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서...

- 또 한 번 속아보시겠습니까?

by 꽃샘추위

이제는 병원의 도움이라도 받아보아야겠다 싶어서 아빠를 알코올 전문병원에 입원시키고 50여 일이 지났을 때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치매검사와 심리검사에서 장기간 지속된 폭음으로 인한 알코올성 치매, 경도의 인지기능 장애와 우울증을 확인했지만 알코올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점차 정신이 뚜렷해지고 식사량이 늘어났으며 스스로 청결유지도 가능해졌다.

입원 초기에는 심한 기침 때문에 타 병원 내과로 이송되어 외래진료를 받고 CT까지 찍을 만큼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식사를 잘 안 하셔서 전에 앓았던 폐결핵이 재발했나? 다른 큰 병이 있나? 모두 걱정했지만 다행히 감기로 결론이 났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셨다.

입원한 지 한 달이 넘어갈 때 즈음에는 본인이 문제가 있음은 어느 정도 깨달으신 것 같았다.


상담사에게 전해 들은 아빠의 변화는 이러했다.

집단 치료 중에 <죽기 전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발표하게 되었는데 가장의 역할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고백하시며 눈물을 쏟으셨다고...

그렇게 우울해하시던 분이 조금씩 웃기도 하시며 다른 환우들을 돕기도 하신다고...

한 줄기 희망 같은 그 말을 듣고는 '그래 그동안의 내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기뻤다.

하지만 상담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안타깝지만 본인이 알코올 중독자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회피'도 '저항'도 계속될 것이라 했다.


상담사의 말처럼 이제는 또렷한 정신에서의 퇴원요구가 더 괴로워졌다.

어느 날은 "퇴원하게 택시라도 불러달라"라고 하더니 또 어떤 날은 "보호자를 포기하는데 사인을 해달라", "병원을 나가서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내가 알아서 하겠다" (아빠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신경 꺼라 - 레퍼토리가 나왔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면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는 평생 병원에서 살겠다"라고 적반하장으로 소리쳤다(병원에 평생 계셔주시면 저는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쓰리잡을 뛰어서라도 제가 병원비는 꾸준히 댈 테니 부디 잘 계셔주세요!)

나는 스트레스의 늪에서 다리가 푹푹 꺾이고 숨통이 막혀오는 기분 속에서도 이를 악 물고 '나는 의사 선생님의 말만 듣겠다'라고 강조했다.

"아빠는 지금 환자로 병원에 입원한 거야. 의사 선생님이 퇴원하라고 하는 날 새벽이건 낮이건 밤이건 언제든지 퇴원시켜주러 갈 테니 그런 줄 아세요."

아빠는 안 되겠는지 방법을 바꿔 나 말고 할머니를 집중 공략하는 노선을 택했다.

다리가 아파서 말했더니 파스 한 장 붙여주는 게 전부더라~

아주 병원 밥이 형편없어서 도저히 이곳에서 삼시 세 끼를 먹을 수가 없다는 둥~

집 근처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겠다는 둥~

얼른 집으로 돌아가 다시 직장을 가지고 일해서 어머니를 봉양하겠다는 둥~....


병원에서 알게 된 상담사는 젊은 여자분이셨는데 꾸준히 나와 아빠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아빠의 상태를 전달하고 주기적으로 상담해주시곤 했다.

한동안 내게 전화를 안 했던 아빠가 상담사에게 사실은 딸에게 미안해서,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전화를 못하겠다고 말했단다.

어느 날에는 "이제는 내가 좀 살 것 같다"는 표현을 하셨다며 아빠의 한마디를 귀담아 들었다가 전했고

병원 내 단주 교육에서 내주는 숙제를 잘 못할 때면 "내가 어릴 적 공부를 안 해서 이런 부분이 서투니 이해해달라"라는 아빠의 용기 있고 허심탄회한 고백을 듣고 놀랐다고도 했다.

