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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채 Oct 31. 2017

1등이 아닌 나

 열심히 안 하면 불안합니다.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는 순간 불행의 불지옥에 추락할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죽을 둥 살 둥 달려들어 가진 걸 다 쏟아부어도 성공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뾰족뾰족한 불안이 신경을 자극합니다. 커피잔을 손에 든 일요일 오후 세 시. 내가 쉴 자격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은 폭풍이 되어 내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어쩌다 쉬기라도 하면 불안이 독사처럼 고개를 치켜듭니다. 단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인데 어쩐지 죄를 짓는 기분입니다.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일거리를 찾습니다. 

 눈 뜬 직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늘 바쁘게 무언갈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항상 부족한 느낌입니다. 시간이 금이라고 했습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그 몇 분 조차 함부로 낭비할 수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을 빈틈없이 해 냈습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남은 할 일을 찾아 집 안을 서성거렸습니다.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기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내가 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청소년기엔 진학에 대해 고민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직업적 성공을 고민했고, 결혼 후에는 더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내가 더 나아지려면 나는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게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매력만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만큼 잘 생기지 못했습니다. 물려받은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금수저도 아닙니다. 보통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오로지 단 한 가지 잘하는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이 100을 노력할 때 나는 300을 노력하면 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압도적이고 확실한 승리를 위해 1분 1초를 아껴가며 나를 갈아 넣습니다. 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삶의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졸업을 하면 취직을 해야 하고, 취직을 하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밟았던 과정을 그대로 따르라고 아이에게 가르칩니다. 이 게임의 규칙을 거부하는 사람은 철없는 사람, 부적응자, 무능한 인간으로 규정되어 사회의 비주류로 낙인찍힙니다. 


 인생은 경쟁으로 시작해 경쟁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경쟁은 내가 한낱 세포였던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완벽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하나도 빠짐없이 잘 해내야 합니다. 치밀하게 설계된 기계처럼 모자라거나 미달인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투입하는 노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기왕 졸업할 것이라면 우등생으로, 어차피 할 거라면 가장 잘, 결국 해야 한다면 누구보다 뛰어나게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메달보다 못한 은메달은 주목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고 믿었습니다.


 어제보다 더 나아지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았습니다. 이미 한계를 넘긴 압력솥처럼 나는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손으로 화력을 더 세게 올렸습니다. 어릴 때는 그래도 경쟁자와의 간격이 크지 않았습니다. 고만고만한 까만 머리 아이들 사이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나도 선두그룹에 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노력보다 더 뛰어난 외부 요인들이 우리의 경주에 개입하게 되었고 나의 순위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구덩이들이 도처에 널려있었습니다. 경쟁자들은 타고난 재능, 부모의 재력, 또는 우연한 운으로 그 구덩이들을 가볍게 뛰어넘었습니다. 한 번 벌어진 간격에 가속도가 붙자 걷잡을 수 없이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텅 빈 트랙에 오로지 나의 숨소리만 들렸습니다. 저 멀리 작은 점으로 사라진 경쟁자의 뒤통수를 보면서도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다 멈춰 서면 들리는 건 오로지 나의 숨소리뿐. 적막은 더 크게 느껴지고 혼자라는 느낌은 더없이 강해집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 힘없고 작은 존재인 내가 너무 또렷하게 느껴졌습니다. 필터 하나 없이 날것으로 느껴지는 나 자신이 무서우리만큼 보잘것없어서 나는 더 필사적으로 도망쳤습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말입니다.

 열심히 더 열심히를 목이 쉬도록 부르짖다 보니 나는 어느새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열심히 살기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치열하게, 더 치열하고 완벽하게 노력하는 것에 정말로 지쳤습니다. 그럼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못했던 나는 눈만 감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무 일도 없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편안하게 호흡할 수 없었고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내 머릿속 어딘가가 고장 났다는 걸 깨달은 후에야 나는 겨우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썩은 걸레 같은 혓바닥의 맛이 느꼈습니다. 갈증으로 입술이 다 타버렸고 소변 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대로 트랙 위에 드러누워버렸습니다. 드러누워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내 몸이, 내 마음이 나에게 이제 그만 쉬자고 수없이 부탁했는데도 나는 행복하기 위해 그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그 대가로 나는 마음의 감기를 앓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노력한다고 내가 늘 1등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사실 1등이 아닌 적이 훨씬 많았습니다. 1등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화제의 중심에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1등이 된다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등 인간인 나는 언제나 1등을 부러워하고 그렇게 되려고 애썼습니다. 행복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변질되어 1등만 하면 무조건 행복할 것이라는 오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나는 불확실한 앞날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열심히 하는 것으로 나의 미래를 제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나만 열심히 하면 행복한데 왜 더 노력하지 못하느냐고 나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내가 괴롭히고 원망할 수 있는 사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은 오로지 단 한 명, 바로 나 자신 뿐이었습니다. 

 마음이 괴로워질수록 불안은 더 커졌습니다. 더 커진 불안이 더 큰 노력을 요구했습니다. 나는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욱더 불안하고 불행해졌습니다.

 그래서 더 나는 내가 미웠습니다. 성능 좋은 도구를 얻지 못해 화가 난 조종사처럼 스스로를 원망했습니다. 매력 없고 모난 나를 개조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멋진 사람이 되지 못하면 영원히 불행하고 외로울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행복의 조건들은 사실 진짜 행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란 사실을, 이제 나는 압니다.


 삶은 장애물 경주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인간의 삶에 정해진 트랙 같은 건 없었습니다. 기성세대의 요구, 사회의 요구, 같은 그룹에 속해있는 경쟁자의 요구에 맞춰 나 스스로 설정한 한계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알고 보면 비주류로 불리는 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먼저 트랙을 지워버리고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인생이 올까요? 사회적으로 선망받고 주위를 감동시키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멘사 회원은 아닐 것입니다. 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행복할까요? 대기업의 총수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자녀를 낳으면, 결혼을 하면 조건 없는 행복을 맛볼 수 있을까요? 분명 행복하겠지만 그만큼 또 다른 다양한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며 책임과 희생 또한 요구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라인에서 조립되는 상품처럼 품질 좋은 인력이 되는 훈련은 넘치도록 받았습니다. 하지만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방법은 배우기는커녕 스스로 생각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해지는 법도 배워야 안다는 사실, 그리고 바로 제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저는 아주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는 나를 낳아준 부모님 조차 시원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적어도 그 답이 열심히 살기 위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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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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