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빠의 첫 입원

- 그 밤, 우리는 함께 달렸다.

by 꽃샘추위

늦은 저녁 할머니에게서 온 전화가 울린다.

휴...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

휴대폰 액정에 뜬 <할머니>란 세 글자만 보고도 본능적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세 번의 공식적 이혼을 하고 음주운전 사고로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며 그 여파 때문인지 얼마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천덕꾸러기 아들, 그 천덕꾸러기 아들이 나의 아빠다.

그 아들과 함께 살고 계신 할머니의 늦은 밤 전화는 받아보지 않아도 분명 좋은 소식이 아니리라.


"너희 아빠 데려가라. 자꾸 술만 먹어서 안 되겠다"

요 며칠 밥도 드시지 않고 계속 술만 먹는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던 터라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만 괜찮으면 우리... 아빠 병원에 입원시켜봐요. 내가 데리러 갈게."


그 무렵 나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술을 끊고자 하는 알코올 선배님(?)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서로를 위한 응원의 말들을 주고받았다.

단주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을 공유했으며 그들이 거쳐간 병원들의 후기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찾아보았다.

술을 얼마간 단주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면 사비를 들여 제작한 금주 배지를 준다던 카페지기님...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인권유린이 이러하니 절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이야기... 이번에 또 단주를 실패해서 가족을 실망시키고 말았다는 눈물과 회한 가득한 글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함께 술에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카페 활동을 하며 여차하면 바로 입원을 할 수 있도록 그중 괜찮다 하는 알코올 전문 병원 사이트를 뒤져 입원에 필요한 서류들을 미리 인쇄해놓았던 게 다행이었다.

이렇게 전화 한 통에 짐을 챙겨 바로 달려갈 수 있으니 말이다.


"아빠. 내가 아빠 같은 아저씨들한테 들었는데 지금 가려는 병원은 엄청 좋은 병원이래. 병원비도 아주 비싸. 그래도 아빠가 술만 끊는다면 내가 병원비 다 내줄 수 있어. 딸이 소원이라는데 병원 한번 못 가줘요? 아빠가 입원해서 노력해봤는데도 안되면 그때는 내가 포기할게."

술기운 탓인지 아님 몇 개월간 지속된 끝없는 술 레이스에 심신이 지쳐서인지 수화기 너머의 아빠는 "그래 가보자." 했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가야 한다. 내일 술이 깨면 안 간다 할게 분명하니 지금 당장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3살, 6살인 두 아이 재우기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서둘러 할머니 댁으로 가는데 불과 8개월 전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그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술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가정불화가 술을 불렀을까?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시고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비틀비틀 운전하여 할머니 집으로 오는데 길에 사람이 누워있었단다. 산 밑의 외딴 시골 논두렁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와야 하는 할머니 집을 100미터도 채 안 남겨두고 음주단속에 걸릴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울 것인데.... (몇 가구 안 사는 시골 마을 논두렁에서 음주 단속하는 경찰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길에 누워있던 사람 덕분에 경찰이 출동했고 아빠는 만취상태로 면허취소에 재판까지 받게 될 처지가 되었다.

정말 불행하게도 누워있던 사람도 부부싸움 중이었단다.

그 사람도 아빠만큼이나 술에 잔뜩 취해 아마 아빠 차를 부인의 차로 착각하고 드러누워 갈 테면 가봐라 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운이 없는 아빠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벌을 제대로 받았다.

대질심문에 거짓말 탐지기에 술 취한 자들의 기억을 조합하여 결론을 내느라 아빠는 경찰 조사를 몇 번이고 받았고 그 스트레스 때문인지 어느 날 아침 쪼그려 앉아 양치를 하다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다행히 곁에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발 빠른 대처로 응급실로 옮겨져 스탠드 삽입술을 받고는 구사일생으로 큰 후유증 없이 열흘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빠가 건강관리를 더 해도 보자란 판에 하루가 멀다 하고 또 술이라니.....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기나긴 기다림 끝에 불행 중 다행히도 면허취소만 당한 채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운전이 업이었던 아빠는 백수가 되었고, 당연한 듯이 퇴원 후 얼마 되지 않아 세 번째 여자도 빚만 남긴 채 사라져 상처뿐인 인생만 남았다.


