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코로나와 알코올 중독

- 양치기 소년 입원 가능한가요?

by 꽃샘추위

아빠가 다시 술과 기나긴 밀당에 빠져있을 때 나는 8년 만에 다시 취업을 해서 워킹맘이 되었다.

취업 1년 만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면서 유치원, 초등학교의 등원, 등교 중지로 7살, 10살 두 아이의 아침, 점심을 차려놓고 부리나케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쟁반에는 그날 아이들이 먹을 반찬들을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전기밥솥 옆에는 아이들이 밥을 퍼먹을 수 있도록 밥그릇과 주걱까지 세팅해 놓았다.

일하는 틈틈이 집안에 설치해놓은 cctv로 아이들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일이 바빠 두 아이끼리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못 보는 날이 허다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점심때 먹은 반찬을 뚜껑도 닫지 않은 채 그대로 식탁에 둬서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무직 상태인 아이들의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서 낮동안만이라도 아이들을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부탁도 해보았지만, 아이들이 본인을 안 따를 걸 알았는지 시부모님께 부탁하라며 거절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할머니의 말씀처럼 본인 술, 담배만 사 먹을 줄 알지 손녀딸들 아이스크림 한번 사준 적이 없는 외할아버지였다. 술, 담배 냄새에 절어 있는 외할아버지... 뵌 중에 반은 취해계시지 않으셨을까?

아이들이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외할아버지 옆 자리 분도 2번이나 바뀌었다. 아이들과 함께 앨범을 볼 때면 외할아버지 옆에 앉으신 분, 지금은 없는 그분이 누구냐고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내게 묻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결혼한 지 10년 가까이 되도록 우리 집에 와 본 적이 2~3번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잠깐 앉아 차 한잔 마시고 일어나셨고 전셋집을 장만하고 집들이를 할 때에도, 내 집 마련을 해서 초대한 집들이에도 오시지 않으셨다.

오랜만에 가족들 모두 함께 만나는 추석, 설 명절에도 친정이라고 할머니 집에 오면 아빠는 친구들하고 술 한잔 하느라 오지 않거나 고주망태가 되어서 비틀거리다 잠들어버렸다.


일을 하고 나니 둘째가 유치원 정상 등원을 할 때에는 고작 9살이었던 큰 아이가 유치원 하원 버스를 기다려 아이를 픽업해줘야 했다. 유치원에도 초등학생 언니가 마중을 가니 혹시라도 시간에 늦으면 꼭 좀 전화를 해달라고 큰 아이의 휴대폰 번호를 전달했는데 1년을 넘게 잘하다가 딱 하루 시간을 맞추지 못한 날이 있었다.

근무 중에 유치원에서 온 전화를 받으니 큰 아이가 마중을 안 나와서 아이를 데리고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큰 아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택배 아저씨가 타서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너무 늦게 내려왔는데 유치원 버스가 가버렸다며 울음바다... 유치원 버스를 타고 집 앞까지 왔다가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가야 했던 둘째도 꺼이꺼이 울었다고 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 휴대폰으로 한번 전화라도 해줬더라면... 하는 서운함이 남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동안 정말 잘해왔고 어른들도 가끔은 늦기도 한다고 큰 아이를 위로해주고, 엄마, 아빠가 마중가지 못해 항상 언니와 함께 하는데 아무도 없어 다시 유치원에 돌아가야 했던 둘째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을지 마음이 아파 꼭 안아 주었다.


코로나 시국에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딸 걱정을 하기나 하는지 아빠가 야속했지만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시간이 나면 안부전화를 걸었다. 그마저도 아빠가 술에 취해 있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맨 정신의 아빠가 받길 기도하며 통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렸다. 늘 하는 안부전화지만 밥은 먹었는지 몸은 어떤지 묻고 워킹맘의 힘듦에 대해 토로해봤다가 아이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전하며 아빠가 잠시 잠깐 웃기를 바랐다. 밥 잘 드셔야 한다. 운동하셔야 한다. 낮에 낮잠을 많이 주무시면 밤에 잠이 안 온다 등 등 마무리는 언제나 잔소리였지만 술 드시면 안 된다는 말은 빼먹지 않았다.

가끔은 온 식구가 술 먹지 마라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아 아빠도 듣기 싫겠다 싶었지만, 그것만이 아빠한테 바라는 단 한 가지 소원인걸 어쩌겠는가?

수화기 너머 아빠의 목소리가 술에 젖어있으면,

"아빠 혀가 벌써 꼬부라졌네. 아빠 술 드셔서 난 통화 안 할래. 끊어요!" 하고 세상 무거운 손가락으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어떤 날은 너무 집에만 계신 아빠에게 "아빠 이번 달 월급 들어왔지?(매달 들어오는 기초생활 수급비를 월급이라고 불렀다) 아빠 사우나 가서 뜨끈하게 목욕이라도 하고 오셔." 했는데 아빠가 코로나 걸릴까 봐 안된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에게 걱정은 아빠의 뇌경색 재발과 알코올성 치매, 알코올 중독뿐이었는데 그때 문득 아빠도 코로나가 무섭긴 하시구나.. 하고 생각해봤다.

