 유학을 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삶으로 실천하는 그. 가슴 떨리는 삶을 사는 데는 나이나 환경이 가로막을 수 없다. 그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익숙한 것을 벗고 새 신발을 신을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아이, 미래를 향한 큰 꿈을 갖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아직은 누군가 보듬어 주어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하는 세상으로 다시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들과 딸은 독일에서 유학 중이라 한국에 남편을 홀로 남겨 두고 말이다.

  발에 물집을 만들었던 새 신을 신고 부지런히 걸었다. 물집이 터지고 새로운 물집이 잡히면서 빳빳했던 구두 뒤축이 부드러워졌다. 내게 꼭 맞고 익숙해지기까지는 몇 번의 고통이 뒤따르리라. 열심히 걷고 걸어 그 신발이 익숙해지고 닳아 헤어지려 할 때쯤 또 다른 신을 고르고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한비야 님이 보태주는 1그램의 용기를 더하니 새 신을 신고 뛰어 볼 용기가 생긴다.

넓은 세상을 향해 함께 뛰게 될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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