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고 사람 만나는 일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이었던 영업부. 거래처에 전화를 하고 미팅을 하고 또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지난 5년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사람 만나는 그 일이 나에게는 참 힘이들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새로운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하는 일을 버거워한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는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일에 참 서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먹고살겠다고 영업을 했으니 참 힘들고 힘들었다.
취직이 어려웠다. 입사원서를 아무리 써도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고 면접 한 번 보지 못했다. 그렇게 영원히 취직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내 적성과 상관없이 뽑는 인원이 가장 많은 영업부에 원서를 넣었다. 이마저 쉽지는 않았지만 어렵게 한 회사에 합격을 했고 그 직군에서 5년을 일했다. 지원동기는 돈을 벌기 위함이었고 입사 포부는 적금 만기까지 버티기였다. 우습게도 일에 대한 확신도 애정도 그리고 열정도 없었지만 참 열심히 5년을 버텼다. 남의 돈 받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 이 정도 스트레스는 견뎌야 한다면서 나 자신을 토닥였다.
휴가를 가도 늘 핸드폰을 확인해야 했다. 나는 연차를 썼지만 거래처는 쉬는 날이 아니기 때문에 쉬는 날이 온전히 나의 하루가 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참 불합리하다고 화도 내고 짜증도 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일이고 어차피 내가 지금 와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이렇게 조용히 회사를 다니는 삶이 안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적성 따져가면서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5년이면 없던 적성도 만들어지는 시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할 수 없는 몽골에서 와이파이가 잡힐 때마다 회사 메일을 확인하며 조급하고 불안하게 회신을 하는 나의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처량했다. (와이파이가 잡히자마자 하는 일이 가족한테 안부를 보내는 일도 아니고 아웃룩에 접속해서 메일을 읽는 일이라니! 그 당시 카톡을 읽는 것보다 아웃룩 확인이 우선순위였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5년을 보내고, 비로소 지금에서야 주의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혼자 보내는 이 시간이 나의 삶을 회복시켜주고 있음을 고백한다. 혼자 있어 외롭지 않냐는 질문에 나는 웃으며 전혀 외롭지 않다고,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내 모습이 좋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 사이에서 혹은 그 안에서 함께 일해야 할 순간이 다시 돌아오더라도 이제는 조금은 괜찮을 것 같다. 이 막연한 자신감은 나에 대한 이해, 내 삶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왜냐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조금 먼 길을 돌아가도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니까. 힘들면 쉬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배웠으니까. "힘들면 쉬자" 이 낙관적인 생각을 서른이 돼서야 겨우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