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장 워킹맘이 다시 꺼내보는 의대 남매 '꼬질이' 앨범 고백
오늘도 거실은 아이의 장난감과 잔소리로 어지럽습니다. 어느덧 커버린 아이를 보며 우리는 자꾸만 무언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우리 공부 좀 할까?", "똑바로 앉아야지..", "왜 이것밖에 못 했니?". 마치 아이를 내가 관리해야 할 '성과 지표'처럼 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마음속의 태엽을 20여 년 전으로 되감아 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 '꼬질이'들을 간절히 기다렸는지, 그 10달의 기억을 말입니다.
독일계 기업의 지사장으로 발령받아 숫자로 세상을 읽던 시절, 제 인생에서 가장 경이로웠던 숫자는 매출액도, 영업이익률도 아니었습니다. 산부인과 검진실의 차가운 초음파 기계 너머로 들려오던 '두근, 두근' 규칙적인 아이의 심장 소리였습니다.
그때 저는 무엇을 바랐을까요? 이 아이가 나중에 의사가 되기를, 1등이 되기를 바란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무사히만 태어나기를..', '손가락 발가락이 열 개 모두 달려만 있기를...'. 내 목숨보다 소중한 10달 동안 저의 유일한 KPI(핵심성과지표)는 오직 아이의 '건강한 숨소리'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를 기억합니다. 핏덩이 같고 꼬질한 모습이었지만, 저는 그 작은 생명을 품에 안고 세상을 다 얻은 듯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존재 자체가 기적이었고, 존재만으로 우리 삶의 모든 이유가 설명되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는 그 경이로움을 너무 쉽게 잊습니다. 아이의 서툰 몸짓은 '교정해야 할 대상'이 되고, 느린 걸음은 '재촉해야 할 문제'가 됩니다. 리더로서 직원을 평가하듯 아이를 재단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만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아이는 내가 관리할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가 지켜내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을요.
사실 비즈니스의 세계는 철저히 '소유 양식'으로 돌아갑니다.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는지, 어떤 타이틀을 가졌는지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곤 하죠.
앨범 속 제가 쓴 글들은 오로지 아이의 '존재'만을 향해 있었습니다. 아이가 무언가 성취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곁에 숨 쉬며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열 달 내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의 사랑'을 해본 사람들입니다.
아이의 서툰 행동 앞에 평정심의 균열이 생기고 마음이 뽀족해 지는 순간, 저는 잠시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태동을 느끼며 배를 쓰다듬던 그 간절했던 10달을 떠올립니다.
"너는 존재만으로 이미 내게 모든 효도를 다 했단다."
그 기억을 소환하는 순간, 아이를 바라보는 지사장의 날카로운 눈매는 다시 엄마의 부드러운 눈빛으로 돌아옵니다. 꼬질이들이 실수를 해도, 조금 뒤처져도 괜찮습니다. 목숨을 걸고 만난 그 10달의 약속에 비하면 지금의 고민들은 아주 사소한 해프닝일 뿐이니까요.
여러분은 오늘, 아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셨나요? >
혹시 10달 동안 품었던 그 경건한 초심을 잊고 아이를 '성과'로만 대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여러분이 아이를 기다리며 앨범이나 일기에 남겼던 가장 간절했던 한 줄은 무엇이었나요? 댓글로 함께 나누며 그날의 초심을 함께 회복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