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성공의 그림자

by 고강아놀자

제27장: 성공의 그림자

1970년, 서울의 심장부에서 시작된 기적은, 바다를 건너와 제주의 이 작은 마을에 황금빛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조선호텔 부티크, ‘실크로드’에 걸린 한림수직의 스웨터는, 그것을 알아본 소수의 눈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신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주문서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처음에는 한두 벌, 그다음에는 대여섯 벌. 마침내 도쿄와 오사카의 부유한 재일교포 사회에까지 소문이 퍼지면서, 주문은 테쉬폰의 스무 남짓한 소녀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돈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말라붙어 있던 강바닥으로, 갑자기 불어난 강물이 밀려드는 것처럼, 테쉬폰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묵직하며, 달콤한 무게를 가진 실체였다. 소녀들은 더 이상 밭일 나가는 아버지가 벌어오는 푼돈이나, 식모살이 간 언니가 보내오는 생활비에 기대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들의 손은 이제, 제주 그 어떤 남자의 노동보다도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변화는 명백했다. 낡고 해진 몸뻬 바지 대신, 읍내 양장점에서 맞춘 고운 색깔의 원피스가 소녀들의 옷장에 걸렸다. 검정 고무신은 반짝이는 구두로 바뀌었다. 그녀들은 더 이상 집안의 ‘일손’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녁이면 테쉬폰 마당에서는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고, 그녀들의 웃음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성공은 달콤했고, 돈은 확실한 위로였다.

임피제는 자신의 작은 사무실 창가에 서서, 그 모든 풍경을 바라보았다. 소녀들의 웃음소리는 그의 심장을 기쁨으로 채웠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정체 모를 불안감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축음기에 사이먼 & 가펑클의 <Mrs. Robinson>을 올렸다.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공허한 그 리듬은, 테쉬폰의 활기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듯 보였지만, 그의 귀에는 오히려 세상의 어지러운 불협화음을 암시하는 듯 들렸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균열은, 아주 사소하고 합리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호텔에서, 아주 까다로운 디자인의 스웨터 스무 벌에 대한 긴급 주문이 들어왔다. 납기일은 촉박했고, 무늬는 복잡했다. 양순임과, 그녀를 따르는 몇몇 손 좋은 소녀들이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솜씨가 서툰 한 소녀가, 마지막 단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스웨터 한 벌의 팔 길이가 완전히 어긋나 버린 것이다.

과거 같았으면, 모두가 함께 남아 밤을 새워 그 실수를 만회했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 한 명의 실수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양순임과 다른 숙련된 소녀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할애해 그 스웨터를 다시 짜야만 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함께, 이전에는 없었던 아주 미세한 종류의 원망이 서려 있었다. 그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했지만, 그 주문으로 들어온 수익금은, 예전처럼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되었다.

그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그 미묘한 불만을, 정확하게 포착한 사람이 있었다. 고은영이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그녀는 분노하거나 선동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처럼 불만을 느끼고 있던 몇몇 숙련된 소녀들을 테쉬폰의 구석으로 불렀다.

"이건 불공평해." 그녀는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시간과, 저 아이의 시간은 같은 가치를 가지지 않아. 우리의 기술과, 저 아이의 기술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왜 보상은 똑같아야 하지?"

그녀는 미리 준비해 온, 낡은 공책을 펼쳤다. 그 안에는, 지난 몇 달간 그녀가 몰래 기록해 온, 각자의 생산량과 작업 시간, 그리고 불량률에 대한 데이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봐. 양순임 언니는 한 달에 스웨터 다섯 벌을 완벽하게 만들어내. 하지만 저 아이는 두 벌을 겨우 만들고, 그나마도 한 벌은 불량이야. 그런데 왜 우리가 저 아이의 실수까지 책임져야 하는 거지? 이것은 공동체가 아니라, 비효율일 뿐이야."

그녀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안했다. ‘성과 기반 인센티브 제도’. 그녀는 자신이 만든 도표를 보여주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했다.

"모든 기여는 정확히 측정되어야 해. 그리고 보상은, 그 기여도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해. 더 많이, 더 잘 만드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가져가는 것. 그게 바로 자본주의고, 그게 바로 우리가 더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감정에 의존하는 낡은 방식으로는, 우리는 영원히 이 우물 안을 벗어날 수 없어."

