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있는 돌이 나를 돌게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핑 도는 세상

by 오후 네시

화창한 초여름날, 새벽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하는 시간이 매우 상쾌한 요즘이다. 집에서 하는 재활운동이라 상큼한 공기를 듬뿍 머금기엔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면 지저귀는 새 소리와 함께 시원한 새벽 공기가 가득 들어온다. 집도 그리 높지 않아 우거진 나무들이 눈앞에 보이는 천혜의(?) 자연과 함께 재활을 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전 글에서 썼듯이, 감정을 섞지 않고 나를 살리는 루틴을 만들어 실행하는 중이라 오늘도 제 시간에 일어나 휴대폰 알람을 껐다. 그 때였다.


'웅웅...'


이건 마치 바람소리를 묘사한 의성어 같지만, 흔들리는 나의 시야를 표현한 의태어다. 아, 정확히 말하려면 '윙윙'이나 '빙글빙글' 정도가 돼야겠구나. 어쨌든 상당히 흔들리는 시야 때문에 힘들게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선 나는 여느 때처럼 베란다 창문을 열고 모닝 유산균을 먹었다.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바닥에 깔린 매트에 누웠는데 앞이 또 뱅글뱅글 도는 것이다. 뭔가 느낌이 왔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어제 아침에도 잠깐 어지러움을 느꼈는데, 금방 사라져서 개의치 않고 운동을 하고 일상생활을 했다. 사실 최근 몇달 동안 종종 이런 일이 있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날 때나 자려고 누울 때 잠깐 어지럽고 이내 괜찮아져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다. 일어나 활동할 때는 이상이 없어서 큰 문제 삼지 않았는데, 이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된 듯 하다. 우선 패턴을 깨고 다시 누웠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갑상선이 도졌나? 다른 증상은 전혀 없는데.. 갑상선 때문에 어지러운 적도 없었고..'

'일찍 일어나는 게 나한테 안 맞나? 잠도 6시간 반 이상 자고, 예전에 미라클모닝 할 때도 이렇진 않았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가? 최근에 일도 많지 않고 괜찮았는데..'

'영양이 부족한가? 딱히 체중이 줄지도 않고 유지중인데.. 세 끼 잘 챙겨먹고..'

'수분이 부족한가? 요즘 하루 1리터 이상 꼬박꼬박 마시는데..'


갖가지 가정을 해봤지만, 실마리는 잡히지 않았다. 우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피로해서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 다시 50분 가량을 자고 일어났다. 기대와 달리 또 어지럽다. 방법이 없으니 우선 출근준비를 했다. 운전을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차피 출근을 못할테니 운전대를 잡아봤다. 출근준비부터 시작해서 운전대를 잡을 때까지는 또 이상이 없었다. 서서히 차를 몰고 출근을 했다. 다행히 별탈없이 회사에 도착했다.


"행춤아, 너 안색이 안좋다?"


나는 못느꼈지만, 두 명이나 내 얼굴을 보고 안색이 안좋다고 했다. 진짜 이상하긴 한가 보다. 검색을 해보니 '이석증'이나 '메니에르 병'이 의심됐고, 커피를 마시면 안된다고 하여 내 사랑 커피를 건너뛰었다. 그렇게 오전 근무를 시작했는데.. 손님을 받으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시 어지럼증이 올라왔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앉아만 있는데도 어지럽다니.. 시간이 지나자 속도 살짝 메스꺼웠다. 머리도 띵한 기분이었다. 하나가 안 좋으니 그냥 여러 가지로 상태가 메롱이 된 느낌이었다.


6월 비수기라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아 옆에 계신 차장님께 살짝 말씀드렸다.


"이만저만 해서 근처 병원 좀 다녀올게요.."

"응 그래, 다녀와."


배려해주실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영업 시간 중에 자리를 비우는 건 언제나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일하다 쓰러지는 일만큼은 절대 피하고 싶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재활을 하고 글을 쓰는 것도 모두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인데,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지 않는가? 처리하던 손님 업무를 마저 끝내고 은행 문을 나섰다. 햇살은 뜨겁고 길은 한산했다. 그 길을 홀로 걸어가는데 뭔가 홀가분하면서도 씁쓸했다. 꼭 이런 상황이 되어야만 이렇게 한가한 길을 걸을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어 병원에 도착했다. 평일 오전의 이비인후과는 한가했다. 물론 사람이 많은 동네가 아닌 탓도 있었지만 코로나의 영향도 있으리라. 나는 이 시국에 이비인후과를 방문하게 됐다. 쌩뚱맞은 '이석증' 때문에.


이석증(의학명 : 양성자세현훈) : 내이의 반고리관에 발생한 이동성 결석으로 인하여 유발되는 어지럼증.

쉽게 말해 귓 속에 있는 '멀미 방지용 돌멩이'가 제자리를 벗어나 움직여서 생기는 어지럼증이다.


검사 결과는 이변없이 '이석증'으로 나왔다. 좀 더 심각한 '메니에르 병'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었지만, 병은 병이다. 이 놈(이석증)도 쉬운 놈은 아니란다. 감기처럼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놈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작은 한숨이 나왔다. 이 저질 몸뚱이는, 대체 언제쯤 이런 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한탄과 함께.


증상이 심하지 않아(빙글빙글 돌진 않고 살짝 두통이 남았음) 처방받은 약도 먹지 않고 밥만 잔뜩 먹었다. 심한 사람들은 밥도 못먹는다고 하는데, 백반집에서 밑반찬까지 거의 다 먹은 걸 보면 심각한 것 같진 않다, 확실히. 그래도 내게 미션이 하나 더 주어진 셈이다. 갑상선이란 산을 넘으니, 이석증이란 산이 또 나왔다. 평소에 걷는 것도 귀찮아 하고 재활 핑계 대며(실제로 뛰면 발목, 무릎이 아프긴 하다) 유산소 운동을 거의 하지 않은 탓인 게 맞는 듯 하다. 뼈저리게 반성하며, 앞으로는 저녁 먹고 꼭 와이프와 걷기로 했다. 정말 생존은 내게 버겁다. 남들에겐 쉬워보이는 이 생존이, 어찌나 복잡하고 번거로운지.. 가늘고 길게 갈 운명인건가 싶다.


신께서, 방심하면 골로 갈 운명이니 평소에 철저히 관리하라는 뜻으로 내려준 계시라 생각하련다.


아, 또 어지럽다. 어서 자러 가자. 무리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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