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더 내려갈 바닥이 남았습니까?
바닥을 치면 다시 올라온다고 했던가?
하지만 아빠에게 바닥은 끝이 아득하여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심해와 같이 내려가도 내려가도 보이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 커뮤니티를 보면 '단주의 적은 배고픔'이라 식사를 거르지 않고 든든히 해야 술 생각이 덜 난다고들 했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폭음은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사나흘까지 식사를 거르며 계속되기 때문에 폭음과 배고픔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끝없이 돌고 돌고 또 돌았다.
계속되는 폭음에 잇몸 염증이 심해진 아빠를 모시고 치과를 갔는데 잇몸이 주저앉아 어금니 3개를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된다고 했다. 뇌경색으로 인해 복용 중인 약은 중단할 시 급격한 혈전 발생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경과 의사의 소견서까지 받아 치과치료를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발치를 하고 지혈을 하는 과정에서 흡연을 하지 말라는 주의 사항을 들었는데 애연가 아빠는 그 짧은 시간도 담배 없인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지혈이 되지 않아 다시 치과를 방문하는 등 힘든 치료과정을 버티다 결국 임플란트 시술도 받지 못한 채 치료를 종료했다.
어금니가 없으면 식사를 잘 못하실 텐데 임플란트를 꼭 해야 한다고 나는 한두 번 더 아빠를 설득해보았지만 쇠심줄 아빠의 마음을 바꿀 순 없었다.
아빠가 이가 아파서 진통제를 달고 사신 지가 꽤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한참 전부터 아빠 이를 해줘야 한다고 돈 걱정을 하시며 나에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면 나는 밥을 안 먹어서 다 죽게 생겼는데 이가 무슨 소용이냐고 볼 멘 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때 내 말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치료의지가 있는 사람이 치료를 받아야 맞고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치료가 될 것 아닌가?
우리가 흔히 먹는 진통제 타이레놀의 뒷면을 보면 주의 사항에 이렇게 쓰여있다
다음 사람은 복용하지 말 것.
....., 수면진정제, 우울증 약 복용환자, 음주자
아빠의 이부자리 옆 작은 상 위에 수북이 쌓인 약과 진통제들.....
아빠는 본인의 몸은 돌보지 않으며 그저 폭음하고 그저 흡연하고 살았지만 그로 인해 술이 깨면 온 몸 구석구석 통증도 함께 되살아 나서 그럴 때마다 약국에서 수시로 진통제를 사다 드시는 듯했다.
하지만 그 진통제마저도 음주자는 복용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한동안 금연하라고 아빠를 설득했을 때도
"아빠는 뇌경색 환자라서 또 한 번 혈관이 막혔다간 진짜 큰일 나. 피를 묽게 해주는 약을 먹고 있는데 그 몸에 담배를 피우면 혈관이 쪼그라든다는데 몸이 얼마나 헷갈리겠어? 혈관은 쪼그라드는데 혈관 막히지 말라고 약은 계속 넣어주니.. 몸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갈피를 못 잡아서 엄청 힘든 거야."
알코올 병원에 첫 입원을 하러 가던 날 차 시트에 소변 실수를 하신 것처럼 폭음에 젖어드는 날이면 본인 이부자리가 젖어드는 것도 모르는 채 소변 실수를 하시는 날이 잦아졌다고 했다
"야 말도 마라. 아빠가 이불 밑에 옥장판까지 흠뻑 젖도록 오줌을 질펀히 싸놔서 말려보려고 코드를 꼽아서 돌려봤는데 오줌 냄새가 얼마나 독한지 아주 숨을 못 쉴 지경이어서 그냥 버려버렸다."
술에서 깨어난 아빠가 본인이 그린 지도를 보고 간밤의 실수를 깨닫기까지는 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밤새 자기도 모르게 그려진 지도를 보고 화들짝 놀란 어린아이처럼 다급하게 손수 치우실까?
아니면 모든 걸 체념한 채 그냥 계실까?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샛노란 바지를 입고 담배 피우러 다니시던 그때처럼...
그것도 아니면 할머니가 50대 아들의 이부자리를 치우고 걸레질을 하고 다시 뽀송한 이부자리를 펼쳐주실 때까지 뻔뻔하게 옆에서 담배만 뻑뻑 피우고 계실까?
머리가 지끈 거렸지만 나는 그런 할머니께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느 날은 오줌도 모자라 이부자리에 똥 범벅을 해놓았단다.
다 쓰러져 가는 산 밑의 낡은 흙집... 방을 한 칸씩 덧부쳐서 지은듯한 허름한 집에 양변기가 있긴 했지만 안채 안을 들락날락할 아빠가 아니다.
아빠가 지내는 방 입구를 조금 돌아가면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쓰시는데 그마저도 술이 취한 밤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가다 넘어지기 일쑤였다. 어느 날엔 얼굴에 상처가 딱지가 되어 있었다.
그 밤엔 화장실을 들락거릴 기력조차 없으셨던 걸까?
너무 속상한 마음에 "아빠는 이제 하다 하다 똥까지 싼다며?!! 어쩌시려고 그래요?" 그랬더니 아빠가
짜증 섞인 말투로 소리쳤다.
"설사가 줄줄 나오는데 그럼 어떡하냐?"
그 말투 속에는 일말의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아빠... 바닥을 치셨습니까?
아직도 더 내려갈 바닥이 남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