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돌아온 이름

by 고강아놀자

제16장: 돌아온 이름

1965년의 제주는, 마치 아주 길고 혼란스러운 연주가 끝난 뒤 악기들이 제멋대로 놓인 무대와 같았다. 태풍은 지나갔고, 구호물품으로 들어온 밀가루 포대는 비워졌으며, 이시돌의 푸른 목초지는 이제 더 이상 기적이 아닌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4-H 클럽의 소년들은 제법 그럴듯한 감자를 수확했고, 그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어설픈 자부심이 희미하게 어려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평화는 어딘가 어색했다. 완벽하게 조율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는데, 악보의 가장 중요한 한 파트가 통째로 비어 있는 것처럼. 첼로 파트가 통째로 증발해버린 현악 4중주처럼. 그 공백은 소리가 아닌, 기묘한 침묵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임피제 신부는 자신의 작은 거처, 툇마루에 앉아 그 침묵의 정체를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는 미군 부대에서 얻어온 원두를 맷돌에 갈아 커피를 내렸다. 거친 돌과 단단한 원두가 만나 으스러지는 서걱거리는 소리, 뜨거운 물이 부어질 때 피어오르는 구수하고 씁쓸한 향기. 그에게는 그것이 기도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갓 내린 커피를 낡은 머그잔에 따라 한 모금 마셨다. 혀끝을 감싸는 뜨거움과 쌉쌀함이 그의 정신을 현실의 좌표 위로 단단히 고정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는 축음기에 낡은 LP판을 올려놓았다. 먼지를 닦아내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올리자, 잠시의 정적과 함께 희미한 잡음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스콧 매켄지(Scott McKenzie)의 <San Francisco>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라는, 세상의 모든 온화함과 순진한 낭만을 담은 그 노래는, 제주의 거친 바람 속에서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어떤 종류의 슬픔처럼 들렸다. 그의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었다. 돼지는 새끼를 낳았고, 풀은 겨울에도 자랐으며, 소년들은 흙을 만지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축음기의 바늘이 레코드판의 깊은 흠집을 지날 때처럼, 아주 미세하지만 집요한 잡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잡음의 근원은 하나의 이미지였다. 4-H 클럽의 작은 전시회가 열리던 날, 소년들의 세계 바깥에서, 그 모든 소란과 성취를 그림자처럼 지켜보던 소녀들의 눈빛. 부러움과, 소외감과, 그리고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서늘한 체념이 뒤섞여 있던 그 눈빛. 그의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배는 순항하고 있었지만, 그 배의 가장 깊은 화물칸에는 이름 모를 무거운 짐이 실려 있었고, 그 무게 때문에 배는 미세하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는 다만, 그 기울기의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할 뿐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만든 것은 하나의 엔진이라고. 하지만 그 엔진은 어딘가 불완전 연소하며 계속해서 희미한 진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전시회 날, 소녀들의 무리 가장자리에는 고은영도 서 있었다. 그녀는 다른 소녀들처럼 부러움이나 소외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차가웠고, 분석적이었다. 그녀는 소년들이 서툰 솜씨로 쌓아 올린 감자 피라미드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감자를 키우는 데 들어간 시간과, 흙과, 비료의 양을, 그리고 그 결과물의 시장 가치를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그 모든 것은 비효율적이고 감상적인 놀이일 뿐이었다. 그녀의 침묵은 체념이 아니라, 더 우월한 시스템을 갈망하는 지식인의 오만한 고독이었다. 임피제는 그때 그녀의 눈빛을 보았지만, 그 의미를 온전히 해독하지는 못했다.

원인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마치 계시처럼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늦가을의 어느 비 오는 날 오후였다. 며칠째 이어진 비는 세상의 모든 색을 씻어내고, 오직 젖은 흙의 짙은 갈색과 하늘의 잿빛만을 남겨놓았다. 우편배달부가 자전거를 타고 툇마루 앞을 지나갔다. 그는 비에 젖은 채, 임피제에게 눅눅한 소포 하나를 건넸다. 부산항에서 일하는 동료 신부로부터 온 뒤늦은 소포였다.

소포 안에는 그가 부탁했던 신학 서적 몇 권과, 완충재로 쓰인 낡은 신문지 뭉치가 들어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죽은 시간의 화석과도 같은 물건. 비에 젖은 신문지에서는 오래된 종이 냄새와 함께, 희미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는 책을 꺼내 책장에 꽂고, 젖은 신문지를 난로 옆에 펼쳐 말리기 시작했다. 그는 커피를 다시 데우며, 무료하게 신문의 사회면을 훑어 내려갔다. 대통령의 동정, 새로운 경제 정책, 그리고 수많은 사건 사고들. 대부분은 그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먼 행성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는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바로 그때, 그의 시선이 기사들 틈에 끼어 있는, 아주 작은 단신 기사에 머물렀다. 그것은 마치, 완벽하게 흰 벽에 난 아주 작은 균열 같았다.

<여공, 공장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

기사는 지극히 건조했다. 부산의 한 방직 공장에서 일하던 부소영(가명, 18세) 양이 영양실조와 과로로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공장의 좁고 축축한 기숙사 방 한편에서, 그녀는 마치 닳아빠진 기계 부품처럼, 조용히 작동을 멈췄다. 경찰은 타살의 흔적은 없다고 발표했다. 기사의 마지막 줄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부 양은 제주 한림 출신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상경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부소영. 제주 한림.

