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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Mar 04. 2023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41 퇴원하던 날의 기록

두 번째 입원을 하고 꼬박 365일이 흘러 아빠를 퇴원시켜야 하는 날이 밝았다.

입원 연장이 더 이상 불가하다는 병원의 입장을 듣고 요양원을 찾아보다가 그마저도 쉽지 않은 현실을 깨닫고 일단 퇴원을 해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퇴원일이 다가올수록 하루하루 엄청난 심적 부담감과 불안이 밀려왔다. 아빠가 병원에 계신 동안 스스로 상처와 불안을 많이 보듬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일상생활 중에 불현듯 아빠를 퇴원시킬 걱정이 밀려올 때면 말로 표현하지 못할 불안감이 엄습했다. 끔찍하고도 고통스러운 상해를 입힌 가해자의 출소 날을 세고 있는 피해자의 심정과 별반 다를 게 없겠지.


아빠를 입원시킨 1년여 시간 동안 나는 작정하고 아빠의 전화를 거의 받지 않았다. 병원 내 공중전화번호를 수신거부해 놓았는데 전화를 받지 않자 아빠는 음성사서함에 음성녹음을 남겼다. 그것도 통하지 않자 휴대폰을 소지한 다른 환자들의 휴대폰을 빌려 늘 새로운 번호로 전화를 쉬지 않고 했다. 전화만 울리면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 게 더더욱 두려워 전화를 받지 않아도 가슴이 쿵쾅댔다.


입원비를 정산하고 데스크에서 아빠를 기다리면서 본인을 병원에 처박아둔 딸을 향해 따귀라도 갈기진 않을까 염려도 해보았다. 아빠는 험상궂게 생긴 젊은 남자 직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셨다. (아빠와 같은 환자들을 통제하느라 일부러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마음에 그늘이 드리운 건지 잠시 잠깐 직원을 향해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바쁘게 일을 마치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약국에 들러 사 온 박카스 한 박스를 건넸다. 그들이 아빠에게 잘해주었든 못 해주었든 가족도 돌보기 힘든 알코올중독자를 1년 동안 케어해 준 직원들에게 조금이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입원 당시와 별 반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다리를 절뚝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왔니?".... 하는 아빠를 보니 왠지 모르게 신경질이 밀려왔다.

퇴원 동의서에 사인을 한 후 퇴원을 재촉하는 아빠를 붙잡고 나는 한껏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오늘 아침 집에서 만들어 온 약속 이행 각서를 들이밀었다. 술을 다시 마신다면 즉시 다시 입원을 시킬 것이고 그 책임은 아빠에게 있으며 퇴원을 요구하지 말라다는 내용이었다.

휴대폰 요금을 내지 않아 해지된 휴대폰과 통장, 도장, 우편물로 수북이 싸인 독촉장과 법원의 지급명령서까지도 깡그리 가져와 다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아빠가 입원 전 저지른 경제적인 문제들에 대해 한 번 더 짚으며 파산 신청을 하든 개인회생을 신청하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병원을 나오면서 아빠는 병원 직원이 간식비로 사용하고 남은 잔돈을 봉투에 넣어준 것을 언제 가져갔는지 가져가서는 나에게 동전이 없냐고 물었다. 라이터와 담배를 사야 한다고... 당장 비뇨기과며 심장내과 예약이 줄을 서있으니 당장 쓰실 돈을 먼저 인출해서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은행을 찾아가는 길에 아빠는 이런 말들을 했다.


" 이 병원에 사람들 아주 엄청나. 구급차도 타고 오고 경찰차도 오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 생각도 안 들던가요? 아빠도 다음에 또 입원하게 된다면 그렇게 오실 거예요."


길거리에 서서 마주 보고 담배 피우는 아저씨들 옆을 지나가며 "아우~ 담배 냄새가 참 구수하구먼. 나도 사제담배 좀 펴 보자."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오는 차를 보고는 "와~ 차 끝내주네. 죽을 때까지 저런 차를 타볼 수나 있을까?"

(나는 아빠가 죽을 때까지 정신을 차릴 수나 있을까 그런 게 걱정입니다만...)


입원 중 동생이 결혼식 날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본인은 당장 딸의 결혼식을 가야 하니 퇴원을 시켜달라고 끊임없이 말하던 아빠는 없었다. (동생이 이야기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으니까... ) 산 밑의 꼬불꼬불 길을 따라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가는 도중에도 "우리 집 바둑이가 잘 있나? 날 알아보려나?" 하기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걱정도 되지 않던가 따져 묻고 싶다가 끓어오르는 가슴을 누르며 입을 꾹 닫았다.


할아버지는 아빠를 보고는 "고생했다" 하셨다.(나도 아빠와의 첫 대면에서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했었는데 고생했다? 그 건 아닌 것 같아. 고생은 우리가 하고 있는 걸.)

쩔뚝거리며 입원 당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의 아들을 본 할머니는 몸이 조금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실망하신 눈치였다. (나 역시 첫 번째 병원생활 후 잠시나마 호전되었던 아빠를 기대했으나 생각보다 몸 상태가 좋아지지 않은 아빠를 보고 놀라긴 했다. 아빠는 회복 불능의 몸 상태가 된 것 같았다. 할머니? 1년 동안 술 안 마시고 삼시 세끼 꼬박 밥 잘 먹은 게 어딘가요? 그냥 집에 두었다면 아빠는 죽었을 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와 나... 3대가 동그랗게 모여 앉아 병원에서 작성한 약속 이행 각서를 꺼내보았다. 언제든 아빠가 다시 술을 마신다면 즉시 입원을 시키겠다는 일종의 경고.

단주와 병원 진료. 운동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다짐받았다.

아빠는 짐가방 깊숙한 곳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하나하나 접어서 조립한 화병과 꽃을 본인이 접었다며 자랑스레 꺼내 보였다. 아빠가 직접 접기는 한 걸까? 양치기 소년 아빠의 말에 다들 불신의 마음이 먼저 다가온다.


아빠는 방으로 가서 잠시 쉬더니 반팔 차림으로 나타났다. 2월 꽃샘추위에 병원생활을 1년이나 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할머니, 할아버지는 연신 잔소리를 퍼부었다. (이제 시작이네요. 현실입니다)


할머니가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집에 가서 식구들 밥을 해줘야 한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많은 생각에 잠긴다.


아빠가 알코올중독자로서의 인생을 얼마나 열심히 살아갈지 또 한 번 두고 보자!

과연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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