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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채 Aug 10. 2017

힘들어해도 괜찮아

실직, 이별, 탈락, 좌절.

 보통 사람의 삶에는 언제나 실패가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우리는 '아무리 실패했더라도 반드시 다시 도전해서 결국엔 성공할 것'을 요구받으며 자랐습니다. 실패한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제가 공교육을 받던 20년 전 세상에선 시험을 치면 전교생을 줄 세워 등수를 매기고 과목별 점수까지 모두 다 학교 게시판에 종이로 써붙였습니다. 하얀 종이에 적힌 내 이름 석자와 학년 반 번호 숫자 다섯 자리 끝에 줄지어 따라붙은 과목별 점수 13개. 그것은 성공을 향한 로또 번호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긁는 복권 같았죠.

 세상은 언제나 성공하라고 합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못난 것이고, 못난 것은 도태되어도 마땅하다고 배웁니다. 경쟁을 하면 반드시 이겨야 하고, 이기지 못한 자는 자신의 무능으로 인한 고통을 온전히 스스로 감내해야 마땅하다고 배웁니다. 내가 성공하면 누군가는 실패한다는 사실은 깨끗하게 무시됩니다. 그것이 합당한 결과라고 여기게 가르치죠. 그렇게 우리는  '괜찮지 않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괜찮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은, 나는 도태되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자백하는 꼴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성공은 대체 뭘까요? 남들만큼 사는 것?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이 산더미처럼 나를 덮치고, 헤어 나올 길 없어 보이는 구덩이에 자빠져버렸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오히려 상황을 더 엉망으로 만듭니다. 친구와 가족들이 동그란 눈에 걱정을 가득 담고 내게 물어봅니다.


"괜찮아?"


 하우 두 유두라고 입력하면 파인땡큐 앤유라고 반사적으로 출력하는 우리.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애써 웃으며 대답합니다. 괜찮다고.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봅니다. 뭐가 괜찮은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우리는 몸이 아파도, 회사에서 잘려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받아도, 10년 넘게 키운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괜찮아"


  괜찮기를 애써 추구하는 우리의 슬픈 습성은 불안에 기인합니다. 남들처럼 대학 나와 좋은 직장 얻어 결혼도 하고 집도 사는 "꿈"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불안. 남보다 특출 날 것도 없고 대단한 재능이나 재력도 타고나지 못한 보통사람인 저는 주어진 자질과 상관없이 시시 때때 딱 딱 맞춰 게임 퀘스트를 완성하듯 삶의 절기를 균등하고도 모범적으로 살아낼 것을 요구받아왔습니다. 사회 교과서에서 "인적 자원"이라는 표현을 처음 보았을 때 전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물류 항만 통신이랑 비슷한 존재구나. 학생에게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인간적인 개인 말고 기능과 소비에 충실한 자원이라고 가르치는 아름다운 나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슬픔을 극복하려 애쓰고, 용기 내어 다시 한번 더 도전하려는 용광로 같은 당신들에게 찬 물을 끼얹고자 합니다.


 힘들어해도 괜찮습니다.


 인정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내어서 말해보세요. 괜찮지 않아.


 사람은 살아낼 용기, 도전하고 견뎌 낼 용기만 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용기든 그것은 마음이 깔딱거리는 경계선에서 힘껏 밀어붙여 쥐어짜 낸 것으로 모두 똑같은 용감함이며, 칭찬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힘든 일이 있을 때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슬픔이나 비참함에 잠기는 것을 극도로 피하려고 합니다. 한 번 패배에 무너진 사람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이죠. 경제적이지 않으면 버려져야 하나요? 부족하면 손가락질받아도 싼가요? 공부를 못하면, 부모가 가난하면 저임금이 마땅한 보상이며 계급사회의 최하층을 차지함이 당연한가요? 오 이런,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한 짓을 좀 보세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좀 힘들어해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고 이름 모를 수많은 타인들이 각자의 희로애락에 절어 울거나 웃거나 하며 제각각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나의 고통은 나에겐 너무나 특별한 것 같지만, 밖으로 꺼내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와 닮아있습니다. 내가 괜찮아질 것이라는 것을, 지금 좀 힘들어한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아등바등 애쓰지 않아도 결국엔 괜찮아진다는 사실을 믿어보세요.

인생의 항상성은 우리가 영원히 불행의 지옥불에 타오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폰 불빛을 들여다보며, 흐르는 눈물 사이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금 스스로에게 가만히 말해 주세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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