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음주운전으로 인한 나의 아빠 차 절도 사건(?)은 장장 6개월이 지나 종료되었다.
할머니는 차 내놓으라는 아빠에게서 시달림을 받다가 이 참에 다른 차를 사겠다는 협박도 받으셨다가 아빠 때문에 괴로워 죽겠으니 다시 차를 가져오라고 애원하듯 내게 전화하셨다. 아빠가 시도 때도 없이 할머니를 들들 볶았음은 안 봐도 비디오다.
나중에는 할머니의 전화도 수신 거부해놓고 받지 않았더니 할머니의 간곡한 지령을 받고 작은엄마, 고모들이 수시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들 답은 없지만 어쩌겠냐 였다.
아빠에게 폭발하며 내 안에 모든 걸 쏟아내고 6개월 간 가족들에게 시달리며 온갖 마음고생을 하고 나니 이젠 정말 지쳐버렸다. 할머니가 지금 당장 괴로우니 차를 다시 가져오라고 하시지만 차가 아빠한테 다시 돌아간 들 해결되는 문제는 없음은 알고 계셔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는 차를 할머니 집 마당에 갖다 놓고 할머니께 차 키를 드렸다.
할머니는 나와 남편에게 정말 미안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밥이라도 먹고 가라셨지만 몇 달 만에 깡마른 할머니를 보니 그저 마음이 아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본인이 암투병을 하는 중에도, 건강한 성인도 견디기 힘든 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시며 잘 먹고 푹 쉬어야 회복이 될까 말까 한테 속 끓이며 식사를 잘 못하시니 가죽만 남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도 여러 해 전부터 위가 찢어질 듯이 얇아졌다고 했다. 식사도 잘 못하시고 약을 오래 드셨는데 내가 아빠한테 온 신경을 쓰고 나면 한동안 할아버지처럼 속이 쓰리고 신물이 올라와 밥을 먹기가 힘들었다.
할머니의 장기는 암세포가 퍼져 잘라내고 이어 붙이는 수술을 계속하고 계신데 멀쩡한 몸을 술로 망가뜨리고 있는 아빠를 생각하니 가슴에서 천불이 났다.
할머니께는 그동안 못 찾아뵌 미안한 마음을 봉투에 담아 손에 쥐어 드리며 다음에 놀러 오겠다고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는 이 집에, 아빠한테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모든 게 지긋지긋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로부터 얼마 후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육아휴직을 냈다.
4~5년을 아빠로 인해 병원, 동사무소, 경찰서, 법원, 신용회복위원회, 은행... 많은 곳을 다니며 아빠를 일으켜보려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마음고생 때문인지 나 또한 몸 이곳저곳이 고장 나 병원을 다니고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빠의 차는... 날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던 아빠의 차는....
아빠에게로 돌아간 지 두 달이 지났을까? 술독에 빠져 살던 아빠가 입원하겠다고 고모를 호출했던 날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팔겠다고 해서 고모와 함께 처분했다고 한다.
아빠를 입원시키면 병원비는 내가 낼 테니 연락을 달라고 했던 고모한테서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기에 전화를 했었는데 네 말대로 아빠가 돌연 입원을 안 하겠다고 해서 병원 근처는 가지도 못했다고 멋쩍게 웃으셨다. 그래도 그날 올라와 차를 처분했다니.. 다행이었다.
내 책임을 할머니, 할아버지, 가족들에게 떠 넘긴 것 같아서 매일매일 죄송스러웠다가도 아빠를 생각하면 화가 났다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시간들....
아빠가 죽고 나면 내 인생은 얼마나 평안할지 패륜아 같은 상상도 해보았다.
아빠가 또 한 번 쓰러진다면? 알코올성 치매가 심해져서 다시는 온전한 아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몇 년이나 병치레를 하시다 돌아가실까?
어렸을 적 오랜 지하실 생활 때문인지 심한 축농증에 후각을 대부분 잃은 나는 냄새를 거의 맡지 못한다. 나중에 아빠의 똥오줌을 받아내라고 신이 내 후각을 뺏어간 건 아닌가 의심도 해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나 혼자 아빠를 건사해야 하니 지금 조금만 봐주면 안 되겠냐고 애원하고도 싶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시시때때로 아빠에 대한, 가족에 대한 악몽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하루하루 아빠,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을 의식적으로 밀어내고 나 자신에게 조금씩 집중하다 보니 요즘은 내 생애 처음으로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평소 안 하던 운동을 하며 상한 내 몸과 마음을 더 잘 돌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최근 몇 년 전부터 써왔던 아빠 다이어리를 펼치고 그때 그날의 상처들을 복기하며 아빠와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혹시 내 글을 보고 조언해준다면 좋겠다.
회복으로 가는 길로 누군가 인도해준다면 기꺼이 따라가고 싶다.
나 같은 힘듦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함께 공감하고 싶다.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내 글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나는 갑작스러운 문제 발생, 환경변화에 예민한 사람이다. 생각도 고민도 걱정도 많은 스타일...
내 일상의 평화가 깨질까 봐 심하게 스트레스받고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란 걸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머리를 꽁꽁 싸매고 걱정한들 바뀔 수 있는 일은 없음을 받아들이고 이제 걱정만(!) 하는 건 그만 두기로 했다.
그리고 언제라도 마음이 동하면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 담담하게 나의 문제들을 마주하고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리라는 용기도 조금 생겼다.
지금보다 더 한 일이 생겨도 또 어떻게든 살아지겠지~하는 마음의 여유도 조금 생긴 듯하다.
언젠가 루게릭병에 걸린 20대 누나의 일상을 올리는 유튜버가 누나를 잘 간병하기 위해 매일 1~2시간씩은 자기 자신을 위해 운동하는데 쓴다고 했다. 누나를 돌보는데 급급해 가족들 모두가 본인 스스로를 돌보는 걸 잊게 되었고 결국은 지치게 되더라고... 마라톤을 뛰 듯 페이스 조절을 잘해서 더 멀리 오래 뛰어보겠다는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었다.
42.195km를 달려야 하는 마라토너처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기 위해 페이스를 조절하리라. 다른 사람의 속도를 견제하기보다는 온전히 내 몸 상태에 집중하며 내가 달릴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꾸준히 달려 나 가라라.
스페인 산티아고 800km 도보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배낭 안에 쓸데없는 짐은 비우고 가볍게 걸어보리라.
생각해 보면 나는 비가 올까 봐, 추울까 봐,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까 봐...라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겠다고 미리 너무 많은 걱정을 하는 우를 범했다. 그래서 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물건들을 하나 둘 추가하다가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배낭의 무게를 초과해버렸다.
그래서 몇 발자국 걷지도 못했는데 나를 괴롭게 짓누르는 배낭을 던져버리고 싶어졌고 급기야 걷기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내 인생이라는 배낭에 짐을 비워내자.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쓸데없이 무겁기만 한 짐들을 덜어내자.
내 어깨가 가벼워질수록 나는 더 오래.. 더 많이 걸을 수 있을 테니!
지금 나는 온전히 내 인생에 집중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나를 조금 재정비한 후에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배낭을 사뿐히 둘러메고 가던 길을 다시 담담하게 걸어가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