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한 지 세 달이 지났다. 한 분기를 출근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회사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회사를 다녔던 시간이 기억 속에서 미화되지 않아 회사 생활이 그립지 않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좋지 않았던 기억도 어지간해서는 아름답게 포장되는데 회사 생활에 대해서 전혀 미화되는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난 정말 회사를 싫어했나 보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서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평일 낮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주말에 늘 사람이 많았던 카페, 미술관을 한적한 시간에 방문할 수 있다니! 평일 낮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하고 소중하다. 더불어 출퇴근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삶의 질을 굉장히 높여주었다. 무거운 회사 노트북을 들고 출퇴근 길 지하철을 타는 일은 정말 괴롭기 그지없었다.
얼마 전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샤갈전을 보고 왔었다. 주말의 풍경과 사뭇 다른 평일 오전의 미술관. 그곳은 한가롭고 여유로웠다. 나는 미술을 잘 모르지만 주기적으로 미술관에 가려고 하고 있다.(하지만 못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우연히 만나는 작품이 주는 감동을 마음에 쌓아두는 그 시간이 꽤 즐겁다. 좋은 작품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나는 마치 주머니 속에 사탕을 두둑이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와 같다.
샤갈전을 보고 있을 때 의외로 미술관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아무래도 평일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연령층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그렇구나 싶었다. 혼자서 근엄하고 섬세하게 혹은 친구들과 유쾌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내가 회사에 있었다면 만날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작품 감상을 끝낸 어르신들이 소녀 같은 미소를 띠며 "역시 사랑이 중요해"라고 수줍게 (샤갈은 아내 벨라를 뮤즈로 삼아 많은 작품 활동을 했다) 친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장면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회사 밖의 삶, 노년의 삶 그리고 내가 모르는 수만은 곳에서 삶을 살아내는 당신들의 삶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다양한 형태의 삶의 편린을 마음에 품게 된다면 나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