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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콬콬 Apr 07. 2018

악행의 매혹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작가 (1)

3화. 품위 있는 이야기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악인들은 활개를 치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작가보다 더 유명한 등장인물들이다.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자기를 닮은 변종들을 심어놓고는 유유히 런던의 실험실로 돌아와 홍차를 마시면서 하얀 이를 드러낼 인간들. 창조주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다. 스티븐슨은 1850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주로 집안에서 지내거나 요양할 만한 따뜻한 지역을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44세에 죽기 전까지 평생 폐병으로 고생했다. 스티븐슨의 집안은 그가 태어난 스코틀랜드의 해안가 등대 건축을 거의 도맡았다. 스티븐슨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집안의 대를 잇듯 에든버러 대학교의 토목공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바깥에 나가기보다 집 안에서 어머니와 유모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는데 결국 공학에 흥미를 붙이지 못 했고 21살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그만두고 주변 나라들로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썼는데 주로 여행기와 에세이, 단편 소설을 썼다. 30대에 이르러 1883년에 장편 <보물섬>을 발표하면서 비평계의 주목을 받았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1886년에 출간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6개월 동안 4만 부가 팔릴 만큼 인기를 얻었는데 빅토리아 여왕과 총리도 이 작품을 읽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스티븐슨 자신은 이 작품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초고를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이어 발표한 장편 소설 <유괴>, 고아가 된 소년이 빼앗긴 재산을 찾기 위해 위험한 항해를 거치는 이 소설 역시 성공을 거뒀다. 스티븐슨은 공포와 모험의 이야기로 사람들을 매료하는 이야기꾼으로 널리 세상에 알려진다. . 
스티븐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출판 시장에 내놓으려고 구상했다. 요즘 극장가가 명절 연휴나 연말 연초에 맞춰 흥미로운 영화를 상영하려고 준비하듯 19세기에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서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작가 스티븐슨은 생계를 잇기 위해 대중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의식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다른 단편인 <시체 도둑>은 의과대학에 해부용 시신을 공급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악당들이 무덤에서 겪은 초자연적인 공포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작품도 크리스마스 시즌용 소설이었다. 외딴 성에서 인간을 초월한 신비스러운 존재와 사랑에 빠지는 소설, <오랄라>처럼 19세기의 장르소설인 고딕소설도 스티븐슨이 생계를 위해 연말 시즌에 맞춰 출판 시장에 내놓으려고 쓴 작품이었다.  
 
‘기이한 사례’라는 이름의 기록
 
 단편으로 알려졌는데 중편 정도의 분량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온전한 제목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이다. 마치 의학 분야에 보고된 하나의 사례를 기록한 듯한 제목은 헨리 지킬이라는 한 인간의 정신이상 증후와 그 후의 경과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 같다. 스티븐슨의 아내 패니가 말하길 스티븐슨이 프랑스의 과학잡지에 실린 무의식에 관한 기사를 흥미롭게 읽고 나서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를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주요한 등장인물은 지킬 박사나 하이드가 아니라 변호사인 어터슨이다. 어터슨은 친척인 엔필드와 도시의 뒷골목을 산책하다가 골목 안쪽에 자리한 집을 가리키면서 걸음을 멈춘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하이드라는 괴이한 인물. 그리고 변호사 어터슨이 요즘 무척 신경 쓰이는 문제인 친구 지킬 박사의 유언장에 얽힌 문제가 하이드와 중첩되면서 의학 박사이자 법학 박사, 왕립협회 회원인 헨리 지킬과 이유 없이 사람을 살해하는 잔혹한 살인마 하이드가 연루된 비밀이 밝혀진다.  


