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딱 10분만 주세요! 덜컥, 아이가 세상을 읽기 시작했다.
여섯 살 내 아이가 유치원 신발장 앞에 화석처럼 멈춰 섰습니다. 친구들이 교실로 뛰어 들어가는 소란 속에서도 아이는 미동도 없었습니다
제 이름 조차 가물가물해하고, 한글 공부라면 도통 관심이 없던 우리 집 둘째. 아이는 갑자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책상다리를 하고는, 친구들이 신발을 넣는 모습과 이름표를 번갈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선생님이 달려와 아이를 일으키려 할 때, 저는 본능적으로 선생님의 소매를 살며시 붙잡았습니다. 간곡하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선생님, 딱 10분만요. 저 아이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하고 있는 중 인듯해요!.”
사실 아이는 그동안 제 신발장을 찾지 못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이에게 신발장이란 '글자'로 읽는 곳이 아니라, '현관문에서 세 번째, 위에서 두 번째 칸'이라는 공간의 좌표로 기억되는 곳이었을 뿐입니다.
아이에게 이름표는 그저 의미 없는 무늬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이는 처음으로 그 무늬와 공간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아! 저 글씨가 저 친구를 부르는 이름이구나!"
신발장 앞에서 아이의 눈이 반짝였고, 그 찰나, 아이에게 글자는 더 이상 죽어있는 기호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나비의 ‘나’가 아니라 단짝 친구 ‘나영이’의 얼굴이었고, ‘호’는 호랑이의 '호'가 아니라 장난꾸러기 친구 ‘준호’의 웃음소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지식은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른이 정답을 가르쳐주는 순간,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발견하고 자기만의 논리(Schema)를 세울 기회는 영원히 사라진다고 합니다. 18년 동안 성과를 위해 정답만 찾아 헤맸던 저였지만, 그날 만큼은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구성'해 나가는 그 신비로운 문턱을 넘도록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정해진 수업보다, 신발장 앞 이 10분이 아이에겐 진짜 인생의 공부가 될 것임을 직감했고, 지식을 주입하는 속도보다, 아이의 호기심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는 그 ‘찰나의 흐름’이 훨씬 소중했기에, 저 또한 매일 아침 종종 대야하는 촉박한 회사출근 시간을 조금 미룬 채, 아이의 그 모습을 조심스레 폐부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이는 몇 주를 매일 신발장 앞에 앉아서, 글자들을, 이름들을 익혀나갔습니다.
저는 18년 동안 독일계 기업의 지사장으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1분 1초의 효율과 성과가 생존인 비즈니스 세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내 아이의 교육에서만큼은 그 무시무시한 ‘효율’이라는 단어를 가차 없이 지워버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의 등 뒤에서 학습지를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호기심의 날개를 펼칠 때 그 흐름이 꺾이지 않도록 튼튼한 울타리를 쳐주는 것. 그리고 아이가 벅찬 발견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볼 때, 온 마음을 다해 감탄해 주는 것.
“와우! 놀라운걸? 최고야! 정말 멋지다!”
이것이 돌이켜보면, 제가 지켜온 ‘ 꼬질이 (Cojili) 기다림의 리더십’이었습니다.
한글이 늦어 저를 애타게 했던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억지로 글자를 깨우치지 않았던 아이는 스스로 발견한 세상의 재미를 따라 어느덧 의대생이 되었습니다.
신발장 앞의 그 10분은 결국, 남이 닦아놓은 길을 달리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길을 찾는 ‘미래의 리더’로 성장하는 첫 단추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우리 부모들이 살아가는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속도’가 생명이지만, 아이의 성장에서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발견의 밀도’로 믿고, 그저 아이 곁에 있던 바쁜 엄마일 뿐이었습니다.
에필로그
지금 여러분은 아이를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부하 직원’으로 대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믿고 지켜봐 주어야 할 ‘미래의 리더’로 대하고 계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