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한 것이 나의 열등감의 원천인 시절이 있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대기업 합격 소식에 숨이 막혀왔다. 업무, 업종에 상관없이 그저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 친구들이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은 보이지 않고 화려해 보이는 결과만이 부러웠다. 발등에 취업이라는 불이 떨어지니 한 번도 바란 적 없었던 대기업 취직을 염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기업 취직에 실패하자 열등감의 씨앗이 내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아 꽃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지. 이 정도 연봉이면 적어도 평균은 되는 거 아니겠어. 문과인데 취직한 건 대단한 거야. 얼마나 문과가 취직하기 힘들면 '문송합니다' 라는 말이 나오겠어.
애써 자신을 토닥거리는 거짓된 자존감. 속으로 타인과 나 자신을 끝없이 비교하면서 괜찮은 척하는 거짓된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애써 달랬다. 참 찌질하고 처량한 몸부림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은 나의 삶의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나를 괴롭혔다.
한 차례 이직을 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그 자리의 주된 대화 주제는 회사였다. 다들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회사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화두에 올랐다. 모두 이직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 회사와 현재의 회사를 비교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들 지금 회사가 얼마나 괜찮은지 혹은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에 대해 토로했다. 이에 질세라 나 또한 이직한 회사의 장점을 열거했고 약간의 부러운 눈빛을 받자 조금 우쭐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의 내 마음은 공허했다. 나는 '괜찮은 회사'에 다니는 '참 괜찮은 나'를 만들기 위해 애썼을 뿐이었다. 그저 그뿐인 공허한 대화의 끝은 허무함이었다.
괜찮은 회사에 다녀야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일까? 머리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 왜 현실에서 끊임없이 남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 일까. 열등감을 가지고 사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에서부터 자유롭고 싶은지, 무엇으로 부터 변하고 싶은지 조차 인지 하지 못한 채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퇴사라는 분기점에 다 달았다. 나약한 나는 '좋은 회사로의 이직' '연봉 상승' '진급'과 같은 경쟁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서야 열등감과 직면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이 감정과 직면했다면 회사를 조금 더 다닐 수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약간의 넉넉한 마음을 품고 회사를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열등감과 작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회사라는 곳 때문에 생긴 열등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열등감 중 하나 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퇴사는 열등감 극복의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고정 수입이 없어져서 생기는 불안과 열등감이 새로 생길 수 있다.
나는 퇴사를 권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또 직면하며 힘들지만 못난 나를 인정하는 시간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시간을 통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소유한 것 소유하지 못한 것에서 의미를 찾지 말고 내 존재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오랜 시간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난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