밥은 안 먹고 술 만 마셔서 뼈만 남아 모든 걸 포기하고 사시는 듯한 아빠도 실은 코로나가, 죽음이 두려우셨던 것이다.

어느 날에는 근무하다 전화를 받았는데 아빠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무래도 아빠 입원해야겠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아" 하셨다. 아빠의 한 마디는 나에게 "아빠도 살고 싶다"로 들렸다.

"그래, 잘 생각했어요. 며칠 병원에서 푹 쉬면 아빠 기력도 회복될 거야. 내가 입원 가능한 병원 있는지 알아보고 내일 아침 데리러 갈 테니까 일단 한 숨 주무시고 계셔." 아빠와의 통화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외딴 창고로 가서는 누가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병원에 전화를 건다.

"입원 가능한가요? 50대 남자예요." 입원 가능 여부를 알아보려면 통화 절차가 꽤 길다.

병원에서 치료받은 경력이 있는지, 나이, 성별, 음주문제, 가지고 있는 질병, 복용 중인 약물, 수급자 여부, 입원 준비물, 입원 절차 등 등...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입원의 걸림돌 '코로나 검사'...

한동안 요양병원, 병원 내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때였고 병원 폐쇄도 번번이 일어났기 때문에 입원시키려는 사람도 병원도 입원을 결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공동생활을 하는 병원에서 코로나가 걸리면 어떡하지? 멀쩡한 사람(?) 입원시켰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시키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A병원에서는 병실이 없다고 했다. 새 환자를 들이는 위험 때문에 병실이 있는데도 없다고 한건 아닌가 의심도 됐다.

B병원에서는 코로나 검사를 개인적으로 받아와야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강제입원을 하니 마니 하는 사람을 잘 구슬려서 제 발로 입원을 위한 코로나 검사를 받게 하는 건 난이도 최상으로 느껴졌다.

C병원에서는 주 2회 입원 가능한 날이 정해져 있고 그날 병실이 비어있어야 입원이 가능하니 입원 직전에 연락해보고 오라고 했다.

D병원은 아무 때나 오면 코로나 검사 후 입원 가능하다는데 병원에 대한 후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 어떤 병원인지를 모르는 데다가 타도시라서 차를 타고 2시간을 가야 한다.

대부분의 병원이 평일 낮에 와야 의사 면담을 하고 입원이 가능한 시스템인데 낮에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막막했다. 두 아이 케어에 내 출근에 아빠 입원까지 한꺼번에 가능할까?

머리는 지끈거리고 가슴은 답답하지만 오후 내내 일하면서도 내일 아침 아빠 입원을 위해 허락된 2~3시간 안의 미션들을 시뮬레이션해본다. 퇴근해와서 남편에게 내일 나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가족들을 위한 저녁을 뚝딱 차리고 아이들을 재우고 펜트리에 넣어둔 아빠의 입원 가방을 정리하고 서류를 챙겨본다.

그리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아침이 되면 아빠는 어김없이...

"아니야 오지 마. 아빠 병원 안 갈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안 갈 거니까 그리 알아."


"............"


1~2년 동안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알코올 전문 병원, 정신병원..

참 많이도 전화를 해보았다. 이제는 아빠의 인적사항을 줄줄 말할 정도록 도가 터버렸다.

그분들도 내 목소리를 자주 들어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입원 이야기가 나오면 하루 이틀 에너지가 쏙 빠지도록 준비해놓고 다음날이면 변심한 아빠 때문에 신경 쓰고 마음 쓰며 쓸데없는 짓만 한 나 자신이 너무 허탈해져서.. 말을 잃는다.

어느 날은 입원 가방을 싸들고 가서 보란 듯이 앞에 꺼내어 놓고 지금 안 일어나면 응급차를 부르겠다고 으름장도 놓아보았다.(사실 그날은 병원을 3군데나 전화해봤는데 다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아빠는 그 후로도 셀 수 없이 입원 얘기를 꺼냈지만 다음날이면 정색을 하고 딴소리를 해댔다

아빠의 입원 준비 과정만으로도 코로나 시국에 나는 충분히 지칠 만큼 지쳐버렸다


아빠를 안 본 지 1년이 넘은 즈음, 고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네 아빠가 웬일로 입원하고 싶단다."

동화 속 양치기 소년에게 속은 마을 사람들처럼, 신뢰를 잃은 나는, 거짓말에 여러 번 속아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나는 "고모! 아빠가 그렇게 말했지? 내일이면 분명히 입원 안 한다고 할걸요? 고모도 속지 마요. 입원하고 싶으면 제 발로 걸어가라고 해. 내가 입원한다 그래서 속은 날이 셀 수가 없다고요. 그래도 혹시라도 입원하면 병원비는 제가 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연락해줘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고모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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