그 단어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마치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처럼, 몇 번이고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었다. 그는 특별한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5년 전의 기사였다. 이미 시간의 강 저편으로 흘러가 버린, 수많은 이름 없는 죽음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그저, 커피 잔을 든 채, 그 짧은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시스템의 그 기묘한 기울기의 원인을 마침내 찾아낸 엔지니어와도 같았다. 그는 문제를 애도하지 않았다. 그는 문제를 분해하고, 분석하고, 해답을 설계했다. 부소영이라는 이름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하나의 집요한 고음(高音)이 되어, 그의 모든 생각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는 깨달았다. 부소영은 죽었지만, 그녀의 유령은 여전히 이 섬을 떠돌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소녀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양순임을 떠올렸다.

몇 년 전, 부산의 공장에서 도망치듯 돌아온 소녀. 그녀는 이제 어엿한 처녀가 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도시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죽은 소녀의 살아있는 유령과도 같았다. 그녀는 웃지 않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이전까지 그녀는 그저, 마을의 수많은 침묵하는 얼굴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임피제의 눈에 그녀는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로 읽히기 시작했다. 해독해야 할, 그러나 누구도 읽으려 하지 않았던 책.

임피제는 그때부터 양순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의 오랜 습관이자, 그만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그는 돼지를 관찰했고, 흙을 관찰했으며, 이제는 한 인간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사연을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녀라는 존재가 드러내는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뿐이었다. 마당을 쓰는 그녀의 모습,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그녀의 뒷모습, 저녁 무렵이면 방 안에 홀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실루엣. 그녀의 거칠어진 손,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듯한 단단한 침묵. 그는 양순임의 텅 빈 눈동자 속에서, 도시의 소음과 착취가 한 인간의 영혼에 남긴 '상실의 풍경'을 읽어내려 애썼다.

그는 마침내 문제의 본질을 정의했다. 이 섬의 진짜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선택의 부재'였다. 소년들에게는 밭과 바다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4-H 클럽이라는, 서툴지만 새로운 놀이터도 생겼다. 하지만 소녀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들에게 주어진 길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섬에서 평생 밭을 매거나, 혹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미지의 도시로 떠나는 것. 그리고 도시로 떠난 대부분의 소녀들은, 부소영처럼 소모되거나, 양순임처럼 부서져서 돌아왔다. 그것은 시스템의 명백한 결함이었다. 한쪽 바퀴가 빠진 채 굴러가는 마차와도 같았다. 그는 이 결함을 수리해야만 했다. 이것은 '여성 인권'이라는 거대 담론이 아니었다. 그의 방식대로라면, 이것은 '활용되지 못하고 파괴되는 인적 자원'의 문제였다. 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아무런 대책 없이 외부로 유출되고 있었다. 이것은 비효율의 극치이자, 시스템 설계의 명백한 실패였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정물의 테쉬폰 앞에서 홀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4-H 클럽 아이들이 키우다 병들자 귀찮다며 버려두고 간, 잿빛 털의 늙은 토끼 한 마리가 모닥불의 온기를 찾아, 경계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임피제는 빵 조각을 조금 떼어 바닥에 놓아주었다. 토끼는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다가와 빵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가만히 손을 뻗어, 토끼의 등을 쓸어주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모든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손끝 아래로 느껴지는, 세상의 모든 거친 것들과는 대척점에 있는 듯한 부드러움. 살아있는 것만이 가질 수 있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온기.

그는 양순임의 손을 떠올렸다.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밭에서 돌을 골라내던 그 손. 흙과 서러움으로 굳어버린 그 손. 그 차갑고 거친 손에, 지금 자신의 손끝이 느끼는 이 부드러움과 온기를 쥐여줄 수 있다면. 그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 연약하지만 끈질긴 온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구원이 아닐까. 토끼 털만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저 언덕 위를 어슬렁거리는 양 떼. 그들의 거친 털. 그렇다. 그 거칠고 투박한 양모야말로, 가공을 거쳐 이 연약한 온기를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었다.

양모(羊毛). 실. 베틀. 옷.

토끼의 부드러움이 그의 마음에 질문을 던졌고, 양의 존재가 그 해답을 제시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창업, 즉 '없던 시장'을 만들고, '존재하지 않던 가치'를 창조하는 일이었다.

그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이것은 목초지를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의 가장 깊은 상처와 마음을 상대로 하는, 가장 대담하고 위험하며, 불확실한 실험이었다. 실패의 리스크는 비교할 수 없이 컸다. 하지만 그는 이미,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새로운 시스템의 청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스콧 매켄지의 LP판은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나, 레코드판은 무심하게 제자리를 돌며 희미한 마찰음만을 내고 있었다. 그는 그 판을 들어내고, 새로운 음반을 올렸다. 폴 앵카(Paul Anka)의 <My Way>. 후회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왔노라고, 조금은 촌스럽지만 단호하게 외치는 그 노래는, 지금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는 펜을 들어, 아일랜드의 누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누님. 메리. (중략) 혹시, 낡아서 쓰지 않는 베틀이나, 양모를 다루는 기술에 관한 책이 있다면, 저에게 보내 줄 수 있겠습니까? 이곳의 소녀들에게, 실을 잣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들이 자신의 삶을 잣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편지를 봉투에 넣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양순임의 집 창호지에 희미한 등잔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 저 불빛 너머의 소녀가, 과연 자신의 기이한 제안을 받아들이게 될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이제 멈출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한림수직'이라는 이름의, 세상에 없던 공장이, 그 기이하고 아름다운 테쉬폰의 둥근 지붕 아래에서, 이미 베틀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노래는 아직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심장 속에서는 이미, 그 어떤 교향곡보다도 더 웅장하고 절실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창업가 임피재 : 삽을 든 신부> 1부 끝.


<작가의 글>

어쩌다(emergent) 1부를 마무리 하였네요.

아마추어의 서툰 글솜씨인데, 즐거우셨는지 모르갰네요. 즐겆게 읽어주셨다면 가문의 용광입니다. ^^

2부도 바로 연재 예정이니 많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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