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저는 알코올 중독자의 딸입니다.

- 알코올 중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by 꽃샘추위

맘 카페에 육아 글을 올리거나 육아용품 드림받는 게 소소한 낙이었던 내가 아빠 덕분에 알코올 중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을 했다.

첫 글의 제목은 "저는 알코올 중독자의 딸입니다"이다.

가입인사 겸 현재 내 상황이 이 문장 한 줄이면 가장 잘 전달이 될 것 같았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폭음이 다시 시작됐다. 폭음이 시작되면 하루에 한 끼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잠드는 일상이 반복된다. 나중에 알코올 전문 병원 상담사에게 들어서야 알았는데 소주 한 병의 칼로리는 밥 한 공기에 버금간다고 한다.

하루에 한 끼만 걸러도 허기가 질 법 한데 이틀에 한 끼를 먹을까 말까 한 아빠는 술로 칼로리를 때우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 한 끼도 먹지 않는 아들을 곁에서 바라보는 노모의 속은 분명 새까만 색이었으리라.

할머니는 혹시라도 아들이 먹을까 싶어 삐그덕거리는 방문을 빼꼼 열어 우유, 요플레, 바나나, 단백질 보조제등 다른 자식들이 본인 먹으라며 사다 준 음식들을 술에서 깬 아들이 조금이라도 먹을까 싶어 문 앞에 두었다.

한참 후 들어가 문을 열어보면 손도 안 댄 채 그대로....

시간이 지나 말라비틀어진 음식을 보고 가슴에서 천불이 나서 개나 먹으라고 마당 구석 검둥이에게 던져주다가 갑자기 문득 얘가 죽었나? 싶어 이부자리에 다가가 숨을 쉬는지 코에 손을 대보았단다.

몇 달 전 칫솔을 입에 문 채 쓰러져 입이 돌아가고 손발이 꼬부라져가는 자식을 본인 눈으로 목격한 할머니의 마음에는 불안함의 상처가 또 한 번 새기어졌다.


그런 아빠를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신경과 진료가 있던 날 교수님께 부탁하여 정신과 진료를 보기로 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정신과 의사는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이것저것 물어가며 상담을 해주던데 처음 가본 정신과 교수님은 어느 공공기관 창구의 공무원처럼 딱딱하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아빠의 50여 년 인생 굴곡이 어떠했는지 인생사를 털어놓으며 아빠의 아픔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의지를 가질 수 있는지 도움을 얻을 생각이었던 나도 입을 닫아야 했다.

술은 얼마나 마시는지, 담배는 하루에 얼마나 피우는지 현재 상태에 대해 묻고는 금연클리닉을 소개했고 금주 약과 함께 금연약을 처방해주었다.

"약 잘 드시고, 2주 후에 오시면 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이유는 이 마저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약이 너무 독하다며 정신과 처방약을 띄엄띄엄 드시다가 2주 후 정신과 의사와의 만남을 거부하셨다.


알코올 중독자 아저씨(?)들은 참 좋은 분들이셨다.

딸의 노력이 이렇게 기특한데 아버지가 너무 하다며 아버지가 지금 어떤 상태인 건지,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같이 염려해주고 아버지도 이 카페에 가입시켜 글들을 직접 보고 느끼게 해 보라는 둥 전문가와 상담을 해보라는 둥 각자의 해법들을 내놓았다.

그분들의 의견 중 대부분은 강제입원을 시켜보라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 전문가이신 그분들도 술로부터 아빠를 떼어놓는 방법은 입원 말고는 없음에 다들 동의하신 것 같다.


알코올 중독자 커뮤니티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금주의 다짐과 실패와 회환 섞인 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를 다독이는 그분들도 매일같이 다짐하고 매일같이 실패했다.

그분들의 실패가 나와 우리 아빠의 실패인 것 같아 얼마 후 알코올 중독을 키워드로 한 다른 커뮤니티에 가입을 했는데 그곳에는 알코올 중독자 가족들이 많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부모, 배우자, 딸, 아들, 동생, 형, 언니... 알코올 중독 가족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들은 내 고통은 저리 가라 할 만큼 다양하고 더 한 사례들이 많았다. 알코올 질환부터 주취폭력, 돈문제, 여자 문제, 입퇴원 문제까지 우리만 알고 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통이 가슴 깊이 공감되어 함께 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곳에서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매일 새로운 다짐을 하고 실패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그 가족들이 고통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도와달라 애원한다. 지치지 않고 노력해서 새 삶을 살아보겠노라 함께 다독이지만,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가 생기고 생기길 반복하게 되면 그 끝에는 포기만이 남았다.


알코올 중독은 절대 고쳐지지 않으니 연을 끊고 자기 삶을 살아가세요.

치료하려고 애써봤자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알코올 중독은 불치병이에요.

치료해보려고 병원에 입퇴원을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명만 길어져 더 오래 사는 것 같아요.

어차피 고독사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 내려놓았습니다.

꾹 꾹 눌러쓴 댓글에는 그들의 고통과 슬픔과 분노가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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