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들
- 세 여자 이야기
첫 번째 아내, 우리 엄마...
열여덟 철부지 동갑내기로 나를 혼전 임신하여 시작된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표현으로도 아빠가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못된 짓만 하고 다녔다 했으니 말이다
공부하라 하면 땡땡이를 치고 동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담배나 피워대고, 꼴 베어 오라 하면 죄다 못 먹는 풀만 잔뜩 베어왔다고 했다
아빠가 되었어도 그 방황은 끝날 줄을 몰랐고 아비 노릇 하려 취직한 공장에서도 프레스 기계에 손이 짓이겨지는 사고를 당했다.
기나긴 투병생활 끝에 겨우 손의 형태는 건졌지만 장애가 남아 스무 살 청춘도 꽃피워보지 못했다
시할머니, 시할아버지에 코흘리개 막내 시누이부터 국민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누이, 도련님... 시부모님까지 함께 살아야 했던 엄마는 그 시절 이미 고비가 왔던 것 같다
장애와 맞바꾼 보상금으로 독립하여 사업을 해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가세가 기울 때마다 시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던 맏며느리, 술 좋아하고 허세와 자존심만 가득한 남편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라.
평소에는 지극히 점잖고 조용하신 분,
하지만 술이 들어간 아빠는 때때로 싸움이 격해지면 집안 살림을 다 때려 부수고,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고 어느 날은 부엌칼로 죽이겠다 덤벼들었다.
늦은 밤 엄마와 함께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 이모집에 숨어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도망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써서 이혼을 택한 엄마가 이해가 되면서도 어린 마음에 우리를 두고 떠나버린 게 원망스러워 수년간 연락을 끊고 지냈다.
두 번째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정말 놀랍고 신기했다.
할머니께서 "아빠가 여자를 데려왔는데 너네 엄마랑 아주 꼭 닮았더라"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조용하신 반면 꽤나 큰 목청과 수다스러움을 가지고 계셨지만 내가 봐도 엄마와 닮은 분이셨다.
내 나이 서른 살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초에 불을 밝히시고 혼주석에도 앉으셨었다.
사실 막상 결혼을 하려니 참 난감했다
아빠 옆에 이혼한 내 친엄마를 앉혀야 하나? 지금의 새엄마를 앉혀야 하나? 아빠 혼자 앉게 해야 하나? 어른들께서 그래도 지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새엄마를 앉히는 게 맞다는 의견이셨고 나 또한 본인 살겠다고 우리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괘씸하여 혼주석에 앉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하객석에 앉아서 딸의 결혼식을 보게 만드는 벌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결혼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는 벌을 받았다.
결혼 1년 후 맞이하게 된 내 딸의 돌잔치 사진 속에는 아빠의 옆자리에 세 번째 부인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번째 아내와의 결혼생활도 끝나버렸다
아빠와의 잦은 싸움에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분 편은 들어주지 못했다.
늘 차가운 나였음에도 정성 가득 반찬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지금은 어디 사시는지? 내 또래의 딸, 아들을 두신 분이었는데 아빠 때문에 한동안 힘든 시절을 보냈을 그 분과 자식들에게 내가 대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세 번째 아내는 아빠 못지않은 음주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술에 취하면 물불 안 가리고 상대방의 화를 돋우고 아주 표독스럽게 쏘아댄다던가, 한번 싸우면 몇 날 며칠 밥도 안 하고 아빠처럼 술만 마셨다.
이 좋은 세상에 아빠는 밥을 굶고 살았다.
기분 좋을 때 반짝 기분 잘 맞춰주다가도 뭐하나 어긋나면 고집스럽고 독하게 아빠를 몰아붙였다.
어떤 날은 술 먹고 싸우고 분이 안 풀려서 아빠의 차 유리를 깨부순 날도 있었단다.
아빠가 제대로 강적을 만났다.
너 죽고 나 죽자 해서 주민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잦았다.
어느 해에는 자살시도까지 해서 이 분과 살았던 5~6년 동안 아빠도 제일 많이 망가졌다.(이렇게 또 팔이 안으로 굽는다.) 아빠의 문제가 깊어진 게 원인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지 40일...
본인은 여자 없인 못 산다며 나보고 이 여자를 꼭 좀 데리고 면회를 오란다.
퇴원하면 다시 함께 살겠노라고...
입원 전에도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면허 취소되고 생계를 이어나갈 능력이 없으니 연락도 안 받아주다가 본인이 외로우면 한 번씩 만나주는 것 같았다.
아빠가 다시 같이 살자 하면 자길 어떻게 먹여 살릴 거냐고 물었다했다.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다시 합칠 가능성은 0퍼센트였다.
끊임없는 퇴원요구만도 벅찬데 여자 문제까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아빠는 여자 없으면 외로워서 못 산다고 어디 모자란 여자라도 데려와 함께 살게 하면 좋겠다고 했다.
"할머니 누가 이런 아빠랑 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