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밤 책 3권, 꼬질이들의 상상력 근육 & 마음의 근육키우기
시차로 인해 독일 본사와의 컨퍼런스 콜이 밤늦게 끝납니다. 모니터 속 쏟아지는 수치와 날 선 영어 문장들을 뒤로하고 서류 가방을 던져두듯 현관에 들어서면, 방전된 배터리처럼 몸의 감각들이 하나둘 꺼져 내립니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은 밤. 하지만 저에겐 퇴근 후 시작되는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바로 두 아이의 머리맡에 앉아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집 꼬질이들은 한글을 꽤 늦게 뗐습니다. 일곱 살이 다 되도록 자기 이름 석 자 겨우 쓰는 수준이었죠. 주변 엄마들이 학습지를 돌리고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며 조급함에 발을 동동 구를 때, 저는 독일에서 배운
'기다림'의 가치를 믿기로 했습니다. 독일의 교육은 지식을 주입하기 전에, 그 지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먼저 만드는 데 집중하니까요.
"지식을 주입하기 전에, 글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먼저 심어주자."
그 결심으로 시작한 것이 '매일 밤 책 3권 읽어주기'였습니다. 아이 한 명당 3권씩, 두 아이면 총 6권. 한글을 스스로 떼기 전까지 7년 동안, 저는 이 약속을 단 하루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해외 출장을 다녀와 공항에서 바로 집으로 달려온 날도, 고단한 회사 일로 목이 쉰 날도 저는 아이들 곁에서 책장을 넘겼습니다. 때로는 아이보다 제가 먼저 졸음에 겨워 글자가 뭉개지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작은 숨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어주는 그 시간은 저에게도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책은 『너를 사랑해 우리 아기 꼬질이』 등이었습니다. 온갖 사고를 치고 온몸이 꼬질꼬질해져도 엄마는 늘 "그래도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해주는 이야기죠. 저는 그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의 통통한 발을 만졌습니다.
"엄마가 회사 다니느라 늦게 와서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우리 꼬질이들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책 읽어주기는 단순한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바쁜 워킹맘인 제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시간의 증거'이자,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랑의 울타리'였습니다.
세계적인 독서 교육 전문가 짐 트렐리즈(Jim Treleas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뇌 속에 '즐거움'이라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일이다. 글자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책과 사랑에 빠지게 하라."
돌이켜보니 제가 7년 동안 매일 밤 행했던 그 '읽어주기'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평생 꺼지지 않을 '즐거움의 배터리'를 꽉꽉 채워 넣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글자 몇 자를 깨치는 것보다, 책이라는 존재를 '엄마의 따스한 온기'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그 배터리가 가득 찼기 때문일까요?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학습지 교사나 억지스러운 쓰기 교육 없이도, 어느 날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읽어주는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다음 장면이 보고 싶어서 아이들은 스스로 글자를 깨우쳤습니다. 억지로 시킨 공부가 아니라 '즐거움'을 찾기 위한 능동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글자를 깨친 아이들은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무서운 기세로 책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을 뜨자마자 책을 집어 들었고,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책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종일 책을 읽어댔습니다. 거실 바닥, 소파, 심지어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아이들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탐험가의 열광에 가까웠습니다. 7년 동안 엄마의 목소리로 차곡차곡 쌓아온 '이야기의 힘'이 아이들의 안에서 폭발한 것입니다. 하루 종일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을 보며, 저는 확신했습니다. "주변의 속도에 휩쓸려 아이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억지로 한글 공부를 시키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이죠. 만약 제가 불안함을 이기지 못해 아이의 손에 연필을 쥐여주고 억지로 글자를 외우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아이에게 책은 '즐거운 탐험지'가 아니라, 빨리 해치워야 할 '지겨운 숙제'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억지로 주입하지 않았기에 아이의 안에는 지식에 대한 '허기'가 남아 있었고, 그 허기가 스스로 책을 집어 들게 만드는 강력한 엔진이 되었습니다. 공부는 머리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빠져드는 몰입의 경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7년 동안 매일 밤 쌓아온 이 '상상력의 근육'은 훗날 아이들이 의대 입시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섰을 때 무서운 힘을 발휘했습니다. 수천 페이지의 전공 서적을 읽어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도, 어릴 적 엄마 무릎에서 배운 '읽기의 즐거움'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제 서재에는 모서리가 다 닳아버린 그 낡은 그림책들이 놓여 있습니다.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 만들어진 '마음의 근육'으로 하는 것임을 저는 그 책들을 보며 다시금 깨닫습니다.
"오늘 밤, 아이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대신 '엄마의 목소리'를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15분의 시간이 훗날 아이가 세상을 버티는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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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속도가 주변보다 늦어 보여 마음 졸였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조급함을 내려놓고 아이를 믿어주었던 작지만 위대한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나누어주세요. 함께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