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서둘러 대학 기숙사에 신청을 했다. 독일 대학은기숙사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는데 다행히 일찍 연락이 와서입주를 했다. 한국을 떠난 지 2년이 된 딸은 콜렉을 마치고 아헨공대에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동생과 함께 귀국하기로 했다.
8월 말에 입국하여 9월 말에 출국하는 여정이다. 일찌감치 티켓팅을 하면서 8월 말까지는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한국에 오는날까지 숙소를 찾지 못해짐을 누나의 기숙사에 맡겨야 했다.집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현실을 참작하지 못한 결과를 실감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귀국했으니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을 관광하기로 했다. 수원에서 가까운 광명동굴, 이원익 박물관, 서울 북촌 한옥마을,경복궁을 돌아 제주도에 다녀왔다.
여행을 하는 틈틈이 학교 기숙사와 독일 아헨 지역에 숙소 신청을 하고 매일 확인하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모두 직접 만나보고 결정하자는 답변만 오는 것이다.
더구나 아헨공대는 9월 한 달동안 수학 공부를 미리 신청하여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 있으니 수업도 들을 수 없다. 이과를 선택했지만 수학이 약한 아들은 이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9월 27일에 독일에 도착하는데 수업은 당장 10월 1일부터 시작을 한다니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독일로 돌아가자마자 숙소를 알아보고, 이사와숙소 정리를 해가며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점점 더 부담스러웠나 보다.
"나 이번에도 아이들과 함께 독일에 가야겠어요."
아이들과 함께 탈 비행기 값은 어마어마하게 올랐을 테고12월에는나 홀로 필리핀으로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터라 남편은 재차 물었다.
"왜? 이번엔 왜 가야 하는데..."
'… ….'
아이들과 함께 가는 비행기표는 100만 원이 훌쩍 넘어있었다. 독일행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이 빨갛도록 인터넷을 뒤졌다. 그나마 루프트한자 항공사에서 싸게 나온 것이 있었다. 대신 두곳을 경유해야 한다.
"갈 수 있어. 잘 모르면 손짓 발짓하며 찾아가 보지 뭐."
외국어는 하나도 할 줄 모르면서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 무조건 밀어붙였다.
결국 항공사는 다르지만 환승 없이 아이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하여 똑같은 시간에 도착하는 표를 끊었다. 혼자 간다는 것이 불안했지만 아이들과 함께갈 수 있다는 기대감만으로도 행복했다.
'독일은 세번째인데 잘 갈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1시간 연착한다는 것이다.
'이런.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엇갈리면 어쩌지?'
영화 두 편 보고,잠을 자다가 두세 번의 식사를 마치니 예정시간보다 30분 정도 늦은 시각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독일항공이라 그런지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많았다.
비행기에서 일찍 빠져나왔지만두 갈래길에서 망설였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갔다. 하지만 그곳은 환승 라인이란다.
서둘러 왔던 길로 다시 돌아서 가니 출국장 입구엔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늘어선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들과 딸을 만날 시간은 벌써 한참 지났고 이미 한국에서 끊어 놓은 기차 시간도 1시간밖에남지 않아서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떤 한국인이입국대에서 진땀을 빼고있었다.그녀는 가방을 뒤적이고 핸드폰을 두드리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결국 한 청년이 다가가서 한참만에 해결을 해 주었다. 나도 덜컥 겁이 났다. 돌아가는 표를 보여달라는 것인가? 어디 가는 거냐고 물어보면? 독일에는 왜 왔냐고 묻는 걸까?
나름대로 영어로 대답할 문장을 머릿속으로 만들어내며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차분하게 하자. 당황하지 말고.
무사히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왔지만또어디로 가야 하는지방향을 잃었다. 짐작으로,느낌으로,눈치껏 그림을 보며 찾아갔다.
캐리어를 찾아 밖으로 나가니 아들과 딸이 반갑게 맞아준다. 기빠할 새 없이 기차를 타러 달리고 달려 겨우 시간에 맞춰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