아빠의 인생일대 아픔만 남겨준 꼬부랑 논두렁길을 돌아 굴뚝 끝에 뿌연 연기를 쉬지 않고 뿜어대는 초라한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비틀비틀했고 어딘가 모르게 슬프고 두려운 듯도 보였다.

우리 큰 딸 한번 안아보자더니 팔 벌려 크게 안아주고는 큰 결심을 했는지 순순히 따라나섰다.

뇌경색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세 번 평생을 먹어야 하는 두터운 약봉지부터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까지 후다닥 입원 가방을 꾸렸다.

후~ 심호흡을 해본다. 밤 11시가 가까운 새까만 하늘을 보며 두 시간을 달려 의왕까지 가야 한다.

아빠는 내 옆좌석에, 당연한 듯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뒷좌석에 타셨다.

3년 터울 두 아이의 출산과 육아에 바쁘게 살던 나는 사실 여태껏 고속도로를 혼자 운전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캄캄한 밤이다. 아빠를 입원시켜야 된다는 생각 하나로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막상 고속도로를 달려 초행길을 가려니 덜컥 두려움이 앞서고 머리칼이 곤두선 느낌이었다.

술에서 조금 깬 아빠가 운전 조심히 하라며 가는 내내 내비게이션을 보며 길을 봐주시는데 목구멍이 자꾸만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아빠를 입원시키러 가는 길 아닌가?.... 말이 입원이지 술로부터 아빠를 가둬두러 가는 길....

아빠가 그 길을 에스코트해주고 있다니....

애써 태연하게..."아빠는 밤에도 운전 많이 해봤지? 나도 운전 잘해. 걱정 말고 한숨 자요."하고 말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캄캄한 도로의 차선도 잘 보이지 않는데 이 밤, 이렇게 우리 넷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사고가 나서 죽는다면 어떨까? 생각을 해봤던 것 같다.

알코올 중독 아빠를 입원시키려 딸과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캄캄한 밤 도로를 달리다 사고가 나서 다 함께 죽으면 어떨까? 슬픈 비극일까? 아니면 모두 다 함께 후련할 수 있을까? 결국 내 삶은 이런 결말로 끝나는 건 아닐까? 걱정 쟁이, 망상가인 나는 달리는 내내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1시간쯤 달려 아빠가 술을 조금 깨면 좋겠다 싶어서 휴게소에 들러서 물을 한 병 사 가지고 왔는데, 차에 타고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곤혹스러운 얼굴이셨다.

이런 낭패가 있나? 차량이 잠금 상태가 되어 화장실 가고 싶은 아빠가 문을 열지 못했단다. 아빠는 조수석에 앉으신 채 소변을 보시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알코올 전문병원은 생각보다 크고 깨끗해 보였다.

"아빠!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따뜻한 아빠 손을 한번 꼭 잡아본다.

"걱정 말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잘하고 편안히 있다가 와" 할머니도 한마디 인사를 건네셨다.

아빠의 몸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아빠가 오는 길에 바지에 소변을 보셔서 옷이 젖었어요. 옷 좀 갈아입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입원 수속을 마친 뒤 여벌 옷과 세면도구, 약이 든 가방을 전달하며 일반 병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간호사에게 하루 세 번 약을 꼭 먹어야 한다는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아빠는 복도를 따라 제일 끝에 있는 방, 생각보다 넓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외롭게 보이는 1인실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혹시나 사고라도 날까? 내비게이션을 봐주고 오는 내내 운전 코치를 해주던 아빠는 눕자마자 안도하셨는지 아니면 안정제 같은 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이내 깡마른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는 잠이 드셨다.


아빠를 내려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할머니~ 병원에 입원하면 얼마나 좋아! 삼시세끼 주는 밥 잘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아이고~ 난 걱정 안 한다."

쉰이 넘은 아들이 걱정스러운 할아버지는 오는 내내 별말씀을 안 하시고는

"네가 고생이 많았다." 하셨다..


그 밤, 우리는 그렇게 함께 달렸다.

돌아와서 보니 어떤 정신으로 깜깜한 고속도로를 왕복 4시간이나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날 아빠를 보러 갈 때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는데,

먼 동이 트려 하는 새벽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편한테는 지난밤 장인어른이 새로 산 자동차 시트에 소변을 누었다고 어찌 말을 할까? 걱정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아빠의 소변으로 젖어든 조수석 시트를 걸레로 연신 닦는데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새우처럼 구부려 팔베개를 하고 잠든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