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빠 차를 훔쳐왔습니다.

- 음. 주. 운. 전

by 꽃샘추위

코로나로 아빠의 입원은 흐지부지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아빠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고 있었다.

출퇴근을 하며 아빠에게 안부전화 겸 잔소리도 잊지 않았고, 집에만 있는 아빠가 술 생각이 나지 않도록 바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 갈 일이 있으면 아빠를 불러 기사를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밖에서 한번 만나면 식당에서 밥 한 끼 사드리기만 해도 위안이 되곤 했다.

늙은 노모가 차려주는 반찬이 입맛에 안 맞는다고 식사를 잘 안 하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할머니 대로 아들이 먹을까 싶어서 비빔국수며 생선조림이며 새로운 것을 하는데 도통 먹지를 않는다고 속상해하셨다.

얼마 후 아빠의 우울감은 점점 심해지셨는지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도 식사도 안 하시고 힘들다며 집에 그냥 돌아가시곤 했는데 가끔씩 집으로 알탕, 죽, 전골, 갈비탕 등 등 입맛이 돌만한 음식들을 포장해 가도 반 그릇도 채 못 비우고 수저를 내려놓으셨다.

그리고는 몇 주 잠깐 쉬다가 또 몇 달은 폭음하는 생활이 계속 반복되었다.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대장암 진단을 받으시고 항암치료와 수술을 여러 번 반복하셨는데 첫 해에 살림에 손 하나 까딱 안 하던 아빠가 할머니를 대신해 반찬을 해놓기도 하는 등 효자의 모습을 보여 깜짝 놀랐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고 수술이 반복되니 감흥이 떨어졌는지 할머니가 서울로 병원 진료를 가야 할 때도, 수술받으러 가시는 날에도 술이 떡이 되어 일어나 보지도 않았다.

아랫지방에 사는 고모가 때마다 올라와 할머니를 모시고 또 2시간을 달려 병원을 왕복했고 며칠 입원생활을 할 때에도 출근을 못하면서까지 보호자 역할을 하셨다. 함께 사는 아빠가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고 병간호를 하면 모두가 편안할 일이었지만 아빠 능력밖에 일이었다.

아빠가 한 번은 할머니 병간호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병원에서도 어디서 그렇게 몰래 술을 사 드시는지 술 냄새가 진동을 하더란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아빠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차를 사준 것은 염소를 키우던 양봉을 하던 돈이 될만한 일을 할 때 필요할까 봐, 혹시라도 다시 취직을 하면 출퇴근을 해야 하니까, 본인들 병원 갈 때, 장에 갈 때 기사가 돼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겠지만 아빠는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술이 다 깨기도 전에 또 술을 사려고 담배를 사려고 비틀비틀 차를 운전해서 마트에 간다고 했다.

또 어떤 날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고 차를 끌고 나갔는데 밤늦게 보니 차는 마당에 있고 사람은 고주망태가 되어 잠들어 있더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불어올 때쯤..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 집으로 들어오는 좁은 외길에 바퀴 자국이 가슴이 철렁할 만큼 아래로 깊이 파여있더라고... 이러다가는 누구 하나 죽을 것 같다며 아빠 차를 가져가라고 하셨다. 아빠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죽을 것이 더 걱정되셨을 것이다.

논두렁 아래로 차가 굴러 떨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할머니 차 다시 가져오라고 하실 거면 나 안 가져가요."

"다시 가져오란 소리 안 할 테니 가져가서 네가 타던지 팔던지 해라. 가슴 떨려서 못살겠다."


알코올 중독 병원을 퇴원하고 그렇게 빨리 차를 사준 게 화근이었다.

할머니는 아빠가 정신 차릴 줄 아셨다지만 아빠한테 한 두 번 속아보셨나요?


퇴근한 남편을 데리고 가서 아빠의 용달차를 끌고 와 집 앞 공터에 세워두었지만 처치 곤란이었다. 혹시나 방전될까 싶어 며칠에 한 번씩 들려 시동을 걸어놔야 했고 그 차를 볼 때마다 가슴에서 천불이 났다.

할머니는 왜 차를 사주셔 가지고 일을 이렇게 어렵게 만드신담!


남편은 그래도 아빠 차인데 우리가 함부로 팔아서는 안된다는 의견이었다.

팔고 싶어도 아빠 이름으로 된 차를 내가 팔 수는 없는 노릇! 차를 가져오던 날 인사불성으로 잠든 아빠 곁에서 서랍을 뒤져서 호기롭게 인감도장과 신분증까지 챙겨 왔지만 차를 팔려면 인감증명서가 필요한데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아빠에게 각서를 받던지 단단히 맹세를 받지 않으면 나도 이렇게 계속 음주 운전을 하는 꼴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며칠이 흘러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별일 아닌데 왜 일을 크게 만드냐고 차를 빨리 가져 오란다.

할머니께 돈 달라고 닦달하던 불한당의 모습이었다.

술을 마시고 운전해서 잘못했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괴로운 시간이 흘러 두 달이 지났을까?

나도 음주 운전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주든지, 아니면 인감증명서를 나한테 한 장 떼다 주면 차를 돌려주겠다고 버텼다. 아빠의 마음가짐을 봐야 나도 안심하고 차를 줄 수 있다고....

아빠는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했고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 폭발해봤다. 누군가 정말 큰 충격을 받아서 그 사건 그 이후로 술을 끊었단 글을 본 적이 있다.

이판사판 막말을 쏟아부으며 그동안 참아왔던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냈고 "당신이 죽어도 안 나타 날줄 알아!"로 마무리했다.


아이들에게 외할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외할아버지가 천덕꾸러기 임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친정 쪽에서 전화가 오면 늘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날 나의 외침은 주방에서 저녁을 먹던 아이들의 귀에도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18층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아빠한테 아빠가 그토록 아끼는 차를 타고 절벽으로 뛰어내려 죽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그리고도 분이 가시질 않아 쿵쾅대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문자를 보냈다.



술은 죽어도 못 끊어도

절대 음주운전은 하지 않겠다

혹시라도 또 실망시키거든 그때는 내가 차를 팔 테니 걱정하지 마라

거짓 약속이라도 해주길 바랬는데 역시나!


차를 팔든지 말든지

당장 갖다 놓기나 해라

논두렁에 꼬라박던 말던

내 알아서 하겠다

경찰에 신고하겠다

호적을 파가라


참으로 당신다운 말만

늘어놓으셨습니다.


차를 갖다 놓으면

차 타고 술 사러 가시겠지요

술 먹으면 음주 운전하시겠지요

기름 값없다고 기름값 달라고 하시겠지요

보험이 끝나면 보험료 내놓아라 하시겠지요

보험료 못준다 하면 빚을 내서라도 보험료 낸다고 하시겠습니까?

그까짓 보험 안 들고 그냥 끌고 다니겠다고 하시겠습니까?

보험 안 들고 차 끌고 다니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할 거냐 물으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라고 할 겁니다

평생을 그리 살아오셨으니

안 봐도 불 보듯 뻔합니다


내가 무얼 위해 이러고 있는지 정말 모르신다면

이제는 정말 인생 바닥까지 왔습니다

나에게 이제 더 이상 아빠는 없습니다.



창 밖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데 남편이 실외기실 문을 슬그머니 열더니 말한다..

"난 또 네가 하도 안 나오길래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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