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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Aug 14. 2019

따뜻한 자물쇠

나 홀로 여행에서 만난 따뜻한 이야기


엄마라서 가능했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면서 유학하고 있는 아들과 딸을 만나러 필리핀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것도 혼자서.


늦은 밤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바기오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면 파사이 터미널에 가야 한다. 영어가 안되니 공항 택시를 타고 “파사이”라고 말하면 되리라 생각하며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공항 택시 타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경찰은 나를 일반택시 타는 곳으로 안내를 한다. 영어가 안되니 뭐라 설명도 못하겠고 일반택시는 공항 택시에 비해 3분의 1 가격이면 갈 수 있으니 차라리 낫겠다 싶어 짐을 싣고 올라탔다.


출발한 지 한참만에 기사는 공항 택시 비용을 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안 되는 영어로 미터기를 누르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1000원 정도 깎아 준단다. 3000원이면 갈길을 7000원을 부르며 선심 쓰듯 한다. 다시 미터기를 누르라고 하니 6000원에 가잔다. 나도 고집을 피웠다. 문법적으로 맞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뱉어냈다. 
“렛츠 고우 투 더 미터”


택시 기사는 도로 가운데서 내리라고 한다. 그것도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온몸이 덜덜 떨린다. 나도 흥정을 해야 했다. 4000원에 가자고 했다. 기사는 5500원. 나는 4500원을 불렀다가 기사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5000원이라 했다. 택시기사는 만족했는지 다시 달렸다.

파사이 터미널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버스시간까지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큰 짐을 끌고 화장실에 다녀오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큰 캐리어는 차 트렁크에 밀어 넣고 기내용 가방은 들고 버스에 올랐다.


몸집이 큰 여자가 내 옆 좌석이라고 했다. 슬그머니 옆에 있던 가방을 안았다.


버스기사가 와서 가방을 트렁크에 실으라고 한다. 잠금 키도 없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더니 옆좌석 손님이 자신의 가방에 달린 자물쇠를 풀어 내 가방에 채워준다. 눈인사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남긴 채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다.


고속은 3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완행을 탔기에 바기오까지는 7시간을 가야 한다. 여인은 먹을 것을 잔뜩 꺼내 나에게 먹으라고 한다. 빵과 옥수수와 찐 땅콩이다. 저녁도 시원찮게 먹은 터라 맛있게 먹었다.


마닐라에선 열대야 더위로 숨이 탁 막혔는데 바기오로 가는 버스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아 추워지기 시작했다. 필리핀 버스가 춥다는 말을 들어서 작은 가방에 담요를 준비해 갔는데 차 트렁크에 들어가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다. 여인이 자신은 뚱뚱해서 춥지 않다고 하면서 두툼한 겉옷을 벗어준다. 그리고 잔뜩 긴장해있는 나에게 도착지까지 아직 멀었으니 잠을 자라고 한다. 괜찮다고 하며 어두운 차창밖만 내다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따뜻함과 포근함에 코까지 골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는데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잠든 나를 위해 오랜 시간 어깨까지 내어 준 것이다. 무사히 도착하여 자물쇠를 돌려주려 했더니 선물이라고 한다.

나 홀로 첫 해외 나들이를 따뜻하게 해 준 그녀. 택시를 불러 아이들 기숙사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도와준 그녀가 이번 가을 여행에 생각난다.

나는 지금 두 번째 나 홀로 독일 여행을 하고 있다. 두렵고 떨리지만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녀의 자물쇠가 동행을 하니 자신감과 용기가 생긴다.  작고 차가운 쇠붙이가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2018년 독일로 떠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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