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할머니는 아빠의 '믿는 구석'

- 아빠! 나의 철부지 아빠!

by 꽃샘추위

나야 어쨌든 타고난 운명이지만 마누라 잘못 만나서 평생 못 겪어볼 일을 겪게 된 내 남편은 우리 할머니를 싫어한다. 내 친정에 대해, 내 아빠에 대해 10년 가까이 이렇다 할 불만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옆을 지켜준 착한 남편이지만 그가 할머니를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빠를 그렇게 만든 건 할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잊을만하면 아빠 문제로 나에게 전화하는 할머니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뿐더러 어떤 날에는 화를 내며

"할머니가 그렇게 키웠으니까 할머니 보고 알아서 하라고 그래. 왜 자꾸 너한테 전화를 하셔?"라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빠가 사고를(?) 한번 치고 나면 할머니뿐만 아니라 작은 아빠, 작은엄마, 고모들까지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번씩 나에게 전화를 하는데 내가 그 <사건 보고>를 몇 차에 걸쳐 받는 괴로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남편도 분명 속상함에 한 얘기 일 것이다.

<사건 보고>는 나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같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듣기 싫은데 가족들의 입을 통해 돌아가며 듣는 아빠의 사건들은 귀로 들어와 내 머릿속을 헤집다가 가슴에 남은 모든 걸 송두리째 쓸어가 버렸다.

내 잘못인 듯 얼굴이 화끈거렸고 심장이 두근거렸고 마지막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남았다.

사건 보고의 결말에는 항상 "아빠께 전화 자주 드려라. 네가 그럴수록 아빠를 자주 들여다보고 아빠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자꾸 북돋아줘야 된다"였다.

어떤 날은 몸서리치게 화가 나서 아빠의 동생들에게 아빠 때문에 나 또한 피해자니까 그런 말씀은 마시라고 소리치고도 싶었다.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어렸을 적부터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나하나 다 들으면 나한테 아빠를 잘 돌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할 거라고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내가 아빠를 이런 사람으로 키우지 않았다! 이런 어른이 되도록 키운 건 다 할머니다!!


장남인 아빠가 학교를 안 가고 나쁜 짓(?)을 하고 다니다 열여덟에 아이를 덜컥 임신하여 대책이 없을 때에도 할머니는 시부모님 밑에서 5남매를 키우면서도 며느리와 뱃속의 손주까지 감싸 안아야 했다.

하지만 그 '감싸 안음'의 방식이 잘못됐음은 틀림이 없다.

평소 할머니의 말투를 들어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빠가 장남인데 큰 아들 노릇 못해서 얼마나 기가 죽었겠니? 기를 세워줘야 하는데... 아빠가 지금 없어서 그렇지 형편이 조금이라도 피면 잘할 거다."

땅을 사고 번듯한 건물까지 짓고 사는 작은 아빠 때문에 기가 눌렸다고 마음 아파하시면서 큰아들이 잘 살고 둘째가 못 사는 게 낫지. 둘째가 형보다 잘 살면 이렇게 남보기에 안 좋다 하셨다.


"아빠 방에 가서 옷장 좀 봐라. 그것들이 옷이라고... 죄다 싸구려만 사줘가지고..."

번듯한 옷 한 벌 안 사주고 싸구려만 사준 전 며느리들에 대한 할머니의 불만이었다.

가끔씩 아빠의 옷장을 정리해주는 날에 보면 물론 시장표 싸구려 옷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평소 옷 욕심이 없는 내 남편보다도 몇 곱절이나 옷이 많았다. 그런 아빠도 평소에 입버릇처럼 '쪽팔리게' 이런 걸 어떻게 입냐고 옷 같지도 않은 건 죄다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본 아빠와 할머니 모두 자존심만 내세우고 남이 보는 시선에 꽤나 신경을 쓰시는 분들 같았다.

스물도 안되어 아빠가 된 아들 가장 노릇 하라고, 한창 젊은 나이에 장애인이 된 아들이 안쓰러워서, 다시 재기해보려고 하는 아들 도와주면 일어설까 싶어서, 이번에는 잘 살까 싶어서 할머니는 아빠에 대한 원조와 희망을 평생 놓지 않았다.

반백살이 넘는 인생을 스스로 일군 것 하나 없이 할머니의 원조를 받으며 근근이 살아온 아빠에게 할머니는 그렇게 '믿는 구석'이 된 것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사업을 하다 망했을 때에도, 새로 차를 살 때에도, 여자와 살림을 차릴 때에도, 심지어 음주운전을 하다 걸려서 벌금이 수백만 원 나왔을 때에도 해결사는 늘 할머니셨다.

수년간 화물기사를 했을 때에도 돈을 벌러 나가려면 기름값이 있어야 하는데 기름 값없어서 일 못 나간다고... 차가 망가졌는데 수리비가 없어서 못 고치니 나는 일 못 간다 하고 배 째라 방 안에 누워 담배만 뻑뻑 피고 있으면 할머니는 어디서 빌려서라도 돈을 보태줘야만 하셨다.

아빠 역시 영화 속 불한당처럼 모아논 돈 있으면 백만 원만, 이백만 원만 달라며 사채업자가 빚쟁이를 독촉하듯 할머니를 닦달했다.

본인들 못 입고 못 먹으며 모은 쌈짓돈은 그렇게 아빠의 밑 빠진 독으로 착실하게 흘러들어 갔다.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타까워서 이제는 제발 아빠한테 돈을 보태주시지 마라 했더니 너도 자식 키워봐라. 아직 애들이 어려서 그렇지 애들이 크면 너도 네 자식들한테 똑같이 그럴 거다 하셨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할머니가 평생 아빠한테 보태준 돈을 모으면 빌딩을 몇 채를 사셨을지도 모른다 했다.


아빠가 알코올 중독 병원을 퇴원하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혹시 차를 사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지 좀 알아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또 착실하게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해당 내용을 물어봤고 총재산이 얼마 이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답변을 받아 전달했다. 빈털터리 아빠가 걱정하는 게 무색하리만큼의 금액이었지만 무슨 돈이 있어서 차를 사냐고? 아빠도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곤 통화를 끊었는데 일주일도 안되어 가본 할머니 집 마당에는 떡하니 용달 트럭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차 한 대 사는 게 이리 쉬운 일이던가? 입이 떡 하니 벌어지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중고라지만 할머니는 또 무슨 돈으로 아빠의 차를 사주셨단 말인가?

정색을 하고 따져 물었는데 몇 해 전 겨울 논두렁 눈길을 걸어서 장에 가다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던 할머니가 본인들도 덥고 추울 때 차를 타고 다니고 싶다 하시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닫았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부리나케 구입한 중고차는 이곳저곳 수리할 곳이 많아 남편 친구가 하는 카센터로 가서 수리를 받도록 하고 수십만 원의 수리비를 내드렸는데 불과 며칠 후 아빠가 다른 카센터에 가서 돈을 꽤 많이 쓰고 오신 걸 알았다.

뭐 고칠 게 있어서 또 수리를 받으셨어요? 물어도 아빠가 대답을 안 하셨는데 나중에 보니 용달차의 열쇠 키를 스마트키로 개조하신 것 같았다.

내 남편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술 담배를 안 해서 그런지 한 달에 만원도 안 쓰는 달이 허다한데 50여만 원의 수급비를 받아서 허구한 날 본인 술, 담배 값도 모자라 할머니한테 돈을 타 쓰는 아빠를 보며 그저 어떡해야 좋을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빠! 나의 철부지 아빠! 철은 언제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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