하지만 입원기간 내내 담당 주치의나 상담사 모두 아빠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소견은 변하지 않았다. 본인의 문제를 인식하지만 인정하기까지가 힘든 분, 아빠 모습 그대로였다.


알코올 중독자 커뮤니티에 '아빠의 변화'를 공유하고 퇴원을 언제 하면 좋을지? 의견을 여쭈었더니 알코올 선배님(?)들은 작은 변화에 현혹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입원하실 수 있는 한 하루라도 더 오래 계시게 하는 것이 아빠를 술과 떼어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퇴원이 간절한 사람들은 "내가 퇴원하고 나서는 절대로 술은 입에도 대지 않겠다" , "이제는 새 인생을 살고 싶다"라고 눈물로 고해성사를 할 것이다. 간도 쓸개도 다 빼놓을 듯이 말해야 퇴원할 수 있을 테니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사회로 돌아가 예전처럼 다시 술에 입을 댈까 두려운 사람이라면... 나 스스로 아직 확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족들이 퇴원시켜 준다고 해도 더 치료를 받겠다고 나와야 당연한 거다.

알코올 선배임 한 분도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다

<어느 정도의 치유의 선이 넘어가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면

오히려 나간다는 말 안 합니다..

왜냐 이젠 무섭거든요..

이겨낼 수 있을까가 먼저와 요...

두려움이 우울증이..

할 수 있다 이만큼 하는 거 봤잖냐.. 나가서도 잘할 수 있다

다.. 술의 꼬임입니다..

좋은 말투로 시작한 거 그곳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오세요

라고 전해드리세요..

설득하실 필요 까진 없어요.. 안 받아들여질 테니.>


치료의지가 강한 사람들 중에는 아주 드물게 폐쇄 평동에 입원하여 개방병동을 거쳐 치료를 받은 후 사회로 돌아가 꾸준히 통원치료를 받으며 약물치료와 삼담을 병행하고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야말로 알코올 중독 치료의 엘리트 코스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소싯적부터 못된 짓만 하고 다녔다는 할머니의 큰 아들, 아빠가 엘리트 코스를 밟을 일은 없었다.

늦여름밤 입원을 하신 아빠는 계절이 두 번 바뀌고 겨울이 되어 입원 102일째 되는 날 퇴원을 했다.

첫 입원을 시킬 때부터 6개월을 다 채워보리라 마음은 먹었지만 3주를, 3개월을 버텨내기도 쉽지 않았다.

입원만 하면 뭔가 될 줄(?) 알았는데 험난했던 첫 입원의 과정보다 입원을 유지하는 것이 어쩌면 더 혹독했다. 어디서 사고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없어서 밤에는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었다. 하지만 혈육을 강제 입원시켰다는 죄책감, 미쳐버릴 것 같은 수십 통의 전화, 집요한 퇴원요구는 두 손 두발 다 들도록 사람을 피 말리게 했다. 전화를 수신 거부하고 받지 않은 적도 있지만 그 마저도 며칠뿐... 단 칼에 베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퇴원을 하고 나면 또 만나게 될 가족 아닌가?

퇴원하는 날 병원에서 복수의 칼 날을 갈고닦은 아빠가 날 죽이겠다고 서슬 퍼런 칼을 내 등에 꽂는 건 아닌지 두려운 상상도 해보았다.

102일 동안 꾸역꾸역 버티면서 아빠의 그릇은 더 이상은 무언가를 더 담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다음 입원을 기약하며 퇴원을 결정했다.

그렇게나 바라던 퇴원을 했으니 어디 한 번 직접 부딪혀보시라 했다.

아빠의 퇴원은 나와 할머니에게 ,

"또 한 번 속아보시겠습니까?"라고 묻고 있었다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서 지금 내뱉는 약속과 맹세들이 금방이라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걸 알면서도 바보처럼 또 한 번 속아보기로 했다.


"네, 또 한 번 속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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