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의 이시돌 목장은, 마치 실력은 좋지만 지휘자를 잃어버린 채 각자 신나게 솔로 파트를 연주하기 시작한, 거대한 재즈 오케스트라와도 같았다. 모든 것이 성공적이었다.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이제는 그 성공 자체가 일종의 유쾌한 재앙이 되어가고 있었다.
돼지들은 새끼를 낳고, 또 낳았다. 양들은 풀을 뜯고, 털이 자라고, 또 새끼를 낳았다. 소들은 우유를 생산했고, 그 우유는 치즈가 되었으며, 그 치즈는 서울의 부유한 식탁으로 팔려나갔다. 모든 시스템이, 임피제 신부가 수십 년 전에 설계했던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거의 폭주에 가까운 수준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1950년대의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었다.
"신부님, 큰일 났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김만수가, 낡은 작업복에 정체 모를 동물의 분뇨를 묻힌 채, 임피제의 사무실 문을 거의 부술 듯이 열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세상의 종말이라도 목격한 사람처럼,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
임피제는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고, 김만수가 내민,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인 장부를 들여다보았다.
"글쎄, 저쪽 B구역의 27번 암퇘지가, 글쎄, 밥을 안 먹는다는 겁니다!"
"밥을 안 먹는다고?"
"그렇다니까요! 어제 저녁부터, 아주 입도 안 댑니다. 눈빛을 보아하니, 무슨 깊은 실존적 고뇌에 빠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틀림없이 지난밤 꿈자리가 사나웠거나, 아니면 옆 축사의 수퇘지랑 무슨 애정 문제라도 생긴 게 틀림없습니다."
임피제는 미간을 짚었다. 이것이 요즘 그가 매일같이 마주해야 하는 문제였다. 목장의 규모는 이미 대한민국 최대 수준이었지만, 가축 관리 시스템은 여전히 마을 아낙의 푸념과, 늙은 목동의 감(感)에 의존하고 있었다. 돼지가 밥을 안 먹으면, 좋은 꿈을 꾸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거나, 옆 축사의 수퇘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식이었다.
그는 창업가였다. 그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시스템이, 이제는 너무 낡고 비대해져,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업그레이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는 축음기에, ABBA의 <Dancing Queen>을 올렸다. 흥겹고, 젊고,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 찬 그 노래. 그는 생각했다. 지금 이 늙고 지친 목장에 필요한 것은, 바로 저런 종류의, 젊고 과학적인 에너지라고.
그는 다시 한번, 고향 아일랜드에 편지를 썼다. 이번에 그가 도움을 요청한 곳은 수녀회가 아니었다. 그는 더블린의 수의과 대학에,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이곳에는, 돼지의 실존적 고뇌를 함께 상담해 줄 사제가 아니라, 돼지가 왜 밥을 안 먹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해 줄 수의사가 필요합니다."
몇 달 뒤, 그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 도착했다.
김만수와 4-H 클럽 출신의 청년들은, 한림항에서 새로 온다는 ‘아일랜드인 기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임피제 신부처럼 점잖고 과묵한, 혹은 최소한 그와 비슷한 연배의 중년 신사를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에서 내린 사람은, 그들의 상상과는 180도 다른 존재였다.
스물다섯 살의, 키가 훌쩍 크고, 붉은 곱슬머리를 아무렇게나 기른 젊은이. 그는 몸에 딱 붙는 나팔바지에,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어깨에는 거대한 카세트 라디오를 둘러메고 있었다. 그 라디오에서는, 퀸(Queen)의 <Don't Stop Me Now>가, 항구 전체가 떠나갈 듯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마이클 리어던(Michael Riordan)! 미카엘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냥 마이클이라고 불러도 좋아!"
그의 등장은, 조용한 클래식 연주회장에, 갑자기 헤비메탈 밴드가 난입한 것과 같은, 그런 종류의 문화 충격이었다. 김만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것은 기술자가 아니라, 주말 밤의 고고장에서나 볼 수 있는, 영락없는 로큰롤 스타의 모습이었다.
그가 바로, 훗날 ‘이어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젊은 수의사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어돈은 봉사활동 차원에서, 2년 예정으로 이 머나먼 섬에 온 것이었다. 그는 제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감귤과 해녀,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이 목장이, 아일랜드의 시골 목장처럼, 작고 평화로운 곳일 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펼쳐진 이시돌 목장의 규모는, 그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지와, 그 위를 뒤덮은 수천 마리의 양 떼와, 거대한 기업형 축사들. 그는 자신이 휴양지에 온 것이 아니라, 거대한 전쟁터의 야전 병원에 파견된 군의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바로 그 ‘실존적 고뇌에 빠진’ 27번 암퇘지를 진찰하는 것이었다. 김만수는 그를 돼지우리로 데려가며, 자신의 진단 결과를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아무래도, 이 근방을 떠도는 나쁜 기운에 씌운 것 같소. 어젯밤에는 제가 특별히 돼지 귀에 대고 성경을 읽어주었는데도, 차도가 없더이다."
