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04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를 두고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다. 젊은 여자와 남자가 만나 서로에게 반하고 사랑을 한다. 둘 사이를 가로 막는 장벽이 나타나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서로 못 잊어 다시 만난다. 또 헤어진다. 장벽이 사라진다. 다시 만난다. 끝.
세상 모든 사랑 이야기는 이런 순서를 따른다.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빚을 져야 하는 작가 세익스피어는 젊은 연인 로미오와 쥴리엣을 훼방하는 장벽으로 ‘집안의 반대’를 세워 놓았다. 그 이외에 가난이라든가, 전쟁, 죽음, 불치병, 오해처럼 서로 깊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인 장벽이 사랑 이야기에 꼭 필요하다. 강력한 방해물이 주인공들의 반대편에서 버텨야만 사랑 이야기가 더 애틋하고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다.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의 장벽은 VISA. 몰래 연인의 비자카드로 카드대출 받았다가 들통이 나서 싸우고는 갈라서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자, 외국인에게 출입국 허가를 내주는 증명서류. 그게 이 영화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벽이다.
영국 여자 애나는 미국에서 대학에 다닌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는 제이콥과 서로 좋아하게 된다. 사귀자고 먼저 손을 내미는 이는 애나이다. 애나가 긴 손편지를 써서 제이콥의 차유리에 끼워두었더니 제이콥에게 전화가 온 것. 둘은 서로 좋아죽는다. 졸업이 다가오고 애나는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애나도 제이콥도 조만간 맞닥뜨려야 할 이별이 두렵다. 애나는 영국에 갔다가 비자를 갱신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면 된다며 마음을 추스르려고 한다. 취업비자를 받으면 된다던 애나가 참 일관성 없어보이게도 영국으로 떠나야 하는 날이 되자 자기는 도저히 못 가겠단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남자 제이콥을 두고서 차마 발이 안 떨어진다는 애나. 제이콥은 안 된다고 두어마디 웅얼거리다가 말고는 그러잖다.
천장에서 침대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멈춘 카메라는 오늘과 내일과 모레와 또 다음 날과 다음 날들을 보여준다. 어린 연인들은 침대에 누워 서로 바라보거나 등지고 눕거나 웅크리고 누웠거나 모로 누웠다. 카메라는 밖으로도 나가지도 않고 오직 침대 위를 비추며 서로를 껴안은 두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계' 구실을 한다.
이 영화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주도적 인물은 애나이다. 그런데 우리가 애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자신의 직업에 대해 무슨 고민을 하는지 잘 알지 못 한다. 알기는 아는데 좀 모호하다. 애나는 잡지사에 보조로 들어가 에디터로 승진했고 승진을 기뻐한다. 대표의 눈에 띄어 점점 경력을 쌓으면서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고 새 연인에게 청혼까지 받는다. 그러나 떨어져 지내면서 점점 사이가 멀어지는 제이콥을 도저히 잊지 못 해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애나는 미국에 가서 다시 일을 하기 위해 구직 사이트를 뒤지는데 영국에서 쌓았던 경력을 살려 할 만한 일을 찾지 못 한다. 절망할까?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인간 애나가 주인공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젊은 여자 애나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이콥은 어떤가? 매우 수동적인 남자인데 최소한 그가 가구 디자인을 꽤 사랑하며 자존심 세고 자기 감정이 무척 중요한 인물이라는 정도는 알겠다. 그를 보고 있자니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젊었던 라이언 오닐이 떠오른다. 현대의 대중문화에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의 상징이 된 <러브 스토리>의 방해물은 연인의 불치병이었다.
<러브 스토리>와 <라이크 크레이지>를 놓고 보자면 아무래도 삶과 죽음으로 갈리는 두 연인의 이별이 더 가슴 아프면 더 아팠지 나라가 동독과 서독으로 갈려서 헤어진 연인도 아니고, 비자만료 시한 하나 딱딱 못 맞춰서 맹하게 구는 바람에 헤어지는 연인들은 그다지 비극적 정념이 넘쳐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곱슬머리가 귀엽더라도 제이콥은 <러브 스토리>의 라이언 오닐에 비해 관객의 지지를 받기 어렵겠다.
제이콥은 난리를 친 ‘비자’문제나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랑을 이어가려는 애나에 비해 정적인 인물이다. 그 역시 애나를 잊지 못 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애나가 강하게 당기니까 끌려가는 편이다. 애나와 헤어진 동안에는 아름답고 멋진 여성, 샘이 그의 곁에 함께 있다. 샘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제이콥은 샘에게 미안하단다. 제이콥은 너무 구닥다리 같은 말 “샘, 너는 내게 이런 대접을 받아선 안 돼.”를 눈을 좀 꿈벅꿈벅거리면서 뱉는다. 그가 애나와 사이가 멀어질 때마다 샘과 놀러다니는 걸 보면 샘이 선택해서 제이콥에게 ‘그렇게’ 대접받는 게 아니라 제이콥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문제같다.
제이콥의 가구공방 동료이기도 한 샘의 입장에서 이 영화의 사건을 바라본다면 샘의 현남친인 제이콥은 헤어진 전여친과 자기를 둘 다 놓지 않는 저질. 한심한 남자다. 그런데 감독 드레이크 도레무스가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에서 강조하는 것은 연애가 시작되면서 이어지는 과정들이기 때문에 두 연인 주위에서 고통 받는 제3자들의 눈물은 부각되지 않는다.
영국이나 미국이라는 공간 역시 이 영화에서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다. 두 주인공 이외의 등장인물들도 무척 평면적이다. 각자 관습적인 역할들만 하고 만다. 새남친, 새여친, 아버지,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들. 영화는 오직 두 젊고 예쁜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나 상반신 정도를 보여주는 컷들로 채워진다. 남과 여의 얼굴 표정에서 그들의 감정을 드러내려고 하며 카메라는 두 남녀의 젊은 육체에 가까이 다가가 피부의 질감이나 몸의 선線으로 사랑의 이야기를 표현하려 든다.
영화의 초반에 남자 제이콥은 처음으로 만든 가구인 의자를 애나에게 선물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영국에서 사는 애나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승진을 축하하며 의자를 선물한다. 제이콥이 만든 투박한 나무의자와 다르게 아주 세련되게 디자인된 의자이다. 이제 애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영화는 의자에 기우는 마음으로 애나의 결정을 보여준다.
만났다 헤어졌다 다시 만난 남과 여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만난 상태이다. 얼마나 이어질까? 함께 샤워를 하는 두 사람은 그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그리워했던 상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 그녀를/그를 만나 사랑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의/그의 미소, 그녀가/그가 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눈길처럼 내 안에 오래도록 남은 그녀의/그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눈앞에 그녀가/그가 있어도 그녀라는/그라는 실제 인간과 다른 그녀가/그가 각자의 마음에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를 사랑하기보다 내가 사랑한 상대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내 눈 앞에 네가 있으나 내가 사랑한 내 머릿속에 있는 네가 지금 내 앞에 있는 너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다. 글쎄다. 평범한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를 두고 이런 해석조차 좀 과하지 싶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