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빠지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 적절하게 적절한 만큼 화를 내보자.
평소 같으면 여유롭게 받아줬을 말들도, 감정조절이 힘든 요즘에 받아주기 힘든 감이 있다.
'아니~, 나는 몰랐어요. 어떡하라고요?'
오늘은 저 말 때문에 화를 냈다.
잘못을 하고도 저리 당당할 수가 있나? 하는 괘씸함에 소리가 높아지고 약한 욕설들이 섞였다.
어떡하라니. 나도 잘 모른다. 아니, 사실 나 나름대로도 내 감정을 컨트롤하려고 무던히 노력 중이다.
근데 그걸 못 참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너의 '아니' 전까지는 잘 참고 있었다.
못 참아서 어쨌냐고?
내 머릿속에서는 너의 얼굴을 향해 벌써 주먹이 나갔다.
너의 잘못 그 자체보다, 그 태도, '괘씸함'을 1초도 참아주지 못하겠다.
오늘은 괘씸한 얼굴을 세명이나 만났다.
화내지 말고 112 부르는 게 빠르겠다.
가끔 동년배나 또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눌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그런 때 중 어느 날, 내가 아는 누군가'들'과 예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예절'은 그들의 '예절'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았다.
그들은 아무래도 '내가 조금 양보하는 것'을 전제로, 타인과의 관계를 무리 없이 이끌어 가는 것이 예의라고 믿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무리 안에서 내가 다른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내 의견을 조금 낮추고 무리와 함께 하는 것 정도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양보를 하고 안 하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이 집단이나 관계에 있어 중요한 의사결정을 좀 더 옳게 내리게 돕는 것이다. '옳다'가 무엇인지는 나는 전혀 모른다.
다만, 1) 대안적 의견은 항상 중요하다는 것과, 2) 집단에 적절한 긴장감을 일으키고 3) 결정 시점까지 최대한의 경우의 수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 상품 때문에 장기자랑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반 전체가 춤을 춰 우승하자는 의견이 곧바로 나왔고, 반 전체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시간은 없이 '춤 추기'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나 역시 우승을 원했다. 다만 나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결사반대를 했다. 잠깐 생각을 해보자고, 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나 때문에 결정이 이틀이 미뤄졌다. 나는 결국 별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춤을 췄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했다. 무대 중앙에서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연습했지만(나는 춤을 정말 못 춘다.) 가장 뇌리에 남는 말은
"쟤는 반대해놓고 지가 젤 열심히 하네"라는 비꼬기였다.
그래? 이게 정상 아닌가?
물론 결과는 노코멘트.
나는 거의 모든 경우에 양가감정을 가진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는 말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좋으면 무조건 좋아야 하고
싫으면 그냥 싫어야만 하나?
사람과의 관계도, 내가 하는 일도, 내가 가진 꿈이나 현실 전부 다.
안다. 확실하게 듣고 싶겠지만, 확실하게 말을 하더라도 내 안에는 양가감정이 있을 거다.
Q. 매운맛을 좋아하나요?
A. 너무 좋아합니다. (근데 오늘은 싫은데요?)
나는 (진짜 중요한 것조차도) 의견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 생각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어제 좋았던 의견은
내 머릿속에서 수많은 사고를 거쳐, 혹은 오늘의 직감을 거쳐서
오늘 구린 의견일 수도 있다.
'정말이다.'
나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걱정을 한다.
나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잔소리를 한다.
나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토론하고 싶다.
나는 사고가 일어난 후에는 결과를 복기(復棋)하고 싶다.
나는 사고가 일어난 후에는 이유를 알고 싶다.
나는 사고가 일어난 후에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근데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별 생각 없는 사람들...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낮아서인가 보다.
나는 보통 사람들은 나와 같은 수준 혹은 이상의 생각을 할 것이라 믿는다.
다음과 같은 말들 때문에 더 그렇다.
좋다.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각을 말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당신의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하는 거다.)
나는 당신이 '내 생각'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궁금하지 않다.
심지어 이미 알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당신은 항상 당신만의 선의 의지를 가지고 살 것이고,
당신 나름의 최선의 의지를 가지고 살 것이다. 안다. 믿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최선이 남았다.
1. 내가 말하지 않아도 하려고 했었나?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당신은 그저 내 이야기를 알람처럼 생각하면 된다.
2. 내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미 생각해보고 결정까지 내린 것인가?
그렇다면 실행하진 않더라도 들어는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을지 어떻게 아는가.
3. 내가 말한 것보다 좋은 수가 있는가?
당신의 좋은 수를 알려달라. 내가 무릎을 꿇고라도 배우겠다.
4... 혹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시야를 내가 쉽게 제공해서 심술이 났나?
그렇다면 심술 난 이유는 궁금하지 않다. 내가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 닥치고 배워라. 쓸데없는 소리로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씨발 진짜.
5. 남의 인생 참견하지 말라고?
나는 지금 나한테 감정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피해가 오기 때문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나? 아니면 싫은가? 좋다. 나에게 선택권을 달라. "당신과의 관계를 내가 먼저 끊어 낼 수 있는 권리." 나는 나의 에너지를 한 톨도 당신에게 쓰고 싶지 않다.
*물론 거절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정중하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상대방에게 믿음을 심어주길 바란다. 지금 거절의 이유를 대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늘 부족하니까. 다만 제발, 제발 부탁인데 자격지심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말자.