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전화! 그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대하여...

- 집요한 퇴원요구

by 꽃샘추위

알코올 중독자 가족 커뮤니티에 글들 중에는 입원에 대한 고민들이 꽤 많다

자의입원, 보호 입원이라는 이름하에 그들을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아보는 방법이지만 사실 알코올 중독자 스스로가 알코올 중독자란 사실을 인정하고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가 치료받는 자의입원은 거의 드물다.

강제입원이라고도 불리는 보호 입원은 꼭 취중 상태여야 할 것!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그들을 강제로 입원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 2명이 동행해서 입원에 동의 사인을 해야 하고 인사불성의 환자를 병원 입구까지 데려가야 하는데 이때 보통은 사설 응급차의 도움을 빌린다. 고작 15~20킬로 거리를 이동하는데 2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내야 하고 타 도시로 간다면 40~50만 원은 기본이다.

순순히 순응하는 환자들이 있으신 반면 포박을 해서 가야 할 만큼 격렬히 저항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 가족을 강제로 끌고 가야 한다는 정신적 압박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수십수백만 번의 고민과 생각을 거듭했었고 나의 끈질긴 권유가 있긴 했지만 아빠가 고맙게도 입원해보겠노라 동의해줘서 사설 응급차를 부르는 일없이 첫 입원 수속을 무사히 마쳤다.

입원을 시키면 한 숨 돌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미치도록 괴로운 전화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입원을 시키고는 매일 하루에 한 통씩 간호사 데스크로 전화를 걸어 아빠와 통화를 했다

몸상태는 어떠한지 안부를 묻고 입원의 이유를 설명하고 치료의 의지를 북돋을 수 있는 응원의 말도 차분히 건넸다

그러나 입원 셋째 날부터 퇴원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왜 퇴원해야 하냐고 물으면

"네가 이 비싼 병원비를 어찌 감당하겠느냐?"

"여기 사람도 바글바글 하고 병원이 아주 엉망이라 있을 곳이 못된다" 하셨다

네가 면회를 오는 날 바로 퇴원할 테니 그렇게 알고 퇴원 절차에 대해 잘 알아보고 오라며 끊으셨다

입원 넷째 날부터는 공중전화카드로 아빠가 직접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는데 내가 먼저 전화 걸었던 날들이 후회될 만큼 하루에 2~3통씩 하루도 쉬지 않고 피 말리는 퇴원요구가 계속되었다

2~3통의 전화는 4~5통으로 늘었고 아빠는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전화를 하셨다

나만큼 질리게 퇴원요구 전화를 받으신 할머니가 입원해도 소용이 없나 보라며 다시 데려오자 하는 통에 아빠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설득하느라 혼이 빠지고 진이 다 빠졌다.

걱정하는 부모님께 "어머니, 아버지 저는 잘 있으니 걱정 마시고 제가 노력해서 이번에는 꼭 변한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래야 정상 아닌가?


아빠는 앵무새처럼 끊임없이 퇴원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다

- 나는 무조건 퇴원하겠다

- 치료를 받아도 이 병원에서는 안 받겠다

- 간호사들이 전화통화를 도청한다

- 상담사 년이 나쁜 년이라 가족들을 조종한다.

- 나는 마음만 먹으면 술을 끊을 수 있다.

- 내가 술 먹어서 가족들에게 피해 준건 없다


알코올 병원 주치의 선생님은

아빠가 남의 말을 듣는 연습이 아주 부족하며 아주 고집스럽게 자기 생각대로만 살았을 거라고 용한 무당 같은 진단을 내놓으셨다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아주 집요하게 내놓지 않으면 못 배길 만큼 할머니를 평생 괴롭혔지....'

병원 상담사 말이 아빠가 전화통을 붙들고 산다 했다

할머니한테는 하루에 18번을 전화하신 날 도 있다고....

아빠는 그렇게 퇴원요구만 하시더니 약 거부, 단주 교육도 거부하셔서 하루 담배 5개비만 피울 수 있는 담배 제한. 전화 제한 페널티를 받았다

한동안 전화가 안 오니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며칠 후 전화는 집요하게 계속됐다


지금도 나는 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가슴이 철렁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할 수 있는 나...

전화를 받으면 두근대는 그 이름들은 지금 수신거부를 해놓았지만 전화 벨소리는 아직도 내겐 두려움이다


나의 친절한 알코올 중독자 커뮤니티 친구들은 그 또한 금주 금단 현상 중 하니이니 냉정해져야 한다고 날 다독였다 울고불고 애원하다가 화를 냈다가 퇴원만 하면 새 삶을 살거라 호언장담을 해도 퇴원하면 다시 술을 찾을 것이니 아빠가 진이 다 빠지고 포기상태가 되면 그 때나 전화를 받아주라 했다

본인은 3번을 입원했었는데 세 번 모두 한 달도 안돼 퇴원을 했노라고... 병원에서 주는 밥 삼시세끼 잘 먹고 잠만 잘 자도 몸이나 정신상태가 조금씩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동안 아빠가 정말 잘못 살았구나

-너무 힘들지만 한번 노력해보겠다

-지긋지긋한 술을 내가 다시는 먹지 않겠다

-널 너무 속상하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새 사람이 돼서 보란 듯이 잘 살아볼 테니 한번 믿어보거라


........ 나는 그저 아빠에게서 이런 말들을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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