  스티븐슨은 독자인 우리가 사건의 제3자인 화자, 변호사 어터슨을 통해 관찰자가 보고 들은 불확실한 사실들만 발견하도록 안내한다. 어터슨이 주위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와 관찰한 사건들 그리고 어터슨의 친구이자 지킬 박사의 비밀을 어터슨보다 먼저 알게 된 의사 래니언의 편지, 소설의 결말에 등장하는 지킬 박사의 고백이 담긴 편지로 소설 전체가 구성되었다. 세 사람의 입장에서 전달된 이야기를 다 들은 독자도 완벽하게 진실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 이야기에서 지킬이나 하이드처럼 중요한 어터슨은 어떤 인물인가? 어터슨은 “그가 숨는 자hide라면 나는 찾는 자seeker가 될 것이다.”라면서 숨는 자 하이드를 찾아 런던 뒷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어터슨은 마치 탐정처럼(물론 그는 변호사이기에 사건을 추적할 만한 근대적 전문성을 지닌 인물이다) 하이드를 찾아다닌다. 그는 하이드의 정체를 밝히려는데 그가 하이드를 찾으려 할수록 점점 찾던 진실은 저만치 뒤로 물러나버린다. 어터슨이 친구 지킬을 지키려다가 지킬이 감추려는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오히려 지킬을 곤경에 빠뜨리며 (지킬에게)해를 끼친다. 어터슨은 눈앞에 바로 진실이 놓였는데 그것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다. 진실이 단순하고 명백하게 드러났는데 그 진실을 그대로 바라보기 보다 어리석은 편견에 사로잡혀 일을 비트는 인간이야말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인간의 모습 아닌가. 
어터슨은 19세기 유럽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에드가 알렌 포우(1809-1849)가 쓴 단편 소설 <도둑맞은 편지>에서 D 장관이 훔쳐 간 왕실의 편지를 찾기 위해 뒤팽을 찾아간 경찰국장과 닮았다. 경찰국장은 잃어버린 편지를 찾으려고 D장관의 집을 뒤지면서 테이블의 상판을 뜯어서 속속들이 조사를 한다. 길고 날카로운 바늘로 의자의 틈새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편지를 찾지 못 했다. 확대경을 들고 집안의 가구는 물론이고 이웃집까지 싹 다 확인한 국장처럼 어터슨도 하이드의 정체를 밝히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을 탐문한다. <도둑맞은 편지>에서 경찰국장은 사건이 일어난 후 한 달이 지나도록 편지를 찾지 못 해 낙담해서 뒤팽을 찾아온다.  뒤팽은 국장이 약속한 대로 편지를 찾는 사람에게 주기로 한 금액을 수표 책에 사인하면 잃어버렸던 그 편지를 지금 주겠다는 것이다. 어터슨이 솜씨 좋게 편지를 찾아온 뒤팽이 아니라 경찰국장 역할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경찰국장은 음모가이면서도 시인의 속성을 지닌 D 장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채 경찰이 의례 수색하는 방법대로 장관의 집을 뒤지다가 실패했다. 뒤팽은 장관의 성격을 고려해보니 장관이 훔친 편지를 잘 숨기기 위해 비밀스러운 장소가 아니라 눈에 쉽게 띄는 곳에 숨겨뒀으리라 추측한다. 뒤팽은 관찰하고 추리하면서 사태를 제대로 보려고 한 반면 경찰국장은 기존의 관례를 따르며 전형적으로 사고하는 인물이었다. 
어터슨은 뒤팽이 아니라 경찰국장처럼 행동한다. 의심스러운 인물에게 자신의 유산을 상속하고 친구들과 교제도 멀리한 채 실험실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지킬과 지킬이 보호하려는 하이드의 비밀을 밝히려고 애쓰면서 사건과 인물들의 숨겨진 이면보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만 보고 그대로 믿어버린다. 그러니 어터슨이 숨겨진 것을 찾아다니기는 해도 항상 진실이 골목 귀퉁이를 돌아서  재빠르게 지나간 순간, 진실의 꼬리만을 힐끗 볼 뿐이다.  
그런데 평범한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어터슨이 이 작품의 화자로 자기 역할을 하는 이유가 분명 있다. 이 소설의 시작에서 어터슨은 그의 친척인 엔필드와 대화를 하면서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점차 드러나는 어터슨이란 인물은 남의 일에 적당한 거리를 두지 않는다. 그는 사태가 벌어진 이유가 궁금하고 점점 의문이 커지는 지킬의 사생활과 하이드의 정체에 호기심을 느낀다. 이 점이 그를 이 소설의 주요 화자로 삼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지킬을 파멸로 이끈 원인이기도 했고 의사인 래니언 역시 지킬의 진실 때문에 공포를 경험한 뒤 정신적인 충격을 감당하지 못 해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도 바로 ‘호기심’이었다. 래니언은 하이드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호기심이 가리키는 지점이자 파멸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알게 된 정도에서 그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더 이야기를 듣고(자신이 약물을 먹고 나서 지킬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나서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지식을 얻을지 선택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래니언은 후자를 택했다. 래니언과 어터슨은 지금 아는 것보다 더 알고 싶은 욕망을 채우려다가 끔찍한 공포를 경험한다. 
누구보다 헨리 지킬 박사야말로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앎’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끼며 이를 추구하다 파멸한 인물이다. 그는 하이드로 변신하는 약품을 만들어 평범한 세상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놀라운 지식의 체계를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지킬은 하이드로 변신해서는 지킬이었다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살해를 저지르고 나서 다시 지킬로 돌아와 고통스러워하면서 죄악을 반성한다. 그러나 후회는 잠시이고 지킬로 사는 건조한 일상에서 다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지킬은 자기가 누리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좀 오만하게 바라보다 다시 하이드로 돌아가게 된다. 그는 지킬이었을 때보다 젊어진 육체의 생생한 에너지가 너무 강렬하고 온몸을 관통하는 쾌감이 커서 하이드로의 변신을 도저히 포기하지 못 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에 잠재된 악한 본성,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낸 소설로 확고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 지킬 박사는 파우스트 박사와 유전자가 같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문학의 전통에서 이어져온 이야기들인 인간이 인간 존재를 초월하는 인식의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을 공포소설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의 자아를 구성하는 의식과 무의식을 탐색하는 소설이며 파우스트가 영혼을 팔아 얻고자 했던 젊음이나, 아담과 이브가 뱀의 속삭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사과를 먹고는 눈이 밝아져서 알게 된 ‘앎’을 추구하다가 파멸한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악에게 무대의 조명을 비추는
 
