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평선 Jun 13. 2019

아 참, 나 지금 외국에 있는 거지?

스탭 프리데이로 필리핀 클락에 다녀오다.

필리핀에 온 지 어느새 5개월이 되었다. 8주 차 겨울 영어캠프를 마치바로 정규반 학생들을 맞이하고 나니 학생들 얼굴과 이름 익히기가 수월치 않았다. 하지만 2년 전 이 기숙사에 사감으로 있을 때 함께 던 학생들이 12학년에 재학 중이라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아이들도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  "힘들다, 한국 가고 싶다. 못 견디겠다" 더니 어엿하게 졸업 준비반 학생이 되어 있었다.


이어서 들어온 18명의 esl 학생들을 맞아 또 이름 외우기 미션에 들어갔다.


배시시 웃으며 다가오는 아이들을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려고 했다. 가끔 이름이 헷갈려 다른 이름을 부르면 친절하게 자신의 이름을 고쳐준다.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아이들 이름을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으니 바로 11학년의 재형, 민형 쌍둥이 형제다. 얼굴에 점이 있는걸 보고서야 '아 점민형~' 하면서 민형이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곧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휴~


70여 명의 학생들과 24시간을 같이 지내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른 아침 큐티를 하고  아침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벌떼처럼 달려 나온다. 그들이 버스를 타고 언덕을 내려갈 때까지 지켜보다가 1시간 뒤 esl 학생들과 어학 연구원으로 간다. 거기에서 학생들과 함께 오후 3시까지 영어 공부하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2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이때도 자유시간을 즐기기보다는 홀로 있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요청한다. 기숙사 주변의 산책로는 아이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이다. 저녁 공부와 점호까지 마친 후에야 마음 편히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젊은 스태프들은 마음에서 여유를 잃어간다. 봉사를 하면서 공부도 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가  피곤이라는 단어에 슬금슬금 묻혀간다.

그래서 우리는 스탭 프리데이를 갖기로 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학생들과 공부를 내려놓고 자유를 누리기로 한 것이다. 모두가 가벼운 차림으로 필리핀 클락로 향했다.


바기오는 높은 산중에 있어서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수없이 돌아야 한다. 하지만 클락 확 트인 도로와  넓은 들판은 마치 우리에게 맘껏 달려보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얼마 만에 달려보는 시원함일까.

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느끼고 싶었 창밖으로 팔을 뻗은 채 아무 소리 나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입가로 다가오는 후끈함에 서둘러 창문을 닫아야만 했다. 바기오의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에 적응된 우리는  클락 습하고 더운 공기에 선뜻 적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뻥 뚫린 시원함 눈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뜨거운 공기를 타고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클락에 왔으니 이곳의 명물인 순대국밥집에 들러야 한다. 이곳으로 올 때 만해도 순댓국을 노래하던 스태프들은 메뉴판의  '냉면'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갈등하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기오에서는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 더운 날씨 앞에서 간절함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주저함을 눈치챘는지 누군가  '점심엔 냉면, 저녁엔 순대'라는 제안을 했다. 결정장애로 고심하던 들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보통 하루에 한 집에서 두 끼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면 마지못해 가게 되는데 이번에는 다시 올 걸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고 해서 모두 박수를 치며 동의를 표했다.



맛있고 시원한 냉면을 먹은 우리는 하루 일정을 의논하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비교적 한적하고 널찍한 공간은 우리의 지친 마음에 여유를 주었다. 일단 쇼핑그룹과 개별 그룹으로 나 시간을 보내다가 1시간 뒤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쇼핑보다는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냥 카페의 푹신한 소파에 파묻힌 채 지나가는 행인들을 둘러보며 마음과 육체를 쉬도록 내버려 두었다.


혼자만의 시간왜 그리 빨리 흘러버리는 것일까.      


다시 합류한 우리 대화도 하며 피로도 풀 수 있는 발마사지샵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하늘색 정복을 입은 맛사지사들의 숙련된 마사지를 받으며 푸릇푸릇한 대화를 이어갔다.

발이 개운해지니 졸음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잘 수 없다. 잠자는 사람이 음료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정의 마지막으로 순대국밥집을 다시 찾아다.


저녁이 저물어가니 음식점을 찾는 사람들 많아졌다. 순댓국과 해장국, 묵무침과 만두한 상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을 보고 감사와 탄성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 누군가 한마디 한다.

" 아 참, 나 지금 외국에 살고 있지?"

예전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음식들이었다고 했디.


맛나고 뜨거운 국밥 한그릇 먹고 나니 저녁노을이 우리를 축복쳐져 있었다. 


이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바기오로 돌아가야하는 시간이다. 하루 동안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피로와 노고를 풀어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준 여행이었기에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 결코 아쉽지 않다. 어서 시원한 바기오로 가고 싶다는 생각뿐.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기를...

작가의 이전글 새 신을 신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