그녀의 제안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함을 느끼던 소녀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파고들었다. 협동이라는 아름다운 말 뒤에 숨어 있던, 인간적인 이기심과 경쟁심이, 고은영의 이 합리적인 질문을 계기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고은영의 제안은, 마침내 임피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는 소녀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는 깊은 슬픔에 잠긴 얼굴로, 그녀들을 설득하려 애썼다.

"얘들아,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잊었니? 우리는 서로의 실수를 덮어주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우리의 스웨터가 비싼 값에 팔리는 이유는, 단순히 물건이 좋아서가 아니야. 그 안에, 바로 그 ‘함께’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란다. 만약 우리가 서로를 경쟁자로 보기 시작한다면, 그 이야기는 사라지고, 우리의 스웨터는 영혼 없는 공장 물건과 다를 바 없게 될 거야."

하지만 소녀들의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고은영이 앞으로 나섰다.

"신부님, 좋은 이야기는 저희의 실수를 덮어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공정한 시스템은, 저희에게 더 열심히 일할 동기를 줍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논리 정연했다. 임피제는 더 이상 그녀를 설득할 언어를 찾지 못했다.

그 며칠 뒤, 최 사장은 자신의 정보원으로부터 테쉬폰 내부의 균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심어놓은 바이러스가, 드디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고은영이야말로, 이 공동체를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릴 완벽한 도구임을 확신했다.

그는 사람을 시켜, 고은영에게 비밀리에 접촉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한림수직의 발전을 기원하는, 익명의 후원자’를 가장했다.

"당신 같은 합리적이고, 미래를 볼 줄 아는 인물이 그 공동체를 이끌어야 합니다." 전달된 메시지는 정확히, 고은영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이었다. "당신의 그 혁신적인 제도를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작은 '연구 자금'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투자가 아니라, 제주의 미래를 위한 작은 기부입니다."

최 사장의 비밀스러운 지원은, 고은영의 지적 우월감과 소외감을 정확하게 자극했다. 그녀는 자신이 드디어, 이 감상적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진정한 파트너를 만났다고 믿었다.

외부의 지원까지 등에 업은 고은영은, 더욱 거세게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였다. 그녀는 임피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따르는 몇몇 숙련된 소녀들을 모아, ‘알파 팀’이라는 이름의 별동대를 조직했다. 그리고는 최 사장이 보내온 돈으로, 더 좋은 품질의 바늘과 의자를 사고, 약간의 보너스를 지급하며, 자신만의 작은 왕국 안에서 성과급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테쉬폰 안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졌다.

‘알파 팀’이 가동되면서, 테쉬폰의 공기는 완전히 변했다. 이전까지 들려오던 나지막한 콧노래와, 서로의 안부를 묻던 정겨운 대화는 사라졌다. 그 자리를, 서로의 손을 곁눈질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생산량을 계산하는 무거운 침묵이 대신했다. 소녀들은 더 이상 동료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인 경쟁자였다.

실수는 더 이상 공동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의 무능과 금전적 손실로 직결되었다. 솜씨가 서툰 소녀들은 주눅이 들었고, 잘하는 소녀들은 오만해졌다. 창조의 음악은 멈췄다. 그 자리를, 돈의 무게를 재는, 차갑고 잔인한 저울만이 차지하고 있었다.

임피제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그 모든 풍경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그는 자신이, 돈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신이 쌓아 올린 모래성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는 축음기에,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을 올렸다. 화창한 날에 내리는 비. 그는 생각했다. 성공이라는 눈부신 태양 아래, 어째서 갈등과 분열이라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일까. 그는 그 이유를 알았지만, 그 비를 멈출 방법을 알지 못했다.

고은영은 자신의 책상 앞에서, 매일같이 올라가는 ‘알파 팀’의 생산량 그래프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비합리적인 공동체를, 감상주의의 늪에서 구해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섬의 또 다른 어둠 속에서, 최 사장은 만족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심은 달콤한 독은, 이제 서서히, 공동체의 심장부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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