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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채 Apr 05. 2017

결혼, 하고 싶으세요?

서툰 학교

결혼이 무척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장을 보고 비닐봉지 달랑달랑하며 집으로 가는 길이면 짝을 지어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신혼부부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낡은 자취방 계단을 오르노라면 백열전구가 센서를 따라 탁탁 하나씩 켜졌는데 그 층계참마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 갓 끓인 된장찌개 냄새가 넘쳐났습니다. 행복의 음악과 맛이 가득 들어찬 그 4D급 염장에  혼자 사는 사람 애간장이 남아날 리가 없었지요. 티브이를 벗 삼아 저녁밥을 먹다 보면 아 내게도 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슬며시 식탁 위를 점령하곤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외로움에 패배한 소경처럼 당장의 급한 불을 꺼 줄 인스턴트 같은 사랑으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먹을수록 공허해지는 가짜 사랑 때문에 제 뱃속은 더욱더 망가졌고 자존감마저 박살 났죠. 저에게 사랑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을 소모하고, 감정을 낭비하고, 정신력을 소비해야만 겨우 유지되는 그런 관계들도 일단은 사랑이라 불리고 있더군요. 저는 지금에 와서야 그 무책임한 감정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외로움이라고요.

 

 내가 왜 결혼이 하고 싶을까? 하는 질문을 제게 많이 던져보았고 저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연애를 하고, 역마살 든 사람처럼 온갖 나라를 쏘다니고, 미친 사람처럼 강둑을 달리며 제 자신에게 가혹할 정도로 엄격하게 굴곤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나를 찾겠다며 13시간을 날아 지구 반대편을 헤매 다녔지만 거기에 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서른셋이 되던 겨울에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마법처럼 떠올랐습니다. 나는 여기 있으며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느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요.

 사실 행복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취준생은 취업을 하면 행복할 것 같고, 독신은 결혼을 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 모두가 그렇지는 않죠.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면 그 뒤에는 설탕 같은 행복만 가득할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강박적으로 행복을 추구하지만 실상 사람의 삶은 100% 행복하지 않은 것이 정상입니다. 취준생이어도 행복할 수 있고, 결혼해서 자식을 둘씩이나 낳아도 불행할 수 있습니다. 가라앉을 때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또 좋을 때도 있는 것이 삶입니다. 잠깐 불행하거나 우울한 감정에 젖는다고 해서 그것이 실패한 삶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순간적인 감정에 예민하게 더듬이를 파르르 떨지 않아도 삶은 꽤 괜찮게 흘러갑니다. 저는 30년도 더 살고 나서, 지칠 대로 지쳐버리고 난 후에야 이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 마지막 끝 날까지 내 옆에 남아 나를 위해 온 몸 바쳐 노력해 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뿐입니다. 타인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며 관계를 맺는 것은 내가 계획한 무대에서 배우자 역할을 할 연극배우를 찾는 격입니다. 내가 만든 틀에 짜 넣을 풀빵 반죽 같은 사람을 꿈꾸지 마세요. 이런 인위적인 "사랑"의 냄새를 맡고 다가오는 이성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혼자 설 수 없는 사람은 둘이 되어도 일어설 수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수 없으며,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에게도 가혹합니다.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 조차 사랑하지 않는 나를 세상 누가 사랑해 줄까요?

 그래서 저는 혼자든 둘이든 지금 행복하게 잘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맛있는 저녁을 해 먹고 궁금했던 강연을 찾아다녔습니다. 연극을 배웠고 심리 치료도 받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을 그만두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를 즐겼습니다.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가장 귀하게 나 자신을 대접했습니다. 방치했던 제 마음속 안방에 오로지 저만을 위한 예쁜 의자를 마련했습니다. 그날 비로소 저는 제 마음의 주인으로 살기를 시작했습니다. 친구도 연애도 온통 서툴기만 한 제 자신을 세상에서 예쁘다고 칭찬하고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내적으로 가장 충만하던 때에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습니다. 결혼 후에도 가끔 마음속 의자를 패대 기치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함이 저를 땅 속 까지 끌어내릴 때도 있지만 저는 요즘 아주 많이 행복합니다.  한 때는 이탈리아제 커피 머신과 핑크색 마카롱 없이는 행복한 신혼이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안 감은 머리에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플라스틱 드립퍼로 내려먹는 커피 한 잔에도 행복은 알 굵은 고구마처럼 넝쿨 채 들어차 있더군요. 부표처럼 떠돌던 마음이 단단한 육지에 뿌리를 내린 기분입니다. 그토록 원하던 안정감이 비로소 제게로 왔습니다. 제가 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행복입니다.


우선 지금 행복하세요. 내가 나를 대접해줄 때 내가 더욱 빛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움을 알아본답니다.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나 아이를 몇이나 낳을지, 집은 어떻게 할지는 조금 나중에 고민하셔도 괜찮아요. 나의 속도로 살아도 세상은 충분히 빠릅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행복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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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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