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뺏으면 평생 설명해야 합니다' /독일 임원엄마의 '꼬질이' 리더쉽
'오늘도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독일 본사와의 화상 회의가 끝나고 밤 10시. 정갈한 수트, 차가운 명패가 놓인 책상과 머릿속에 남은 숫자들의 잔상을 뒤로한 채 현관문을 열 때면, 제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18년간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를 이끌어온 컨트리 매니저이자, 수천억 매출을 관리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조직을 지휘하는 '대표'입니다. 하지만 도어락 소리와 함께 집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리더가 됩니다. 바로 우리 집 '꼬질이들'의 엄마입니다.
누군가는 '꼬질이'라는 말에서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이 단어는
"아이가 온몸으로 세상을 탐색하며 얻어낸 훈장 같은 흔적" 입니다. 무릎에 묻은 흙먼지나 소매 끝에 배어든 풀냄새는,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배우고 있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였으니까요.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임원까지 하면서 애들 뒷바라지는 언제 하셨어요? 비싼 고액 과외라도 시키셨나요?" 그럴 때면 저는 빙그레 웃으며 제 서재 한쪽, 낡아서 모서리가 헤진 그림책 한 권을 바라봅니다. 바로 『사랑한다 우리 아기 꼬질이』입니다. 제 교육의 비결은 거창한 입시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 수트 단추를 채우는 법보다 더 중요하게 배웠던, 독일 유치원 모래밭에서의 '기다림'이 그 뿌리였습니다.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20여 년 전, 독일 유치원 참관 수업 날이었습니다. 6개월 된 아이가 모래밭에서 놀다 떨어진 마른 나뭇잎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겠어요? "안 돼!"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려던 제 옷자락을 독일 선생님이 조용히 붙잡았습니다.
"기다리세요(Warten Sie). 아이가 저걸 직접 맛보면 맛이 없어서 스스로 뱉을 겁니다. 그러면 다신 먹지 않겠죠. 하지만 당신이 지금 뺏어버리면, 당신은 앞으로 아이에게 저게 왜 나쁜지, 그 이유를 수백 번은 더 설명해야 할 겁니다."
번개를 맞은 듯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배울 기회를 박탈하려 했던 제 조급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뭇잎은 그저 나뭇잎일 뿐이고, 조금 지저분해진다고 아이가 잘못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깨닫는 그 1분의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 주도성'의 시작이었습니다.
독일 유치원에선 아이가 음식을 사방에 흘려도 절대 떠먹여 주지 않았습니다. 숟가락을 50번 떨어뜨리면 50번을 묵묵히 주워줄 뿐이었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수없이 흔들렸습니다. "내가 떠먹이는게 더 빠른데..."
그 생각이 매일 목구멍까지 올라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방식을 따라보기로 했습니다. 아이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 제가 독일에서 배운 첫번째 원칙이었고, 그 '기다림의 근육'은 훗날 한국의 치열한 입시 현장에서도 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한창 업무에 몰두하던 오후, 학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조심스러운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어머니, 여긴 대치동이잖아요. 요즘 이 동네 초등학생들 사이에 사회 60점은 정말 보기 드문 점수라... 혹시라도 다른 친구들이 점수로 놀리거나 해서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아예 잃어버릴까 봐 미리 말씀드려요."
대한민국 교육의 심장부라는 대치동, 그 촘촘한 긴장감 속에서 선생님마저 아이의 앞날을 걱정하셨지만, 저는 그저 꼬질이 엄마의 감각으로 직감했습니다. '지금 이 9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문제집 한 권이 아니라, 엄마라는 든든한 방패다.'
저는 선생님께 "세심하게 살펴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히 인사를 드린 뒤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풀이 죽어 있을 아이를 마주했을 때 저는 얼굴을 찌푸리는 대신 아이를 꼭 안아주며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 우리 윤이~ 그래, 사회는 외울 게 너무 많지? 9살이 그걸 어떻게 다 외우겠어! 엄마는 우리 윤이가 수학이랑 국어 80점 넘게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 훌륭하고 기특한걸? ^^"
저는 아이들에게 1등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이 가족의 가장으로서 회사에서 최선을 다할게. 너희는 학생이니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줘. 우린 한 팀이니까."
남들이 '대치동의 속도'에 조급해하며 아이를 다그칠 때, 저는 숟가락을 50번 주워주던 그 인내심으로 아이의 '결정적 시기'를 묵묵히 기다려주었습니다. 억지로 떠먹여 주는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배고픔을 느껴 집어 든 숟가락은 결국 아이들이 스스로 인생이라는 프로젝트를 완수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58세, 인생의 큰 한 챕터를 마무리하며 제가 지켜온 이 '꼬질이 리더십'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우리 엄마 꼬질이'라 부르며 보듬었던 그 마음,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 한 명당 3권씩 책을 읽어주겠다던 그 약속이 어떻게 저와 제 아이들을 성장시켰는지 말이죠. 결코 완벽해서가 아니라 수없이 흔들렸지만 끝내 "기다림"을 선택했던 이야기로요.
일과 육아 사이에서 자책하고 있는 수많은 워킹맘에게, 그리고 인생 2막을 고민하는 동료들에게 제 이야기가 작은 위로와 힌트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은
아이보다 먼저 답을 말하지 않으셨나요?
"앞으로 18년의 리더 경험과 두 아이를 키워낸 '기다림의 철학'을 이곳에 기록하려 합니다. 저와 함께 '꼬질이 리더십'의 여정을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매주 월요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