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내 아이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결핍이 가져다준 위대한 성과들 / 남매의 K-의대 진학

by Reich 라이히

대한민국이 '오은영 신드롬'에 열광하며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법에 집중하기 훨씬 이전인 28년 전, 저는 독일의 한 서점에서 운명 같은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부모 교육에 접목시킨 세계적인 심리학자 루돌프 드라이커스의 『아이들의 도전(Children: The Challenge)』이었지요.

​생생한 실제 사례들로 가득했던 그 책을 읽으며 저는 전율했습니다. "이건 꼭 한국에 소개해야 해!"라고 결심하며 번역서 출간까지 꿈꿨을 만큼, 제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육아가 무조건적인 '헌신'과 '인내'에 머물러 있을 때, 저는 드라이커스가 강조하는 '단호한 자립''논리적 결과에 따른 책임'에서 <미래 리더의 자질> 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오은영 박사님이 강조하는 '공감'과 '이해'가 아이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면, 드라이커스의 철학은 그 열린 마음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돕는 '단단한 가이드라인'과 같습니다. 저는 그 가이드라인 안에서 아이가 마주해야 할 세상의 '선(Boundary)'을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천재로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경영자'로 자라게 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였습니다.


내 아이의 '생존 기술'을 목격하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우리 아이, 천재 아닐까?"라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를 기르는 내내 단 한 번도 제 아이가 천재, 영재라고 느껴본 적이 아쉽게도 없습니다.

​대신 저는 종종 아이가 가진 '생존의 기술'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지렛대 삼아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부모의 허용 범위를 조심스레 탐색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아주 작은 리더'의 모습이 보였거든요. 저는 아이의 지능을 키우기보다, 이 영리한 에너지를 '약속'이라는 사회적 테두리 안에 안착시키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마트 바닥의 눈물, 그리고 '5분의 침묵'

​큰아이가 두 살 무렵, 독일의 한 마트에서였습니다. 아이는 장난감 두 개를 사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지요. 저의 거절에 아이는 마트가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저는 유모차를 끌고 마트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눈을 똑바로 맞추며 조용히 말해주었습니다.

​"속상하겠지. 하지만 엄마는 네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줄 만큼 부자가 아니야. 그리고 우리는 이미 하나만 사기로 약속했어.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 엄마는 여기서 기다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웠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의 감정이 스스로 잦아들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거짓말처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뚝' 아이는 눈물을 그쳤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는 마트에서 생떼를 쓰는 법이 없었습니다. '떼'라는 무기가 '원칙'이라는 벽을 결코 넘을 수 없음을 몸소 깨달은 것입니다

"아이의 자율성은 '하지 마'라는 금지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 마리아 몬테소리 (이탈리아의 교육학자)


식탁을 떠날 용기: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아이가 여덟 살 무렵, 한국의 식당에서도 시험은 계속되었습니다. 식당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뛰면, 우리는 바로 집에 갈 거야." 잠시 제 눈치를 보던 아이가 이내 다시 뛰기 시작한 순간, 저는 망설임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음식이 막 서빙되려던 찰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엄마도 맛있는 음식을 못 먹어서 속상해. 하지만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야." ​그날의 '배고픈 귀가'는 백 마디 잔소리보다 강력했습니다. 아이는 그날 이후 공공장소의 예의와 약속의 무게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지만, 아이가 스스로 결과를 책임지게 하는 것은 스스로 걷게 하는 것이다."

— 루돌프 드라이커스 (아동심리학자)


결핍이 가져다준 위대한 성과들

​우리는 흔히 한부모 가정이나 경제적 빈곤 같은 환경을 아이에게 준 상처나 '결핍'이라 부르며 미안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결핍을 채워주려 노심초사하지 않았습니다. ( 어차피 저또한 그 상황들을 바꿀 수 없었기에 말입니다.) 대신 그 결핍을 스스로를 밀고 나가는 '힘(Leverage)'으로 바꾸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경영에서 자원의 부족이 혁신의 이유가 되듯, 삶의 결핍은 아이에게 예상치 못한 성과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엄마가 다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이는 냉철한 '상황 판단력'을 키웠고, 부족함을 스스로 메워 나가는 과정에서 '자기 주도적 성취감'을 얻었습니다. 결핍을 결함이 아닌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맷집, 즉 '회복 탄력성'은 덤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결핍이 '간절함'과 '창의성'으로 숙성되기를 기다려주었습니다. 그 선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부족함을 원망하는 대신, 어떤 환경에서도 길을 찾는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많은 부모가 아이의 잘못을 알면서도 타협하는 이유는 당장의 '쪽팔림'( 표현이 거칠어 송구합니다만, 정말 이 표현이 상황을 제일 잘 말해주는 듯합니다.) 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경영으로 치면 가장 나쁜 리스크 관리입니다.


저또한 당시 엄마가 처음인 초보 엄마로, ​천재성을 발견하려 애쓰지 않았고 (어쩌면 그럴 시간적여유도 없었습니다), 결핍을 가려주려 노심초사하지도 않았습니다.(가장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할 수 없는 부분들 (한부모 가정, 경제력..)에 대한 일정부분 "포기" 였을 듯도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본능을 다스리고 약속의 무게를 감당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것이야말로 험난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되는 것이니까요.


부모의 원칙은 아이에게 결핍을 이겨낼 '지도'를 그려주고, 부모의 인내는 아이에게 '자제력'이라는 최고의 지능을 선물한 듯 합니다. 시간이 흘러보니... 이 결핍의 힘이야말로, 저희 두 남매를 " 의과대학" 에 진학하게 만든 "지표" 라 믿기에, 후배 부모님들께 또 하나의 작은 지도 한부분을 그려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제6화] "아빠는 왜 없어?"에 노는 것으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