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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채 Oct 21. 2017

조약돌 같은 행복

 행복해지고 싶다. 이것은 저의 오랜 열망이었습니다. 나 말고 모두 다 행복해 보이는 이 세상에서 나만 불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이 불행의 원인만 해결하면 나는 행복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목표점을 향해 숨이 턱에 닿도록 전력질주를 했습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목표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공허함을 삼키며 이유를 찾습니다. 이내 방금 해결한 것과는 또 다른 불행의 조건이 생각납니다. 그것만 없다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나의 현재를 연소했습니다. 현재의 불행을 인내하다 보면 그 끝에 낙원 같은 행복이 올 거라 믿었습니다.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 지금 고통받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통과 의례라고 생각하고 견뎠습니다. 하지만 정작 얻은 것은 너덜너덜해진 인내심과 피로감뿐. 거기에 행복은 없었습니다.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 수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취업준비생은 취직을, 독신인 사람은 결혼을 하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차를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느끼고, 또 다른 사람은 집을 사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는 행복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그 학교에 진학하면, 이민을 가면 행복할 것이라는 식입니다. 아이를 낳았어도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고, 이민 간 나라에서 한국보다 더 지옥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못 본 척해버립니다.

 이렇듯 우리가 꿈꾸는 행복은 조금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사막 위에 뜬 신기루처럼 어서 찾아오라고 손짓하지만, 막상 다가가면 딱 그만큼 우리로부터 멀어집니다. 


 이처럼 행복의 전제 조건은 마음 외부에 있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주로 물질이나 소비에 의미를 두는 행복이 특히 그렇습니다. 행복의 기준이 내 마음 바깥에 찍혀 있는 사람은 행복을 음미할 여유가 없습니다. 마치 태양 대신 헬리 혜성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 지구처럼 말입니다. 

 마음 외부에 설정된 행복의 조건은 가변적이고 공격에 취약합니다. 중심점이 불안하니 내 감정도 따라서 불안해집니다. 충동적이고 철없는 아이처럼 행복의 조건이 자꾸 변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력할수록 더 불행해지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랑하고 여행을 가고 소비를 하지만, 극적인 행복감이 사라지고 나면 그보다 더 큰 공허함이 해일처럼 빈자리를 덮칩니다.


 반복적인 불행을 극복하려면 우선 행복의 중심을 내 안으로 끌어당겨야 합니다. 내 삶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불행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것을 기준으로 나의 행복을 정의하는 것은 예쁜 옷을 사러 가서 막상 옷은 친구에게 입어보라 시키는 격입니다. 

 행복의 기준을 나의 중심으로 옮기려면 우선 나의 욕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매일 사 먹는 커피가 만족스러운지, 늘 가는 식당이 내 취향에 잘 맞는지, 오늘 입은 옷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나의 욕구와 나누는 대화의 시작입니다. 

 일상에 의문을 가지면 그 지점에서 나에 대한 탐구가 시작됩니다. 나의 욕구에 귀 기울이면 나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자신이 행복해질지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은 저 산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발 밑에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알아본다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 전철에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처럼 사소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도 마음이 열려있다면 긍정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똑같이 빈자리에 앉는 경험을 했지만 어떤 사람은 '이제 겨우 앉았네'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이제부터 편하게 갈 수 있으니 잘 됐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되어야 할 사람은 후자입니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더 큰 행복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느 해변가에 앉아있습니다. 눈 닿는 저 끝까지 모두 바다입니다.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니 마음이 시원해지고 머릿속이 조용해집니다. 눈을 내려 발 밑을 봅니다. 그냥 해변이 아니라 조약돌 해변이었습니다. 고운 모래 대신 조약돌이 가득한 해변에 온 것입니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닳아 반질반질 동그랗고, 물기를 머금고 있어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파도가 들이치면 간지럽다는 듯 떼굴떼굴 구르며 짜르르 짜르르 소리를 냅니다. 조약돌의 웃음소리입니다. 

 우리가 찾는 행복은 이 조약돌 같아야 합니다. 아래를 보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조약돌처럼 행복은 이미 내 발밑에 존재하고, 나의 체중을 받쳐주어 내가 일어서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당연하고 평범한 조약돌이 천국으로 가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행복은 어느새 내 옆에 와서 조용히 앉아있을 것입니다.

 

 매일매일 비타민을 먹듯 작은 행복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긍정의 총량이 늘어납니다. 예상치 못한 불행에 빠지더라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글 그림

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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