이어돈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돼지의 눈을 들여다보고, 체온을 재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단순한 소화불량입니다. 사료를 너무 급하게 먹었거나,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았거나. 그리고 아마, 약간의 변비도 있는 것 같군요."
그는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 돼지의 엉덩이에 능숙하게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는 김만수에게 말했다. "오늘 하루는 사료를 주지 마시고, 신선한 물만 충분히 주십시오. 내일 아침이면, 아마 예전보다 더 왕성한 식욕으로 돌아와 있을 겁니다."
다음 날 아침, 그의 말은 정확하게 현실이 되었다. 27번 암퇘지는, 마치 어젯밤의 고뇌는 모두 잊었다는 듯,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표정으로 사료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것이, 이시돌 목장에 ‘과학’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종교가 도래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이어돈은 이 거대한 목장이, 주먹구구식의 감과 경험만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는 즉시,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모든 가축에 번호표를 붙이고, 개체별로 건강 상태와 사료 섭취량, 그리고 번식 기록을 기록하는 차트를 만들었다. 그는 정기적인 예방 접종 스케줄을 도입했고, 사료의 영양 성분을 분석하여, 가축의 성장 단계에 맞는 최적의 배합 비율을 계산해 냈다.
늙은 목동들은 그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저놈 애비 때부터 소를 키웠는데, 저 푸른 눈의 애송이가 뭘 안다고!" 그들은 투덜거렸지만, 이어돈이 도입한 시스템의 결과는 명백했다. 가축들의 폐사율은 눈에 띄게 줄었고, 우유 생산량과 새끼들의 성장 속도는 몰라보게 향상되었다.
임피제는 그 모든 변화를, 조용한 미소와 함께 지켜보았다. 그는 이어돈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했고, 그에게 목장의 모든 의사 결정을 일임했다. 그는 젊은 수의사의 과학적인 합리성과, 늙은 목동들의 동물에 대한 직관적인 교감, 그 두 가지가 결합될 때, 이 목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어돈은 처음에는, 이 섬 사람들의 비과학적인 방식을 그저 무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방식 안에, 자신의 차트와 데이터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지혜가 담겨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김만수가, 매일 아침 소들의 등을 쓸어주며,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의 옛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것이 미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김만수가 돌보는 소들은, 다른 소들보다 더 온순하고, 우유 생산량도 더 높았다. 그는 한림수직의 여자들이, 늙고 병든 양을 위해, 자신들이 짠 가장 부드러운 스웨터를 가져와 덮어주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것이 비효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양은 기적처럼 기운을 차리고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는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한 공장식 농장이 아니었다. 이곳은, 동물과 사람이,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공동체였다. 그는 임피제 신부가, 지난 수십 년간, 단순히 가축의 숫자를 늘린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관계’를 키워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2년 반의 시간이, 마치 꿈처럼 흘러갔다. 이어돈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의 어설픈 제주 사투리는 마을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고, 그는 막걸리와 돼지고기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아일랜드 청년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떠나야만 했다.
그가 떠나기 전날 밤, 임피제는 그를 자신의 작은 사무실로 불렀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위스키 잔을 기울이며, 말없이 창밖의, 별이 쏟아지는 제주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자네 덕분에," 임피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늙은 목장이, 십 년은 더 젊어진 것 같네."
"아닙니다, 신부님." 이어돈이 대답했다. "저는 그저, 제가 배운 기술을 조금 나누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제가, 이곳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차트와 데이터로는 결코 측정할 수 없는, 마음의 무게를 배웠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따뜻하고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
"아일랜드로 돌아가면, 다시 병원을 열 텐가?" 임피제가 물었다.
"아마도요.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이어돈의 목소리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깊은 고민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남겼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의 기술은, 과연 누구를 위해 쓰여야 하는가."
임피제는 그의 어깨를, 늙고 주름진 손으로 가만히 두드렸다.
"미카엘." 그는 아주 나지막이,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같은 사람이, 이곳에 필요하네."
그 말은, 부탁이나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한 늙은 사제가, 젊은이의 영혼 속에서 발견한 가능성에 대한, 조용한 증언과도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이어돈은 한림항에서,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를 배웅하기 위해 항구에 나와 있었다. 그의 카세트 라디오에서는, 존 덴버(John Denver)의 <Leaving on a Jet Plane>이, 이별의 아쉬움을 담아 흘러나오고 있었다.
배가 서서히 항구를 떠나자, 그는 갑판에 서서, 점점 작아지는 제주의 풍경과,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임피제의 마지막 말이, 그의 심장 속에서, 아주 작지만 분명한 씨앗이 되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몰랐다. 그 씨앗이,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의 내면에서 자라나, 마침내 그의 삶 전체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그저, 언젠가, 반드시 이 섬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하지만 강렬한 예감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