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서 ‘버리는 카드’라던 의대 수시원서

8학군 전교1~2등, 수시 6곳 탈락… 그리고 정시 합격

by Reich 라이히

“어머니, 이 원서는 그냥 버리는 카드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3년 동안 스스로 써 내려간 기록이‘이따위’라는 평가를 받던 날이었으니까요. 매주 토요일, 거리가 꽤 있는 장애인 시설에서 실내화를 빨고, 장애인들과 어르신들의 몸을 씻겨드리던 시간들.

그리고 꾸준히 이어온 헌혈. 그 모든 시간이, 대치동에서는 그저 ‘버리는 카드’였습니다.

버리는 카드였던, 3년의 봉사 기록들. (하지만, 이 시간들 안에서 아이는 '의대' 꿈이 생겼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수천만 원을 들여 컨설팅을 받고, UN 해외 봉사니, 세계 학술대회 논문 저자 등재니 하는 화려한 스펙을 수놓을 때, ( 당시 대한민국 언론이 온통 이일로 시끄러워서 알게 되었지만,) 우리 아이의 원서에는 너무나 투박한 기록들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매의 다른 선택, 그리고 닥쳐온 시련

​저는 정치가도, 교육학자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꼬질이들 엄마" 였고, 그저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길 바랐으며, 사회에 나갔을 때 본인의 결정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힘을 갖길 바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오직 ‘가정교육’이라 믿으며 저만의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참 냉혹하더군요. 영어학원 하나를 고를 때부터 성향이 달랐던 남매는 입시에서도 각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첫째: 고1 여름방학 무렵, 모든 내신과 실기를 매 순간 챙겨야 하는 수시 대신 ‘정시’로 승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모두가 바늘구멍이라며 말렸지만, 저는 아이의 결정을 믿어주기로 했습니다.


​둘째: 8학군 전교 1~2등. 학교 선생님들조차 의대 합격은 문제없다고 장담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지원한 6곳의 수시 의대에서 모두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왜 떨어졌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깜깜이 결과", 아이와 함께 가슴을 치던 시간들. 그 의문은 얼마 후 대한민국을 뒤흔든 입시 비리 사태들을 지켜보며 비로소 아프게 풀렸습니다.


비교 불가했던 ‘그들만의 리그’

​동네 시설에서 땀 흘리며 실내화를 빨던 우리 아이의 봉사와, 거액의 컨설팅으로 만들어진 세계적 학술대회 스펙이 어떻게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었을까요? 대치동의 유명 학원들이 미리 짜놓은 완벽한 시나리오 앞에, 아이 스스로 쓴 '정직한 원서' 는 이미 ‘예정된 탈락’이었음을 매스컴을 통해 가슴 저미게 깨달았습니다.


​“내가 틀렸던 걸까? 수천만 원을 투자해서라도 남들처럼 스펙을 만들어줬어야 했나?” 의학서적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동네 봉사가 아닌, 뉴스에 도배되는 해외봉사... 그런 스펙이라도 만들어줬어야 했을까요?

​부모로서 느끼는 무력감과 미안함에 밤잠을 설친 날도 많았습니다. '정직함'이라는 가치가 이 거대한 벽 앞에서는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그 회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 대신 결정해주는 길, 아이 대신 만들어주는 길 을 결국 포기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의 뒤도 쫓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의 발자국만을 남길 뿐이다."


결국 승리하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그때의 제 선택이 옳았음을 아이들을 통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의 힘으로 의대에 진학한 아이들은, 그 혹독한 의대 공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상위권을 유지하며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의대를 진학한 학생들, 그 두 배의 학부모들 안에서 저는 "외계인" 같은 엄마였을거라 생각합니다.


​부모가 닦아놓은 꽃길만 걸어온 아이들이 의대의 거친 학업과 실습 앞에서 비틀거릴 때,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 온 그 ‘내면의 근육’으로 승부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보다 훌쩍 커버린 녀석들이 소위 ‘마마보이’ 동기들의 한계를 가끔 전달해 줄 때면, 저는 비로소 안도의 미소를 짓습니다.​“아, 이제는 내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괜찮은, 당당한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의사’라는 타이틀 이전에, 어떤 비바람 속에서도 자신의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단단한 자생력" 이 아닐까요. 제 아이의 의대수시원서는 ,비록 당시엔 대치동 전문가에게 무시당했던 원서였지만, 그 속에 담긴 정직과 주도성이야말로 아이들이 평생 가져갈 가장 강력한 무기였음을 이제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당장은 '정직함' 과 '투박함'이 손해처럼 느껴질지라도, 아이의 손에 쥐여준 ‘스스로 결정하는 힘’은 결코 배신하지 않습니다

전문가의 비웃음을 샀던 그 원서 전략이 어떻게 승리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배운 진짜 '공부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다음 화에서는 남대문 시장과 호텔 라운지를 오가며 가르쳤던 '결핍의 교육' 이야기로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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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라는 낯선 공간에서 첫걸음을 떼다 보니, 이 브런치북 목차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제1화부터 7화까지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 이 북에 넣는 방법을 아직 못찾았습니다... ) 작가의 프로필 옆 '글' 목록에서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서툰 시작의 기록들에도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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