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어젯밤에도 술이 아빠를 먹었다.
- 한여름밤의 꿈
어젯밤 1년 넘게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만나지 않고 있는 아빠가 꿈에 나왔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한 없이 비틀거렸다.
또다시 술이 아빠를 먹었다.
제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다가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고는
정수리부터 얼굴 중앙까지 깊은 상처가 가로지르며 갈라지더니 금방이라도 머리가 두 동강 날 것 같았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병원 응급실로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의사가 진료를 보고 있는데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라 갑자기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건 하늘의 계시다.
이 참에 아빠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인 것이다.
아빠가 듣지 못하게 의사에게 '이 사람 지독하게도 술을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인데
어떻게 입원 안 되겠냐'라고 입모양만 겨우 벙긋대며 작전을 펼쳐본다.
깡마른 몸, 피부 깊숙이 풍겨오는 술 냄새, 힘없이 풀린 눈만 봐도 아빠의 상태를
알 수 있다는 듯 의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눈을 찡끗, 고개를 끄덕거리며 사인을 줬다
강제 입원시켜보자는 신호였다.
이제 아빠를 술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겠다 하는 안도감이 스쳤다.
머리를 두 동강 낼 듯한 깊은 상처는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빠를 집어삼킨 술로부터 아빠를 떼어놓는 것,
그것 하나 만이 나에게는 세상 가장 중요한 일....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참 이상한 꿈이다.
아빠가 죽을까 말까 한 상황인데도
난 울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고
그저, 아빠를 강제 입원시킬 궁리만 하고 있었다.
내 내면 깊숙이 아빠가 술 때문에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깊이 자리하고 있어서일까?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밤새 꿈속 깊은 늪 속에 빠져드는 몸뚱이를 건져보겠다고 발버둥을 쳐서인지 온 몸이 아프고 눈꺼풀은 천근 만근이다..
에잇! 이 한 여름의 이상한 꿈은 어제 본 인터넷 뉴스 기사 때문이다. 술로 인해 벌어진 살인사건 기사를 보며
기사 속 가족들의 상황이 뼛속까지 공감되어 허허허 씁쓸한 웃음을 내뱉었던 어제였는데 내 무의식이 아빠를 불러냈다.
알코올 전문병원 퇴원 후의 아빠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그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파서 선뜻 글이 안 써진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듯 서글픈 이벤트들을 메모해 놓은 <아빠의 기록 다이어리>를 펼쳐 읽다가
우둑하니 그저 멈추게 된다.
어둡고 또 어두운 글을 올리며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불쾌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나처럼 괴로운 알코올 중독자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다.
눈 떠서부터 잠이 든 그 순간까지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밥도 편히 넘어가지 않았고,
가슴속엔 뜨겁게 달궈진 돌덩이가 박혀있는 듯이 괴로웠다.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전화도 여러 차례 해보고 도서관에서 알코올 중독에 관한 책들을 빌려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민을 올리고 나눠봤지만 자꾸만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그래서 이럴 때에는 이렇게 해봤노라.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설령 내 방법이 실패했더라도 누군가는 내 실패를 보고 다른 노선을 찾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자기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