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진저리 치게 만드는 그것, 사람의 마음입니다. 나는 늘 나 자신의 마음, 타인의 마음, 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맑은 수면에 내 모습이 비치듯, 타인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의 얼굴이 영롱하게 떠올랐습니다.
좋은 사람 인증 마크 같은 건 없었습니다. 우정 시험성적서를 첨부한 1급 친구 같은 걸 어디서 팔았다면 나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샀을 것입니다. 삶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내가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어떤 때는 더없이 기뻤고, 어떤 때는 비 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유니콘을 찾는 공주처럼, 완벽한 우정을 갈망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하니 마음이 충족될 리 없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열일곱 살 아이들 마흔 세명이 꽉 들어찬 교실에 앉아있다 보면 시궁창에 떨어진 소공녀처럼 외롭고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선택 한 적 없는 가족 때문에 내가 고통받는 것이 억울하고 괴로웠습니다. 친구는 선택이라도 할 수 있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아끼고 위해야 할 가족에게 남보다 더 못한 대접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는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통받는 것은 나의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이 문제일 뿐,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나도 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남의 기준은 남의 기준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증거는 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고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이를 서른 하고도 몇 살 더 먹고 난 후의 일입니다. 나는 색색깔로 분류한 서류철처럼 사람의 마음을 딱 딱 나눠 정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 사람은 나에게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를 괴롭히는 사람 하는 식으로요.
일단 나쁜 사람 딱지를 붙이고 나면 내가 편했습니다. 내 사람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상대방을 그냥 '나쁜 사람' 혹은 '이기적인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분류해버리면 적어도 내가 상처받을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가 배신감에 부들부들 떠느니 차라리 아예 믿지 않는 편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매정한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게 너무 서운해서, 나는 그 사람을 착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분류 해 버렸습니다. 좋을 때의 모습은 만들어 낸 가짜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화가 났을 때, 기분이 나쁠 때, 나와 다투기라도 했을 때 드러나는 그 날카롭고 뾰족뾰족한 모습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은 모두 거짓말인데. 그걸 믿은 내가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정말 멍청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더욱더 확고 해 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친구에게 '나쁜 사람'이나 할 만한 짓을 똑같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바라던 그 '이상적인' 친구는 나부터도 되기 힘든 고차원적인 존재였습니다. 변함없이 친구를 응원해주고, 친구의 불행이나 행복 모두 나의 일처럼 울고 웃었던 경험이 나부터도 없습니다. 날씨처럼 제 멋대로 인 타인의 마음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투덜댔지만, 알고 보면 내 마음도 똑같이 종잡을 수 없고 엉망진창이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싫은 가족에게서 나와 똑같은 습관을 발견할 때면 유전자의 무서움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어떤 때는 부모님이 미치도록 밉고 싫습니다. 그러다가 노쇠하고 굽은 등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명치가 아리고 눈가가 뜨거워집니다.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인지 미워하는 것인지 점점 헷갈립니다.
하지만 나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의 부모님은 당신들이 낳아 기른 나를 때론 미워하고 또 때론 사랑하면서 나와의 관계를 지속해왔을 것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할 여유조차 없던 시절 엄마 아빠는 나를 낳아 기르셨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울고 웃으며 다 같이 같은 속도로, 느리지만 서서히 성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나는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보다 열 살이나 더 먹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맑거나 흐리거나 비가 오는 그 전부를 모두 날씨라고 부르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쉽고 늘 다릅니다. 이 특성 때문에 마음은 갈대 같은 것이라며 욕을 먹습니다. 하지만 이 변하기 쉬운 점이 바로 마음의 핵심입니다.
산업화 이전엔 한 세기에 걸쳐 겨우 이뤘던 발전을 이제는 몇 년이면 해낼 수 있는 세상입니다. 100만 원을 주고 산 손전화도 2년을 버티지 못하는데 30년 넘게 굴려먹은 마음이 돌덩이처럼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급속한 변화의 충격으로 인해 죽고 말 것입니다.
마음의 순간적인 상태를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어버리면 오해가 시작됩니다.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나는 좋은 점과 싫은 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타인을 좋아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결정하느라 삶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타인을 판단하거나 정의하려 하는 것은 날씨를 조종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단점을 하나하나 꼬집어 나열하며 삶을 낭비하는 것은 이제 그만둘 때입니다.
어지럽게 잘려나간 단면이 없다면 다이아몬드는 그냥 하얀 돌덩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섯 개의 네모를 이어 붙이면 육면체가 되는 것처럼, 복잡 다양한 감정이 하나로 모여 마음이 됩니다. 절대 단순하지 않고 전혀 균일하지도 않습니다. 도통 알 수 없지만 어딘지 매력적입니다.
금강석을 자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금강석뿐이듯, 나의 마음을 세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또 다른 타인의 마음뿐입니다. 사소한 다툼, 생각지 못했던 오해로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나를 단련할 기회를 스스로 저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타인과 내가 함께 성숙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기회를 말입니다.
글 그림
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