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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토마토 Jul 06. 2018

밤일해요?

자취방에 냉장고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냉장고에서 물이 새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하지만 집주인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설명하고 주말에 시간을 내서 냉장고를 고치는 일이 매우 귀찮게 느껴져 고치지 않고 있어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많은 백수가 되었으니 냉장고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주인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냉장고에서 물이 새서 전화드렸어요"
"냉장고 바꾼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망가졌어요? 내가 내일 방문 드릴게요"
"네. 내일 몇 시에 오실 예정이세요?"
"그건 잘 모르겠으니 내일 일단 방문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오시기 전에 전화 주세요"

라는 평범하고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다음날 오전 9시에 집주인 할머니가 칼같이 벨을 누른 것 빼고. (물론 집주인 할머니는 9시에 도착한다고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셨다.) 회사를 다녔다면 9시 전에는 무조건 일어나 있었을 테지만 (그럼 집에도 없었겠지) 백수인 나에게 9시는 매우 이른 시간이었다. 이렇게 일찍 오실 예정이었으면 아침에 오신다고 미리 말씀을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다.

"어머 자고 있었어요?"
"네"
"아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까지 자요? 밤일해요?"

순간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 밤일이 맞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밤에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말의 뉘앙스를 보니 전자가 맞는 것 같아 급속도로 기분이 나빠졌다. 아, 9시까지 집에서 자고 있는 미혼 여성은 밤일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기분이 나빴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때 내가 화를 냈어야 했을까. 슬프지만 내가 세입자가 아니었으면 화를 냈겠지. 

회사 안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내 마음이 다치지 않게 토닥거리는 일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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