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느낀 알코올 전문 병원
아빠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생계를 유지했던 화물차를 팔아 이리저리 쌓아둔 빚을 변제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알코올 전문병원의 한 달 병원비는 수급자 혜택을 적용받고도 50~70만 원 남짓, 일반 건강보험 납부자라면 100만 원이 훌쩍 넘는 큰 금액을 매달 내야 한다. 그 외에도 담배, 공중전화카드, 군것질 또한 사비로 충당해야 했기에 간식비로 매달 평균 30만 원 이상을 입금해야 했다.
비싼 병원비를 감수하고도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의 알코올 전문병원을 찾아 입원시킨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알코올 중독자들은 맨 정신일 때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다른 정신질환자들과 섞여있는 일반 정신병원이 지내기에 괴로울 수 있어서이다.
실제로 그들은 사회에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주부, 회사원, 심지어 고학력에 사회적 지위가 꽤 높은 사람들까지... 겉보기에는 정말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순수 알코올 중독자만이 지내는 병원이 좋을 것 같았다
둘째, 체계화된 금주 교육과 상담, 보호자 교육까지 알코올 중독에 대한 알찬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근무하시는 상담사 중에는 불치병이라는 알코올 중독을 이겨내고 전문상담사가 되신 분이 계셔서 간증하듯 본인의 경험을 살려 상담업무를 하고 계셨다
알코올 중독의 특성상 가족들도 교육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10회 이상 보호자 교육에 참여하면 병원비를 할인해주는 제도도 있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빠를 입원시킨 뒤 2주가 흘렀다.
아빠의 심금을 울려서 단주 의지에 불을 지필수 있게 절절한 편지도 썼고 병원밥 입에 안 맞을까 싶어 이것저것 먹을거리도 챙겼다.
2주 만에 만난 아빠는 술에서는 깼지만 약을 먹어서인지 어딘지 몽롱하고 어눌해 보이셨고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이 비틀비틀 몸도 잘 못 가누셨다
어찌 보면 정상 같고 어찌 보면 집에 계실 때보다 더 이상해 보이는?
환자복 바지는 누렇고 다리를 쩔뚝거리며 아프다 하셨으며 감기에 걸려서 콧물을 흘리고 연신 기침을 하셨다.
입원 첫날 침대에 누워 두 번이나 소변 실수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환자복을 2주 동안이나 계속 입고 계신 건지?
샤워는 하셨냐니까, 본인 말로는 이틀에 한번 하셨다는데 초점 없는 눈과 누런 바지를 보면 믿을 수 없었다.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혀를 끌끌 차며
"거 참, 아빠 좀 집에 데려가요. 어제도 이 양반 약 먹다가 다 떨어뜨려서 내가 주워줬잖아. 나이는 젊던데 할아버지야. 금방이라도 쓰러지게 생겼으니 원... 쯧쯧쯧"
나는 아저씨께 집에서도 다 죽게 생겨서 여기로 오신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배 나오고 기운 좋게 말하시는 그 아저씨가 부럽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빠는 원래 마른 체형이시긴 했지만 알코올 중독 증상이 심해지며 식사를 거르시면서 175가 훌쩍 넘는 키에 몸무게가 53킬로 밖에 되지 않았다.
몇 달간 식사는 거의 안 하셨으니 몸이 말이 아닌 상태에서 알코올이 빠져나가니 체력, 면역력 또한 한없이 떨어져 있으신 상태였다.
아빠는 구부정하게 다리를 꼬고 맞은편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전화 통화할 때 그랬듯이 앵무새처럼 퇴원 얘기만 반복하셨다. 지금 당장 퇴원시키라고....
평소 술에 취하면 눈빛이 아주 무섭게 변하는데 눈동자를 보니 아직도 아빠 몸속엔 술기운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기운이 쭉 빠지도록 말씨름만 하다가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빠의 샛노란 환자복 바지가 자꾸만 생각나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병원으로 전화해 수간호사쯤 되는 분께 컴플레인을 넣었다.
환자가 소변 실수를 하신 것 같은데 환자복을 갈아입히기는 한 거냐?
ㅡ일주일에 두 번 새 환자복을 드리는데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거기 병원비가 한 달에 백만 원도 넘는 곳인데 일주일에 두 번 지급이 말이 되냐?
ㅡ환자가 따로 요구하면 드린다. 환자 본인이 빨아 입고하시는데 관리가 안된 것 같다.
환자 본인 스스로 관리가 안되면 신경 써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 따지며 나는 진상 보호자가 됐다
폐쇄 병원의 특성상 아빠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2주 내내 소변 묻은 바지를 한 번도 갈아입지 못한 건지 따져 물었지만 죄송하단 말뿐 진실은 알 수 없었다.
일주일 혹은 열흘 간격으로 10만 원씩 간식비를 입금했는데 간식 장부에 o월 o일 초코파이 1 상자, 베지밀 두 개, 담배 1갑 등등 사용 내역을 적어 보관하고 보호자가 원하면 확인도 가능하지만 그게 온전히 환자 본인에게 돌아갔는지도 알 길이 없다
어떻게든 술맛을 보고 싶어서 병원 내에서 몰래 환자들끼리 밥알을 이용해 술을 만들어 발효시켜 먹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다
환자들 사이에 그들만의 위계질서나 폭력, 갈취가 있진 않은지 그 또한 모른다
알코올 중독자 커뮤니티 친구들이 말했던 인권유린이 암암리에 벌어져도 알 수 없다는 불안함 속에서 그저 그나마 괜찮은 곳이라는 선배님(?)들의 후기글을 뒤지고 또 뒤져서 선택한 곳이었다
이 마저도 병원 홍보를 위한 댓글 알바한테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는 나는 그래도 기왕 입원한 거 더 버텨보기로 했다
즐겨 듣는 라디오에서 상담을 해주는 코너를 맡은 정신과 전문의가 술을 입에 댔다 하면 무조건 입원이라는 걸 공식처럼 알려줘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는가?
퇴원요구에 못 이겨 일주일, 한 달도 안되어 퇴원을 시켜주면 기고만장하여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 했다. 그렇게 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 된다고...
정신건강보건법 상 보호 입원은 기본 3개월, 연장을 하더라도 최장 6개월, 그 후는 까다로운 연장 심사와 승인과정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단다
그마저도 미치도록 괴로운 퇴원요구 전화에 가족들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여 3개월을 채우고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세상 물정 몰랐던 내가 최장 입원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더 입원시키고 싶어도 방법이 없겠다 했더니 누군가가 그랬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퇴원하는 그날 고주망태가 될 테니 그대로 싣고 병원으로 가서 다시 입원 키면 된다고....
알코올 선배님들과 그 가족들의 경험담은 세상 어이없는 막장드라마의 완결편 같기도 했고 세상 통달한 어느 스님의 뼈 때리는 가르침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