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의 주적은 프레임
군대에 있을 때,
선임들이 많이 했던 말은
'우리의 주적은 간부다.'였다.
실제로, 적군을 마주쳐서 사건이 발생할 확률 보다, 간부를 만나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거기에 군대 특성상 대부분의 상황을 병사들이 어찌해볼 수가 없으니,
간부를 만나면 피해다니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간부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
병과 똑같이 어렸고, 미숙했으며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많이 혼이 나지도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을 들어본 간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간부였다면 참 서운했을 것 같다.
그들도 나름 열심히 한 것일텐데.
이런 프레임이라는 건 참 무섭다.
가까워야 할 관계를 부숴버리기도 하고, 거리를 벌려두기도 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프레임은 약자와 강자의 프레임.
사실 멀리서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그들인데
그들 스스로가 벌써 프레임에 쌓여서 서로를 갈라두고 있다.
강자(스스로를 강자라고 부르는 경우겠다.)가 프레임을 두는 경우도 안타깝지만,
약자(역시도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를 약자라고 부르는 경우겠다.)가 그 프레임을 두는 경우도 못지 않게 가엽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지분관계를 정리했던 때가 기억이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쩌다보니 대표가 되었는데, 결국 나는 이 조그마한 집단에서 간부가 되어있었더랬다.
책임감이나, 업무의 중요도도 달라지기 시작했지만,
확실히 다른 팀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나는 그 집단에서 강자의 프레임이 씌워져갔다.
당연하게도 팀원이 나에게 기댈자리도 만들어줘야 하고
어떨때는 팀원들의 자율성도 보장해줘야하는 모순적인 자세로
1년을 살다보니, 나도 이런 취급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후로
2018년 가을 쯤이었나, 회사 임원 중 A는 나를 제외한 사람들을 '우리'라고 부르며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내가 회색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A에게 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왜 우리가 아닐까요?'
'....'
A는 벙찐 표정으로 말을 머뭇대다 자리에서 물러났고
나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물러나는 A에게 어깨 동무를 하며 말했다.
'잘해봐요 우리.'
'....'
그에게도 나와 함께 시작 한 시절이 떠오른 것이었나?
그건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나는 공채를 진행한 지금도 누군가에겐 강자의 프레임이 씌워져 있는 것.
그런데
회사가 잘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안되는 회사, 작은 회사라면 더욱이
대표라는 사람은 집단에서 불쌍한 존재 중 하나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대표의 희생이, 바쁨이, 고민이.
사실 그들한테는 그렇게 당연하지는 않을 거다.
되려 자칭 '약자'들의 프레임이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악수惡手일수도 있다.
얼마전 나는 군대 꿈을 꾸었다.
평소였으면 도망쳤겠지만, 나는 꿈속에서 군대를 향해 달려갔다.
아쉽게도, 아무도 만나지 못했지만,
몇년전의 그 간부들도 꿈속에서 내게 말하고 싶었을 거다.
'우리의 주적은... 내가 아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