사회에서 명성과 존경을 얻은 지킬이 자신의 숨은 욕망을 발산하고 싶지만 지탄을 받거나 추문에 휩싸이는 게 두렵다. 자신의 위신도 지키고 쾌락도 추구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나 욕망을 탐닉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두렵다. 지킬은 이렇게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순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신의 의식에서 선을 사는 인물과 악을 행하는 인물로 분리하길 원했디. 지킬이 하이드로 바뀌는 약물을 들이키자 지킬의 몸은 지킬이 쉰 살의 자신보다 훨씬 젊은 남자로 변신하는데 이는 아직 지킬이 꽁꽁 가두었던 악한 속성이 충분히 자라지 못 한 증거이다. 하이드의 외모는 그를 눈으로 본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할 만큼 흉측하다. 하이드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하이드가 사악한 영혼이 사람으로 나타난다면 바로 저럴 것이라고 증언한다.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너무나 섬뜩하고 오싹해서 저주를 퍼붓고 인생을 혐오하게 만드는 인물. 끊임없이 근육이 움직이는 데다 기형적이며 유인원 같은 외모를 지녔다. 그래서 어터슨도 아무리 주위에 지킬과 하이드를 연관 지을만한 증거가 널리고 하이드와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눌 때라도 감히 하이드를 통해 지킬의 눈동자를 발견하지 못 한다. 어터슨은 악의 표상 같은 외모의 남자가 지성과 이성을 상징하는 인물인 지킬의 또 다른 모습일 가능성 자체를 떠올릴 수 없었다. 
 스티븐슨은 사회의 저명인사이자 19세기에 점차 사회에서 중요한 계층으로 부각된 전문가 집단의 일원인 의학과 법학 박사인 헨리 지킬을 통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자가 그가 저지른 범죄처럼 잔인하게 생겨서 평범한 사람들과 쉽게 구분되는 게 아니라는 개념을 소설로 말한다. 그는 우리가 믿고 지지하는 인물이나 계층에 속한 사람이 끔찍한 살해를 저지르거나 범죄를 꾸미는 악인일 수 있다는 개념을 소설에서 구현했다. 
단편 <마크하임>은 강도가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느끼는 예민한 심정을 묘사한 작품인데 스티븐슨은 우화나 동화 말고 소설에서 철저하게 악한 악인이 활개치는 모습을 이야기의 무대로 올렸다. 강도가 사람을 살해한 순간이라든가 악인의 악한 심성을 그는 뛰어난 문장과 묘사로 표현했다. 어쩌면 스티븐슨이 최초로 독자가 사이코패스의 심정에 이입할 만한 소설을 쓴 작가일지도 모른다.  
19세기에는 골상학을 토대로 범죄학자 롬브로조가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은 유전된다면서 범죄형 인간의 외모를 사례로 만들었는데 현대의 대중문화는 이런 전형적 범죄자의 외모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세계 대전을 거치고 나서 현대인은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에 더 주목했다. 스티븐슨은 19세기의 과학자들보다 앞서 인간과 사회를 내다보며 관찰한 예리한 감식의 결과를 작품으로 내놓았던 셈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가 발표되고 2년이 지난 1888년 여름, 런던의 윤락가에서 5명 이상의 여자들이 살해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이 사건을 설명하는 신문기사에서 연쇄살인의 개념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이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잭 더 리퍼 살인사건 말이다. 


                                                                               4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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