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태어나자마자 알코올 중독자인 사람은 없다.
- 핑계가 참 좋았다.
알코올 전문 병원을 퇴원하고는 아주 잠시 아빠도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것 같았다.
밥을 퍼주면 한 그릇 뚝딱 먹는다고 할머니가 좋아하셨고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으며 나는 술기운 없는 또렷한 눈동자를 가진 아빠와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혹시나 외로우면 술 생각이 날까 싶어 두 아이들 등원시키고 시내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할머니 집으로 가서 말동무를 해주었다. 아빠가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사 갔고 오랜 병원생활에 축난 몸을 보하라고 한약방에 모시고 가서 약도 지어드렸다.
아들을 낳을 수 있는 한약도 지어준다 던 그곳은 관광버스로 사람들이 몰려와 한약을 짓기도 한다는 진맥 잘 보기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술 좀 끊게 하는 약은 없냐고 물었더니 '술 끊게 하는 약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그분의 말처럼 아빠는 두 달도 되지 않아 결국 다시 술을 마셨다.
밤에 그렇게나 잠이 안 오고 깊은 잠을 못 자서 기분 좋게 잠들 정도만 마셨단다.
하루 한두 잔은 약술이라고...
핑계가 참 좋았다.
나는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아빠를 평생 힘들게 만든 게 술인데 그 술이 약이 될리는 절대로 없다고 말한 것 같다.
다시 한번 술에 입을 댔다는 사실을 할머니께 들으면 그때는 응급차를 불러 병원에 싣고 가 입원시키겠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하지만 두 번째 입원을 시키지도 못했고 통원치료라도 받자는 내 간곡한 부탁은 약을 먹지 않아도 술을 끊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개월마다 뇌경색 치료를 위해 찾는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님은 아빠처럼 운 좋게(?) 큰 후유장애 없이 깨어난 경우라도 재발이 많은 병의 특성상 다시 한번 더 쓰러지면 그때는 두 발로 일어서지 못할 거라 했다.
거듭된 음주는 이명 증상을 심해지게 만들었고, 온몸 구석구석 염증을 만들어 잇몸이 내려앉고 이가 부러지게 만들었다. 술을 밥 먹듯 하던 어느 날 아빠 배가 볼록하니 꼭 복수가 찬 것 같다는 고모의 전화를 받고 소화기내과도 달려갔지만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다. 처방약을 며칠 먹고 다시 살만해지니 다시 음주는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쉬지 않고 딸꾹질이 계속되는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소화가 안된다고 저녁은 자꾸 거른다면서도 술잔은 놓지 않았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딸꾹질을 세 번 정도 하면 이제는 왈칵 토가 나온다 했다.
복수가 가득 차서 배에 튜브관을 꽂고도 알코올 중독자들은 술을 마신다 했던가?
어렵게 큰 병원에 예약을 하고 내시경을 하러 가는 날에도 아빠는 언제 적 술이 아직도 다 깨지 않은 것인지 비틀거렸다.
몸이 지칠 때로 지치면 한 번씩 입원 얘기가 본인 입에서 나왔다
입원 가방 다 싸놓았으니 갑시다~ 하면 이부자리에 누운 채 담배만 피워대며 망부석이 되었다.
알코올 병원 말고 그냥 일반 병원에 가서 좀 쉬고 싶다고 하길래
곡소리가 나올 만큼 몸이 힘들어봐야 술을 끊을까 싶어 내버려 둔 적도 몇 번 된다.
생각해보면 알코올 전문 병원에 입원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를 알코올 중독자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어렸을 적부터 술과 친구와 여자를 지독히도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었다.
큰 싸움이나 이벤트가 없이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면 그저 조용히 잠을 청하는 분이셨고 다음 날이면 일을 나갔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는 술만 마셨다 하면 고성방가에 주취폭력에 길바닥 아무 데나 누워 인사불성으로 잠드는 사람들만의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수년간 자기 자신도, 가족도 알지 못하게 몸속 아주 깊은 곳에서 무제한으로 증식하는 암세포처럼 술은 아빠의 혈관 속 깊은 곳을 흐르고 흘러 의존을 넘어 중독의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아주 어릴 적 아빠가 술에 잔뜩 취한 날이면 새벽녘에 일어나 화장실을 찾으려 손을 더듬거리다가 장롱문을 열고 소변을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세 명의 아내들을 거치며 술을 마시고 싸우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점점 심해졌던 것 도 같다.
술을 많이 마셔서 다리에 염증이 생긴 바람에 병원신세를 졌던 그 여름,
나의 자취방 계단에서 굴러 유혈이 낭자했던 그 밤,
모든 게 전조증상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불과 몇 년 사이에 깎아지를 듯 가파른 인생 하강 곡선을 그리며 나자빠졌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담금술이라도 찾아내 마셔야 했고,
돈이 떨어지면 할머니의 고스톱 자금인 사탕 깡통을 슬쩍하여 소주 한 병이라도 사와 숨겨놓고 마셔야 했고,
어쩌다 안부가 걱정되어 찾아주는 친구라도 있으면 막걸리라도 사 오라 말했다.
알코올 병원을 퇴원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가족끼리 갈비를 먹으러 외식을 간 적이 있다.
한 달에 한번 기초생활 수급비가 나오면 그 돈을 모두 술 값으로 탕진하기 전에 할머니와 나의 <아빠 돈 뺏기> 작전이 시작되는데 아빠한테 고기 좀 사달라고 했던 날이다.
그날 고기를 먹는데 옆 테이블에 아저씨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초록색 소주병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빠의 눈빛이 내 가슴에 박히었다.
그것은 분명 '갈망의 눈빛'이었다.
'초록색 소주병을 보고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인가?'
그 눈빛을 보았을 때 아빠가 이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다.
외로워서 마신다
심심해서 마신다
잠이 안 와서 마신다
열 받아서 마신다
괴로워서 마신다
기뻐서 마신다
어쩔 수 없어서 마신다
참을 수 없어서 마신다
이번이 마지막이라서 마신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그렇게 갖은 핑계를 대며 마셨던 날들이 모여 '중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