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마치 아주 꼼꼼하고 실력 좋은 사서(司書)처럼, 소란스러웠던 모든 사건들을 ‘역사’라는 이름의 서가에 차곡차곡 정리해 나갔다. 2011년 이후의 한림은, 더 이상 기적이나 투쟁 같은, 극적인 서사가 필요한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마치 아주 잘 만들어진, 그리고 너무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서 누구도 그것이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거대한 시스템과도 같았다.
돼지들은 여전히 새끼를 낳았고, 양들은 풀을 뜯었으며, 신협의 돈은 마을의 혈관을 따라 조용히 흘렀다. 병원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났고, 양로원에서는 노인들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았다. 모든 것이, 마치 잘 조율된 기계처럼, 혹은 스스로의 법칙을 깨달은 작은 생태계처럼, 조용하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드라마는 끝났다. 남은 것은 그저, 성실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임피제 신부는 이제, 이 왕국의 살아있는 전설, 혹은 희미한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양로원의 가장 햇살이 잘 드는 창가, 휠체어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기억은, 낡은 사진첩의 빛바랜 사진들처럼, 군데군데 흐릿해져 있었다. 그는 때로, 자신을 찾아온 젊은 수의사 이어돈을, 아주 오래전 아일랜드에서 함께 자랐던 어린 시절 친구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시간도 끝을 맞았다. 그의 마지막은, 그가 평생을 살아온 방식 그대로, 아주 조용하고 소박했다. 그는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처럼, 제주의 따뜻한 햇살 아래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그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몇몇 늙은이들이 함께 울었다.
임피제 신부가 떠난 뒤, 그의 뒤를 이어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의 이사장이 된 것은, 모두의 예상대로, 이어돈 신부였다. 사람들은 이제, 이 새로운 푸른 눈의 사제가, 임피제 신부의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아, 또 다른 기적, 제2의 도약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돈 신부가 이사장이 된 후, 첫 번째 이사회가 열렸다. 양순임을 비롯한, 이제는 공동체의 원로가 된 1세대들과,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 유능한 2세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리더가 제시할 미래의 청사진을 기대하며, 약간의 흥분과 긴장 속에서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돈 신부는 회의 자료 대신, 낡은 사진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임피제 신부가, 수십 년 전 병든 노모를 등에 업고 험한 산길을 넘던 남자의 모습을 찍은, 바로 그 흑백 사진이었다.
"여러분은, 제가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더 많은 돈을 벌어오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이어돈 신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회의실 안에는 당혹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저는 창업가가 아닙니다. 저는 위대한 설계자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이 위대한 유산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온, 늙은 수의사일 뿐입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이제는 거대한 기업이 된 이시돌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임피제 신부님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맨손으로 배를 만든 분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안전한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주어진 사명은, 새로운 배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배가,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시간의 파도 속에서, 녹슬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묵묵히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는 다시 이사들을 쳐다보며, 자신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사장으로서의 명령을 내렸다.
"우리의 첫 번째 원칙은 이것입니다. '갈 데 없는 힘든 사람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고, 공평하게 대하는 곳.'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버는 회사가 아니라, 이 원칙을,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바보처럼 우직하게 지켜내는 회사가 될 겁니다."
그것은, 성장이 지상 최대의 미덕이 된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장 시대착오적인 선언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의 말 속에서, 돈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그리고 임피제 신부가 남긴 진짜 유산의 핵심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 있었다.
수호자의 길은, 창조자의 길만큼이나 외롭고 험난했다.
세상은 변했다. 대기업들은 거대한 자본을 앞세워, 제주에 최첨단 설비를 갖춘 축산 단지를 짓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싸고, 더 많은 우유와 돼지고기를 생산해 냈다. 이시돌의 방식은, 그들의 눈에 비효율적인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였다.
서울에서 온 컨설턴트들은, 이어돈 신부에게 구조조정을 권고했다. "신부님, 장애인 고용 비율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활용하십시오. 수익이 나지 않는 양로원과 병원 사업은, 전문 기관에 매각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들의 보고서에 담긴 숫자와 그래프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어돈 신부는, 그들의 보고서를 보는 대신, 그들을 데리고 목장의 가장 후미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다른 곳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몸이 불편한 노동자들이, 서툴지만 성실한 손길로 돼지우리를 청소하고 있었다.
"저 친구가, 우리 목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어돈 신부가 말했다.
컨설턴트가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데이터에는 없군요."
"자부심입니다." 이어돈 신부가 대답했다. "자신의 힘으로 땀 흘려,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부심. 그 가치는, 당신들의 보고서에는 기록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는 컨설턴트들을, 병원의 신생아실로, 그리고 양로원의 임종실로 데려갔다.
"우리는 이곳에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고, 존엄하게 삶을 마감하는, 그 처음과 끝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컨설턴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논리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을 뿐이다.
이어돈 신부의 귓가에는, 축음기가 없었지만, 콜드플레이(Coldplay)의 <Fix You>가 흐르는 듯했다. 네가 지치고 상처 입었을 때, 빛이 너를 집으로 인도하고, 내가 너를 치유해주겠다는 그 노래. 그는 생각했다. 이 목장은, 이 병원은, 이 양로원은, 세상의 모든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한, 거대한 치유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임피제처럼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대신, 낡은 것을 보수하고, 약한 곳을 보강하며, 잊힌 것을 기억하는 데 자신의 모든 시간을 썼다. 그는 낡은 테쉬폰 건물이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도록 직접 지붕을 수리했고, 임피제 신부가 남긴 수만 장의 사진과 기록들을 정리하여, 작은 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는 ‘수호자’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지켜내는 것 또한, 위대한 용기와 헌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가고, 모든 것이 더 빠르고 새로운 것을 향해 달려갈 때,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임피제 신부가 남긴 낡은 사진첩이, 언제나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가 가장 자주 들여다보는 페이지는, 어떤 성공의 기록도 아니었다. 그것은, 1950년대의 잿빛 황무지 위에서,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은 채, 삽 한 자루를 들고, 막막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젊은 날의 임피제 신부의 사진이었다.
이어돈 신부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모든 위대한 여정은, 이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단 한 사람의 불가능한 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임무는, 그 꿈이,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수십 년의 시간 속에서도, 결코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