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여행기
< 에콰도르, 텔레페리코 >

@ 해발 4100m의 언덕에서 맞이하는 남미의 첫 바람

by 태오


양옆으로 울타리를 쳐놓은 길의 중턱에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조용히 키토를 느낄 수 있는 비밀의 공간이 있었다. 언덕의 최대한 끝으로 걸어가 두 발을 모으고 눈을 감으면 맑은 공기가 가쁜 숨을 잔잔하게 하며 온몸에 청량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 기운이 혈관을 타고 전두엽까지 전해지면 눈을 감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키토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찬 공기는 이내 역동적인 바람이 되어 온몸을 휘감는다. 길면서도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은 발끝보다 더 아래쪽에서부터 언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자연스레 두 팔을 벌려 바람을 한가득 잡으면 하늘로 날아오른 독수리처럼 거센 바람이 그대로 나를 하늘로 밀어올린다.


해발 4100미터 의 텔레페리코, 남미에서 맞이한 나의 첫 바람이었다.




버스를 타고 10여분, 텔레페리코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안내판이나 표지판은 보이지 않는다. 조그만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간이 정류장이 보였다. 정말 이곳으로 버스가 오는지 의심이 될 정도의 비주얼과 지루할 정도의 기다림이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하지만 얼마 후 오래되어 보이는 하얀색 미니버스가 툴툴거리며 언덕을 조심스레 내려왔다. 비록 허름하고 느린 버스이지만 힘겹게 걸어올라가거나 돈 들여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되니 나름 만족할만하다. 아무도 없는 무료셔틀 버스에 혼자 앉아있으니 마치 놀이동산의 관람열차에 혼자 놀러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DSC02036.JPG 시내에서 텔레페리코 매표소까지 운행하는 무료셔틀 버스가 2~30분 간격으로 있다.


버스에서 내렸지만 여전히 매표소는 오리무중이다. 탐험가처럼 혼자서 길을 찾아 나선다. 기다란 계단을 올라, 텅빈 놀이 공원도 지나치고, 또 언덕을 올라가니 마침내 매표소가 보인다.

그런데 그곳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혼자여서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아마도 다들 택시를 타고 올라왔나 보다.)


정원 6명을 가득 채운 케이블카는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2800m에서 4100m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행중에서 가장 어린 '꼬마 아가씨'는 케이블카가 처음인지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풍경을 바라보았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키토의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텔레페리코는 딱히 정해진 반환점이나 목적지가 없다.

그저 케이블카에서 내려 어느 곳이든 발길이 닿는 곳으로 가면 그만이다.


한쪽으로는 구름과 맞닿아 있는 푸른 산맥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키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대부분의 지형은 가파르지 않아서 트레킹하듯이 천천히 걸어올라가면 된다. 고산지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태라면 조금 숨이차거나 어지러울 수는 있지만 그렇게 힘겨운 코스는 아니다.


텔레페리코는 키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비록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아닐지라도 바람만큼은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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