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채 Aug 02. 2017

사랑의 감각

서툰 학교

 벌어먹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무거운가. 때 맞춰 통장에 꽂히는 몇 자리의 숫자를 위해 하루의 팔 할을 을로 산다. 자존심도 버리고, 의견도 버리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 해 자아를 확장하겠다던 거창한 꿈도 버린다. 버린다기보단 하지 않는 것이다. 회사가 원하는 것은 나의 의견이나 창의력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근속 10년을 채우고서야 깨달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시키는 대로 하고 모나게 굴지 않는 무난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급여 명세서에 적힌 내 이름 석자는 우리 엄마가 첫 딸을 위해 작명소에서 세 번이나 다시 받아온 것이다. 쌀 미에 노 젓는 소리 애자를 써먹을 걱정 없이 편히 살라고 지어주신 당신 딸의 이름. 이름값을 못한 나는 언제나 벌어먹을 걱정을 하고 살았다. 이십 대에는 삼십 대를 걱정했고, 삼십 대인 지금은 사십 대를 걱정하고 있다. 걱정에도 세계선수권 대회가 있다면 금메달도 자신 있다. 친구들이 유럽으로 긴 여행을 가는 여름방학이 되면 나는 학비를 벌기 위해 하루 세 탕씩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그래도 생활이 빠듯했기에 방학 때면 작업실 구석에서 먹고 잤다.

 학생을 사노비처럼 부려먹기로 유명한 전공 교수가 책을 같이 만들자고 제안을 해왔었다. 전직 국회의원이자 현직 작가인 모씨의 책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교수는 특혜를 베푼다는 투로 경험이 없는 너에게 경험할 기회를 주겠노라 했다. 하지만 나는 경험 대신 돈을 요구했고, 교수의 얼굴은 당혹감에 동그래졌다. 콘티 두 꼭지에 30만 원을 받았다. 재학생 중에 그 교수에게 돈을 받은 건 내가 유일했다. 그 책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팔리고 있고, 저작권료 수입을 적어도 30만 원 이상은 벌어 주었을 것이다.


 사대보험 납부 10년 차에 접어들며 물가 상승률보다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린 것은 연봉이 아니라 스트레스였다. 물끄러미 낱알을 세다 보면 어떻게 견뎠나 싶어 한 숨이 나오는 지난 10년. 충동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조용히 등 돌려 나오는 상상을 하자면 속이 시원하고 마음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낀다. 행복해서 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해버릴 것이라고, 어두운 곳에서 몰래 남을 괴롭히고 헛소문을 퍼트리는 것으로 자신의 무능을 자위하는 과장 차장 대리들의 만행을 다 고발해버릴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그러다 또 갑자기 내가 말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고, 퇴사하면 남인데 저들이 바뀌든 잘리든 나랑 하등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조용히 떠나버리자고 결심한다. 상상의 나라에서 나는 오백 번쯤 퇴사했고 이백스물한번쯤 그 악마 같은 차장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현실의 나는 지금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


 내가 편하자고 배우자에게 모든 경제적 부담을 떠 넘기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인내심이 다 닳아 너덜거리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남편을 떠 올린다. 언제든지 힘들면 그만 두면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하는 남편의 다부진 입매를 기억해낸다. 손을 잡고 어깨를 안아주는 따듯한 체온을 되살려 낸다. 사랑이 주는 감각으로 나는 다시 회복한다.

 혼자일 때는 사는 것이 그저 살아있기에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이 된 지금은 사는 것, 더 열심히 치열하게 잘 사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생겼다는 것은 애쓰고 노력해서 잘 살기를 추구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말과 같다.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나는 집으로 간다. 환하게 불을 밝히러.  






15. Oct. 16

무채



매거진의 이전글 20원을 남겨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